여기는 돌산 6

뇌가 진실을 조작한다

by 박달나무

작년 교육과학부로부터 받은 지원금 사용 정산서를 제출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서울시교육청 독촉을 받고서 정산서 제출 의무를 확인하고 오늘까지 제출하겠다고 대답해놓은 상태였다. 돌산에 내려오면서 관련 자료를 싸들고 내려왔다. 다른 선생님은 처리할 수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인터넷 접속이다. 수련원 사무실에 인터넷 라인이 들어와 있는데 문제가 있다. 거의 밤을 새우며 해결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많은 자료와 양식을 메일로 올려놨는데 내려쓸 수 없으니, 한숨이 나온다. 별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처리하고 포기할 건 포기했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임상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늦게 자기 때문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가 깰 때까지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 테니스를 칠 텐데 그때는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야 돼. 운동하고 와서 또 잘 수는 있지만 모두 일찍 일어나서 테니스장에 다녀올 거야. 그러나 자는 시간을 간섭하지는 않겠다. 본인이 알아서 아침에 일어날 수 있도록 잠자리에 들어라"

쉽게 그러겠노라고 대답한다. 이번 주는 늦잠이 가능하다고 좋아하지만 모두 9시 이전에 일어난다. 12시에 잠들고 9시에 일어나면 실컷 잔 것이다.

125F9A4A4DBB4F8A1A46F5 <1920년 열 한살짜리 소녀 프랜시스 그리피스가 찍었다는 숲속의 요정>


한겨레신문 곽윤섭 사진기자가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에서 위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20년 열한 살짜리 소녀가 찍은 사진에 놀랍게도 숲 속의 요정이 등장했다. 요정은 동화에나 등장하지 않는가! 지금 보면 조잡한 합성이 분명한데도 당시엔 전 영국을 뒤집어 놓았다.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까지 뛰어들어 그 사진의 진실을 밝히려고 들었다. 무려 60년이나 지나서 사진에 등장한 소녀가 조작임을 자백했지만 찍은 이는 끝내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본인이 본인의 사진에 세뇌당한 경우다.


위 사진을 보니 초등학교 때 동대문운동장 건너편 좌판을 깐 아저씨가 여러 가지 진기한 물건을 꺼내 놓고 팔았던 기억이 났다. 그중 인어 사진이 있었는데,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사진 속 인어는 하반신이 사람 다리고 상반신은 잉어의 모습이었다. 고정관념의 인어공주가 아닌 거꾸로 모습에서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어린 내 머리엔 그림이냐 사진이냐, 그림은 상상의 세계가 가능하지만 사진은 진실이다라는 생각만 들어있었다. 사진을 합성하거나 조작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포토샵이나 그래픽에디터로 늘 사진을 조작하고 노는 것과 대조된다.

한 세대 차이나는 내 어린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의 사고 틀이 엄청나게 다른데 위 사진이 출현한 1920년 대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 있는데, 스스로 세뇌하는 것이다. 아니 내 말을 조금 고쳐야겠다. 지금의 아이들이 자기세뇌가 더 심하다. 하긴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더 문제가 된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거짓말을 못한다'를 배경지식으로 가지고 있으면 사고의 범위가 '사진=진실'의 틀 안에서 고정된다. 생활, 학습, 사고 실험, 스토리텔링, 사랑, 감정 모두 틀 안에 갇힌다. 아이들과 생활하면 재밌는 고정관념을 발견할 수 있다. "닭 뼈를 개에게 먹이면 개는 죽는다" 류의 생활상식 오류와 "남자는 ~하고 여자는 ~하다" 류의 성적 담론들, 그리고 부모 및 가까운 어른들 영향으로 보이는 정치담론들, 매체로 인한 북한에 대한 인식 등이 있다. 좀 얘기가 샜는데 아이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낳는 문제는 다른 날에 얘기해야겠다.(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서~)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이루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뇌가 진실을 조작한다. 청소년들은 자기 정체성을 환경과 자신의 욕망에 따라 디자인한다. 나쁜(걱정스러운) 얘기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가 문제가 되는데, 자기를 '바보'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바보가 아닌 자신을 바보로 디자인한다. 이 경우도 심혈을 기울인다. 노력해서 바보가 되는 것이다. 학교생활과 학습에서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던 아이가 갑자기 바닥으로 무너지는 것은 세뇌된 자기 정체성 때문이다. '바보'로 사는 것은 잠깐 자존심 상하지만 오랫동안 편안할 수 있는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보 연기가 아니다. 의식은 하루빨리 바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부족한 자신에게 불만을 갖는다. 무의식은 계속해서 바보로 살라고 한다.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뇌가 따라가는 것이다. 뇌는 개체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경제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살기에 유리한가를 따지지 어떤 것이 옳으냐를 생각하지 않는다. 옳은 가치관을 따르는 것도 학습의 결과이다. 무의식은 학습 이전의 본능에 충실하다.

왜 지금의 아이들 무의식은 멍청(?)하게도 자신을 바보로 만들까? 왜 부모 세대와 비교했을 때 스스로 바보 만들기가 강화됐을까? 크게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후견인으로서 부모의 울타리가 견실하다는 것이다. 캥거루족과 관계있다. 능력 있는 부모가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에 바보로 살더라도 물리적, 사회적 목숨이 안전하고 에너지 사용이 적어서 스트레스도 적다.

두 번째가 중요한 이유이다.

디지털 시대로 탈바꿈이다.

90년 이후 출생자들은 돌상에 마우스가 올라온 아이들이다. 휴대폰 문자에서 최근의 소셜 네트워크 사용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기기가 확장된 신체로 기능하는 친구들이다. 디지털 패러다임은 기존 권위의 해체와 다중 권위의 생성이다. 집중하고 좇아야 할 권위가 사라지고 나 자신과 내 생각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새로운 권위인 것이다. 부모 세대와 달리 아이들은 롤모델이 없어지거나 100명에게 서로 다른 100가지 롤모델이 있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당위"가 없어졌다. 기성세대가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하루 9시간 이상을 자려고 드는 아이들은 현실을 피하려고 드는 경우이다. 최소한 자는 상황을 인정받으면 현실의 과제에서 해방된다. '나 같으면 자라고 해도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자지만, 아이들은 계속 졸리다. 뇌가 스스로 피곤한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늘 피곤하다. 그렇게 세뇌하기 때문이다. 단재 아이들 중 상당수는 오래 자려고 한다. 브레인 세팅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 끝에 기획한 것이 여수 돌산 캠프이다. 오래 자려고 하는 의지는 과제를 외면하고픈 바람 때문이다. 아이들을 과제에서 해방시켜주면 어떨까? 당연히 오래 자지 않을 것이다. 이 가설은 적중한다.

204A3F4A4DBC23B21A0E4E 향일암 가는 길

오후에는 가벼운 산행을 했다. 차량이 생겼으니 함께 타고 숙소 주변을 돌아다녔다. 여기서 5분 거리에 낚시 마을이 있다. 작금항이 있는 마을의 별칭이다. 낚시꾼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란다. 아무 낚시가게에 들어가 우리 아이들 바다낚시 경험을 의뢰했다. 운이 좋은 편이다.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는 아이들이 이곳에 내려와 생활하는 배경을 듣더니만 큰 관심을 보였다. 날씨가 좋으면 주말에 배 타고 나가자는 것이다.

향일암은 한국의 3대 일출 view point라고 한다. 향일암이 낚시 마을에서 10분 정도만 가면 나오는 율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시간 정도 걸으면 향일암에 도착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아직 준비된 몸이 아니기에 30분 정도 걷고 되돌아왔다. 1등으로 오르고 1등으로 내려간 종찬이는 사진 속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