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에게 드리는 당부
지난밤에 비가 많이 내렸다. 제주 특유의 환경 탓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닐장판 위가 물바다이다.(과장된 표현으로) 고온다습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이런 극단적 날씨가 없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실내에 널어놓은 올레길 빨래도 거의 말랐기에 주인을 찾아가도록 했다. 학부모에게서 내일 비행기 스케줄을 묻는 문자가 오고, 아이들도 물어보고, 긴 캠프 끝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의 준비가 벌써 시작됐다.
집으로 간다는 기쁨도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두려움도 있나 보다. 현실은 아직까지 답답하다.
용한 점쟁이는 과거를 다 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미래를 예언하진 못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과거를 모두 알았다. 오늘을 만든 어제도 알았다. 미래를 예언하지 못하지만 미래로 걸어가는 방법을 말해줄 수 있다. 대표교사 이준호 선생님이 아래 글에 남긴 것처럼 상담을 요청하시면 자세한 개인 자료를 가지고 방문 또는 적당한 장소에서 미팅을 통해 "방법"을 말씀드릴 것이다. 물론 미팅이 어렵다면 메일로 안내 말씀을 드릴 것이다. 추가 비용 없다.
캠프 참가자들의 공통점에 대해서 말씀드린다.
우선 참가자들은 스토리텔링을 매우 좋아한다. 다만 텍스트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한 스토리를 즐기기 어렵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글로 옮긴 듯한 단순하고 자극적인 판타지를 즐겨 읽는 것은 텍스트 독해와 별개의 문제이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한다고 집중력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심한 친구는 텍스트 혐오감까지 보인다. 방치할 수 없는 상태이다. 중요한 점은 독서(읽기)를 싫어하거나 독해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사고력이 낮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문자로 된 글에 거부감이 있을 뿐이다. 정보 매체는 문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성적은 오로지 문자만을 매개로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여행이 오감을 모두 사용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감은 모두 평등하며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데, 캠프 친구들은 극단적으로 시각에 편중된 감각만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에 감각 사용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본다. 헬렌 켈러가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그 웅장함을 느낀다고 하자 어떻게 느낄 수 있냐고 기자가 물었다. 헬렌 켈러는 폭포에 비산 되는 물방울의 맛을 보고, 폭포 특유의 냄새를 맡고, 무엇보다 낙하수의 진동을 느끼며 폭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노라고 말했다. 그런 것이다. 후각, 미각, 촉각은 시각, 청각을 대신할 정도로 훌륭한 감각이다.
선생님 설리반은 헬렌 켈러의 손을 잡고 수도가로 갔다. 똑똑 물방울이 떨어지게 수도꼭지를 조금 틀고는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지게 했다. 떨어지는 물방울의 감촉, 긴장하는 차가움, 액체의 미끌 거림, 축축함 등을 충분히 느끼게 한 다음 손바닥 위에 선생님의 손가락으로 "W A T E R"라고 써줬다. 이것이 교육이다. 설리반 선생님의 헌신과 방법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senses)을 일깨우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캠프 참가자들은 어린 시절(유치원, 초등학교) 감각의 분화가 예민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친구들은 대개 숨은 그림 찾기에서 어려움을 보인다. 선 두께의 작은 차이, 진분홍과 주홍색이 주는 느낌의 차이, 바이올린과 비올라(심지어는 첼로) 소리 차이, 실크와 폴리에스테르가 주는 감촉의 차이에 둔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차이를 느꼈을 때 자유로운 표현이 막혀있었던 탓이다.
여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빼먹은 얘기가 있는데, 캠프 참가자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당연히 컴퓨터를 없애고, 아이의 휴대전화도 주지 말아야 한다. MP3 플레이어도 마찬가지. 컴퓨터를 활용하는 일이 있겠지만(예를 들어, "숙제 때문에 꼭 컴이 필요해" "담임이 학급 홈페이지에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했어" 등등) 약간의 불편과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컴퓨터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 (1년 정도; 이 과정에서 아이와 갈등이 심하더라도 이겨내시기 바란다)
영화는 비디오나 DVD를 대여해서 보도록 하고, 반드시 멘토와 함께 봐야 한다.(가장 좋은 멘토는 부모, 그다음은 손 위 형제, 전담교사 순이다) 좀 자극적인 것이라도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것이라면 괜찮다. ("와일드 아이드 샷" "색계" 따위) 저급 상업 영화는 (판타지 소설도 마찬가지다) 스토리 전개에서 전후 맥락이 필요 없다. 맥락을 유지하기 위해 집중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연속되는 영화들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따위) TV라면 유재석, 강호동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이다.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더 이상 봐서는 안된다. 하지만 "닥터 지바고"의 경우 우리 아이들이 한 번 보고 스토리를 잡을 수 없다. 러시아 혁명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바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괜찮다. 영화를 보기 위해 역사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캠프 참가자들은 "닥터 지바고"를 세 번 보면 된다. 별도의 텍스트를 제공하지 말라. "전쟁과 평화" "죄와 벌"을 영화로 보여주라. "닥터 지바고"를 위한 배경지식이 된다. "나폴레옹"을 보여줘서 프랑스혁명과 "전쟁과 평화"의 연결고리를 제공해주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여줘서 시민혁명의 미국식 발전을 알려주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보여줘서 민주주의를 위한 전 세계 지식인들의 자세를 가르쳐주라. 모두 책으로 출간된 고전들이다. 영화로 제작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책은 읽을 수 없으나 영화는 잘 볼 수 있다.("밀양" 같이 영화제에 출품하여 좋은 평을 받은 한국영화도 권한다)
오해가 없어야 한다. 영화를 통하여 세계사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좋은 영화를 감상할 때는 요소요소에 숨은 영화적 장치(미장센)와 대사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보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텍스트로는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미지와 청각으로는 잘 기억한다. 현재 이 아이들은 도통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 "책"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다.
또한 멘토와 함께 보라는 것은 영화 시청 후 반드시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으면 장기기억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감상문 쓰기가 가장 나쁜 경우이다. 반드시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 자체가 기억의 과정이다.
두 번째, 캠프 참가자들은 학습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보통의 아이들보다 크다. 정확히 말하면 낮은 학습 성적에 대한 부모 및 주변의 질타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 사람들은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질타가 크면 클수록, 꾸중이 계속될수록 절대로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꾸중하지 마시라. 특히 부모가 함께 야단치는 것은 금물이다.(일반적인 담론이 아니라 캠프 참가자들에게 해당하는 지적입니다)
세 번째, MQ가 낮다. 도덕지수를 말함이다. MQ와 학습결과는 높은 상관 상계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욕망 제어장치가 부실한 편이다. 물론 망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분명 제어장치가 보완돼야 한다. 놀이가 부족한 탓이다. 넘치는 사랑으로 키운다고 버릇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 손에 크면서 "오냐오냐" 키웠다고 제 멋대로 크는 것이 아니다. 또래들과 마당에서 노는 것을 거의 해보지 못하고 컸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어릴 때 했던 숨바꼭질, 자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는 자연스러운 욕망 조절 프로그램이다. 내가 "죽더라도" 규칙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떤 놀이를 한단 말인가? 컴퓨터 게임은 매우 부정적이다. 하지 말아야 한다.(이것 역시 캠프 참가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컴퓨터 게임이 독인 것은 아니다) 차선으로 레저스포츠를 권한다. 당구, 볼링,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길거리 농구 등을 권한다. 함께 하고, 규칙 분명하고, 승부를 내는 운동경기가 좋다. 탁구를 특히 권한다. 여러 가지 장점(접근성, 비용, 흥미, 숙달 시간 등)이 있다.
네 번째, 쉽게 집중하지 못한다. 심하면 흔히 주의력 결핍(ADD)이라고 부른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산만한 것이 아니라 다중처리능력(multi-tasking ability)이 뛰어난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시간을 짧게 조정하고 반복 횟수를 늘리는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90분 공부를 3번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30분 공부를 9번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남들보다 휴식시간을 많이 사용하여 느리게 시간 활용하는 것을 용납해야 한다. 더 이상 산만하다고 꾸중하지 말라.
정리해서 말하면 캠프 참가자들은 기억력이 나쁘지 않지만 기억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고, 집중과 이완의 리듬을 유지하는 경험을 가져보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는 대책은 컴퓨터와 MP3플레이어/휴대폰 없애기, 자주 여행하기, 좋은 영화 보기, 멘토와 대화하기, 절대 꾸중하지 않기, 규칙이 분명한 레저스포츠 즐기기, 학습 시간을 짧게 쪼개기 등이다. 이번 캠프는 이를 염두에 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다.
이제 24일 간 캠프가 막을 내린다. 모두 감사드린다. 부디 캠프 참가자와 그 가족 모두 행복하시길 빈다. 만약 너무 어렵다거나 자신 없을 때는 아이를 우리에게 맡기시길 권한다.
추신) 먹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채식 위주로 서서히 바꿔가시고, 비싸더라도 유기농 식재료를 쓰며 엄마가 직접 조리하는 슬로 푸드를 먹이도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