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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Dec 11. 2017

수학을 이대로 둘 순 없어요

모리타 마사오의 수학콘서트에 초대합니다

몇 년 전 페이스북에 초등2학년 딸을 둔 아빠의 넋두리가 올라왔습니다.(사진1)

야근 중, 퇴근해서 이미 한잔 하던 활동가들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이런 기분이 몇 년 만이 더냐?”
행복한 기분에 늦은 시각, 아래 층 태국음식점에서 오랜 숙원이었던 싱하맥주를 퍼마셨다.(맨날 이러지는 않습니다.^^;)
그 와중,집에서 큰 아이로부터 울먹이는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
“아빠...수학문제...어려워서...못 풀겠어...”
“엄마는?”
“엄마...자...”
전화 받고 부리나케 출발해 두 시간 엇비슷하게 소요되는 집에 도착해보니,아이는 눈물투성이로 부둥켜안으며 맞아주는데, 아내는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 눈 만 잘 껌뻑이고 있다.
아내 말에 따르면 풀이 과정을 다 적어 놓고도 세 시간 동안이나 답을 적지 못 한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문제 한번 풀어 보실래요? 싱하맥주 기운 탓인지 저도 몰래 풀이과정을 훔쳐봤답니다.^^;

포스팅한 아빠는 며칠 뒤 딸의 교과서 사진을 한 번 더 올렸습니다.(사진2)

딸아이 수학 공부 함께하면 치매예방에도 도움될 듯합니다. 제 치명적인 약점이 숫자에 약하다는 점인데...재미삼아 풀어보세요^^* 심각해 지시기 없기~~~


줄줄이 달린 댓글은 "이게 초등학교 2학년 수학이라고?"하며 놀라움을 나타내는 말들이었습니다. 이러니 학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둥, 나는 원래 수포자였기에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둥, 세 살배기 귀염둥이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수학공부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현재는 교실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초등 어린이들과 생활하는 대안학교 교사이고, 과거에는 공교육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합치면 30년입니다. 한 세대의 시간동안 제가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학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라도 수학의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위 교과서 사진은 2009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2015년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수학 내용을 쉽게 바꾸고 학습 분량도 줄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심화문제를 피해갈 수 없고, 수학으로 인한 고통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수학이 원래 어려운 거잖아.
우리는 수학이 원래 괴로움을 주는 악당인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수학은 숫자를 가지고 공부하기에 정확하고 정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은 논리 정연한 흐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과연 그런 걸까요.

수학의 고통에 괴로웠던 어른들 중 일부는 전에 없던 진풍경을 보입니다. 바로 초중고 수학을 다시 공부하는 겁니다. 눈○○수학, ○○펜, 구○학습 등 학습지를 어른이 구독하고 열심히 문제를 풉니다. 특히 임신부들에게 수학공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임신한 예비 엄마들이 카페에 모여서 수학의○○을 푸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우리 아기는 엄마 아빠처럼 수학 때문에 발목 잡히지 말라는 기원의 살풀이굿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공부를 멀리했고 성적도 나빴던 경험을 바로 자기 자신의 불성실과 무능력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내가 수에 약한 사람이라서, 내가 계산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어서 수학을 멀리하다보니까 점점 더 수학을 못하게 됐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수학에 대해 오해를 넘어 속고 있는 것이며, 수학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입니다. 어쩌다가 '배우는 모든 것'이란 뜻의 그리스어 mathemata(마테마타)가 수학으로 번역되는 바람에 수학에서 수(number)가 주인공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본래 수학은 배우는 모든 행위의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놓지마 정신줄'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정신줄을 꽉 잡고 열심히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바로 수학이 아닐까요.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수학의 자세는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벗어나 시좌를 높인 상태에서 자기를 관찰하고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을 잘 관찰하고 집중하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 누구나 지금 당장 수학공부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9세 어린이에게 위에서 제시한 문제의 정답을 제시하라는 것은 수학의 극히 일부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학교수학은 침소봉대의 극단적 예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걸어왔던 길과 멈춘 지점을 스스로 확인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수학공부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일본의 독립연구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리타 마사오이며, 작년에 <수학하는 신체>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면서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모리타 마사오는 1985년 도쿄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미국 시카고에서 보냈으며 중학교부터는 일본에서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4년 도쿄대학 문과에 입학, 당시 유행이던 IT 벤처 비즈니스에 흥미를 느껴 실리콘밸리의 기업경영자 코스를 밟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수학은 물론이고 이과 계열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도쿄대학 공학부 시스템창성학과 지능사회시스템 과정을 마친 뒤에는 이학부 수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인 2010년에 후쿠오카 현 이토시마 시에 수학도장을 설립했습니다. 2012년에는 근거지를 교토로 옮겨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전국을 돌며 ‘수학 강연회’, ‘어른을 위한 수학 강좌’라는 이름을 단 토크 콘서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수학은 신체가 하는 것이라는 언급은 뇌의 작동만으로 수학공부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금을 긋는 것입니다. 수학하는 신체는 이미 마음이 깃들어있는 몸입니다. 몸과 마음, 마음과 몸이 분리되지 않은 신체가 자기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타인과 세계에 대해 관찰을 통해 패턴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니라면 수학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라 모리타 마사오가 말합니다.

추상적인 숫자는 하나부터 셋까지만 셀 수 있는 목동이 수백 마리 소 떼를 관리할 수 있을까요? 원시적인 심성을 가진 아프리카 원주민 목동은 수백 마리 중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 둘 셋만 아는 데도 말입니다. 수백 마리 중 없어진 한 마리 소는 숫자로서 '1'이 아니라 '그 소'이기 때문에 목동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알아차림을 심리학자 워너(H. Werner)는 '상보적 지각'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1'이 아니라 '그 사람'이고, '2'가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 아빠'이며, '3'이 아니라 '소중한 나의 인형들'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학에서 추상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린이 청소년 교육에서 '그 사람' '사랑하는 엄마 아빠' '소중한 나의 인형들'의 과정을 건너뛰어서 밑도 끝도 없는 추상의 세계로 몰아넣는 것은 그만둬야 합니다.

'닥치고 추상성'이 수학에 대한 오해이며 수학을 공부하는 우리의 신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종착점은 차별과 배제에 따른 고통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수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수학이 억울해서 눈물 흘린다고 때론 강하게, 때론 여리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수학연구자가 모리타 마사오입니다.

수학수업과 수학시험을 고기 굽는 불판이라고 한다면 갈 때가 지났습니다. 맛난 고기가 시커멓게 탈 뿐입니다. 먹을 수가 없어서 버려지고 있습니다. 젓자락 잡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빨리 불판을 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수학교육의 판을 갈려고 합니다. 학교교육에서 수학은 완전히 새판을 올려야 합니다.

그 첫걸음을 2018년 1월22일 저녁 7시~9시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가까운 카톨릭청년회관(청년문화공간 주 동교동) 지하 1층 CY씨어터에서 내딛습니다. 모리타 마사오의 첫번 째 한국 수학콘서트입니다. 그의 연주에 집중하시고, 질문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수학 본연의 모습을 복원하고 수학이 고통의 바다가 아닌 기쁨의 숲이 되도록 가꾸려고 합니다.

손....잡아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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