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규 Dec 15. 2017

고기 다 탄다, 불판 갈아라

수학을 이대로 둘 순 없어요

우리는 수학이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 잡는 일에 전념하는 일본의 젊은 학자를 한국에 초대했습니다. <수학하는 신체>(에듀니티, 2016)의 저자 모리타 마사오입니다. 그는 수학을 연주한다고 말합니다. 모리타가 진행하는 수학콘서트를 서울 및 지방 몇 군데에서2018년1월에 진행합니다.

작년에 번역 출간된<수학하는 신체>는 수학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습니다. 그 직후<수학의 정석>(성지출판)이 출간50주년을 맞았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하나의 수학참고서가 50년 넘도록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내용의 뛰어남과 별개로 지난50년 동안 중등 수학교육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물론 교육과정도 여러 번 바뀌었고 입시도 수차례 변화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학이 원래 어려운 것이라 ‘내’가 수학을 못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 운명적인 것으로 믿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어떤 시도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학입시에 핵심 변수로 작용하도록 수학은 지난 반세기동안 강제로 악당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수학수업과 수학시험을 고기 굽는 불판이라고 한다면 갈 때가 지났습니다. 맛난 고기가 시커멓게 탈 뿐입니다.먹지도 못하고 버려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빨리 불판을 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리가 모리타 마사오를 초대하여 수학콘서트를 진행하는 것은 이런 판갈이의 시급한 요청 때문입니다.     

콘서트에 걸맞게 빗대어 말하자면, 연주자로서 모리타가 소개할 작곡가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영국의 인공지능 창시자 엘런 튜링(1912~1954)과 일본의 세계적인 수학자 오카 키요시(1901~1978)입니다. 메인 연주곡은 오카 키요시의 작품입니다. 튜링과 오카의 수학적 업적보다 위대한 수학자가 펼쳤던 자연과 사람에 대한 해석과 철학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오카 키요시(1901~1978)

그동안 우리는 서구의 수학적 전통을 수학의 일반적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기계문명과 전자공학의 발전, 최근의 4차산업혁명과 알파고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수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건 사실입니다. 서구의 수학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사람이 수학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컴퓨터)가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걸으면서 어린이 청소년과 일반인에게 수학은 접근할 수 없는 비밀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모리타는 수학의 고통이 수학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오카 키요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합니다. 다변수해석함수론을 완성한 수학자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오카는 수학의 핵심은 정서(情緖)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 수학의 핵심으로서‘정서’를 모리타가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모두‘풍경’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학도 수학만이 가지는 고유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역사적으로 구축된 수학적 사고를 둘러싼 환경세계 안에서 수학자는 다양한 도구를 구사하면서 생각하고 행위합니다. 이 행위가 새로운‘수학적 풍경’을 만들어 갑니다.     

수학자란 이런 풍경의 포로가 되어버린 사람을 가리킵니다. 모리타는 학생으로서 어린이 청소년이 학교 수학을 공부하는데 어떻게 풍경의 포로가 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풍경에 대한 모리타의 설명은 탁월합니다.


생물이 체험하는 것은 그 생물과는 독립된 객관적인‘환경’이 아니라 생물이 행위와 지각의 연관으로 스스로 만들어낸‘환세계(環世界)’다. 생물을 하나의 주체로 간주해서 이렇게 피력한 사람은 독일의 생물학자 윅스퀼(1864~1944)이다. 
윅스퀼의 발상은 소박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케이크가 있어도 짐승의 피를 쫓는 모기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자칫 모든 생물이 주어진 객관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각각의 생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생물에 고유한 국소적인 세계(환세계)일 뿐이다. 
저서<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도서출판b, 2012)의 첫머리에서 윅스퀼은 진드기의 환세계를 묘사한다. 진드기에게 생물학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은 주위에서 밀려드는 막대한 정보 가운데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교미를 끝낸 수컷 진드기는 나뭇가지 끝에서 동물을 기다린다. 그러다 포유류의 피부에서 분비되는 부티르산 냄새가 감돌면 앞뒤 재지 않고 몸을 던진다. 무사히 먹잇감에 착지하면 이번에는 후각 대신 열에 의지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능한 한 털이 없는 따뜻한 장소를 찾아가서 동물의 피부 속으로 숨어든다. 부티르산 냄새,동물의 피부 감촉과 온도 그리고 이러한 자극에 움직이는 몇 가지 단순한 행위. 이것이 진드기의 환세계의 전부다.
이것 말고 환경의 막대한 정보와 여기서 나올 수 있는 행위의 가능성은 진드기에게 무의미하다. 아니 무의미하다기보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은 모두‘풍경’안에서 살고 있다. 그 사람의 환세계가 '풍경'이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가 풍경이 나타나는 방식을 좌우한다. ‘풍경’은 어딘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때 그곳에 생성하는 것이다. (<수학하는 신체> pp.127-130)
윅스퀼 저서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의 환세계를 업그레이드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어린이 청소년의 경우 수학을 공부한다는 미명 아래 환세계의 축소를 가져옵니다.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진드기처럼 단순한 환세계에 갇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학에 대해 오해를 넘어 속고 있는 것이며, 수학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입니다. 어쩌다가 '배우는 모든 것'이란 뜻의 그리스어 mathemata(마테마타)에서 온 <mathematics>가 수학으로 번역되는 바람에 수학에서 수(number)가 주인공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본래 수학은 배우는 모든 행위의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놓지마 정신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정신줄을 꽉 잡고 열심히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바로 수학이 아닐까요.     

기호적인 계산이 수학적 사고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수학적 사고의 대부분은 오히려 비기호적인 신체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신체화한 사고 과정 자체의 정밀도를 올리는 것이 꼭 필요해집니다. 이것이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모리타는 말합니다.

모리타 마사오

어린이 청소년이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도 '경지'에 오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경지에 오르는 것은 과정이지 목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해서 안다는 것은 학습자 수준에 걸맞게 경지에 오르는 일이며,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안다’는 것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슬픔의 감정에 자신도 감염되는 것입니다. 슬프지 않은 자신이 슬픈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안다는 것은 자신도 완전히 슬퍼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 ‘자신의’ 슬픔이라는 한정을 넘어서 단일한 ‘슬픔’이 되는 것이다. ‘이치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情)이 그것과 동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수학에 자신의 몸을 일치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모리타 마사오가 말하고자 하는 고갱이가 "수학하는 신체"입니다. 정(情)의 실마리(緖)를 따라가면 자기가 타자와 일치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경지에 이르는 일이 어른 학자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 청소년이 공부하는 모든 과정에 정서가 매개가 되는 것이며, 정서 자체가 공부의 본질입니다. 특히 수학은 더욱 그렇다고 모리타 마사오가 말합니다.

1월22일 수학콘서트 장소

고기를 태우기만 하는 불판의 교체를 위한 첫걸음을 2018년 1월22일(월) 저녁 7시~9시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가까운 카톨릭청년회관(청년문화공간 다리) 지하 1층 CY씨어터에서 내딛습니다. 모리타 마사오의 첫 번째 한국 수학콘서트입니다. 그의 연주에 집중하시고, 질문도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방학 중인 중고생 자녀와 함께 오시면 더욱 좋은 시간이 됩니다. 여러분과 함께 수학 본연의 모습을 복원하고 수학이 고통의 바다가 아닌 기쁨의 숲이 되도록 가꾸려고 합니다.     

손잡아 주실 거죠.

입장료 1만원으로 모리타 마사오의 다음 일정에 한번 이상 참관할 수 있습니다.(현장납부가능)
● 1월22일(월) 저녁 7시 카톨릭청년회관(청년문화공간 다리) 지하 1층 CY씨어터
● 1월23일(화) 오후 3시30분 경기도 하남광주교육청 대강당 
● 1월24일(수) 저녁 7시 서울 강명초(강동구 상일동) 강당
※문의 010-2301-2398


매거진의 이전글 수학을 이대로 둘 순 없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