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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Jul 19. 2017

무지개손을 아시나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무지개손을 들어보셨나요?

   "무지개손"은 고유 브랜드로 보이고 제품분류명은 <인솔밴드>인 듯합니다.

이런 물건입니다.      

    

   지지 친구들과 양평 캠핑에 가서 즐겁게 활동했는데 막내 시현이 장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아 부득이 이튿날 아침에 서울로 복귀하고 말았습니다. 시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학교에 들어오니 오전 10시. 외발자전거와 S보드를 가지고 평화의 문 광장에 나갔습니다. 양평에 외발자전거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서운했던 녀석들이라 쌀쌀한 날씨지만 신나게 외발자전거를 탑니다. 드디어 범용이도 벽을 잡지 않고도 외발자전거에 탑승해서 질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땀을 흘리는 녀석들을 데리고 어제 시청한 역사스페셜의 무대인 풍납토성으로 이동했습니다. 백제가 출범하고 5백 년 동안 중심지였던 곳이 자기 집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된 범용이가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범용이는 S보드를 타고 대원이는 외발자전거로 풍납토성 일주를 하다가 인솔밴드를 잡고 동네 나들이 나온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무지개손을 찾았습니다.

아래와 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솔교사가 1~2명일 때, 효과적으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교사가 아이들 수만큼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바깥 활동에서 안전사고 예방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효과적인 고안이라 인정됩니다. 따라서 무지개손에 어떤 유감도 없습니다. 

다만 페북을 열면 온통 세상 걱정에 휩싸여있고, (김호기 연세대 교수 경우 1970년대로 정치사회문화가 회기하고 있음을 걱정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 유사한 글들이 넘쳐납니다) 권력의 치졸함에 치를 떠는 요즘 풍경을 반영하는 장면으로 다가왔을 뿐입니다.          

   저는 88년에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유치원 교육과 초등교육의 연계성을 위한 연구활동의 일환으로 동덕여대 부속유치원이 수업공개를 했고, 제가 참관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여대에서 부설로 운영하는 유치원은 모두 경쟁률이 높습니다. 그만큼 시설이나 교원의 규모와 질이 우수하고 비용이 저렴하며 경영이 투명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당시 동덕여대 부속유치원은 잠실과 강남에서 등원하는 원생들도 있었습니다. 스쿨버스를 먼 거리까지 운행한다는 소개가 있었습니다. 당시 원장 선생님은 동덕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님이었고, 미국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오신 박사님이셨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유치원 선생님들은 당당한 표정에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원생들의 천진난만함과 건강한 개구쟁이 짓이 보기만 해도 흐뭇했습니다. 웬만한 동네 유치원은 흉내 낼 수 없는 넓은 공간에서 90년 대 중반에 도입되는 "열린 교육"을 89년에 이미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편지봉투로 물고기 만들기였습니다. 일반적인 흰색 편지봉투 양쪽에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물고기를 그리고 카시미론 솜을 빵빵하게 넣은 다음 스템플러를 사용해서 바깥 테두리를 박음질하듯 두르고 가위로 오려내서 유선형 모양으로 알록달록한 물고기를 완성했습니다.

   왼쪽 사진은 참고용이고 당시에는 낚싯줄을 테이프로 고정시켜서 모빌로 매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하는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솜을 넣고, 가위로 오리는 과정이 나이에 비해 신속하고 능숙했습니다. 초등 1학년 담임들인 참관 교사들은 다 같이 감탄했습니다. 유치원 교사들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보셨죠. 우리는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서 진급시키니까 초등학교에서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잘 교육하세요'

   공개수업용 참고 책자를 한 권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내가 유치원 경영자이거나 교사라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수업했을까?' 

   저는 유치원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치원도 없었고, 다닐 수 있는 경제사정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엄마의 일상을 더 가까이 더 많은 시간 관찰할 수 있었고 세상을 놀이터로 또래들과 끊임없이 놀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동덕여대 부속유치원은 매우 선진적이고 우수한 유아교육기관이지만 '내가 만약 동네에서 놀지 않고 유치원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에 묶여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에 여전히 유치원 등교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교사일 때는 초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유치원 교육이 몇 곱절 더 중요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유치원 교육과 관련 없는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책 제목에 강력히 동의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기본을 유치원에서 다 터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 한국의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동덕여대 부속유치원을 참관하고 돌아오면서 안게 된 화두였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동덕여대 유치원은 가끔 떠올리는 이미지인데, 고민이 축적될수록 유치원 교육의 문제로 정리되는 내용이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결론은 유치원 원아의 작업에서-예술 표현이든 몸 움직임이든 인지학습이든-어린이가 주인공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라 함은 작업의 독점자가 아닙니다. 어떤 작업도 모두 혼자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업은 어떤 수준, 어떤 형태 이든 간에 협력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협력하는 모든 주체는 평등하며 그들의 작업은 똑같이 소중합니다.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Keith Haring;1958~1990)이 보여준 것처럼.

   그러나 대부분 유아교육기관에서 원아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오히려 주인공은 교사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릴수록 교육자가 주인공, 피교육자는 옵저버. 초중고를 거쳐 대학으로 갈수록 교육자가 조언자, 피교육자가 주인공 성격을 띤다는 생각은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합니다. 즉 어린이는 인간으로 부족한 구성체이고, 교육은 미성숙한 어린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증진'시키는 의도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부족에서 충족으로 가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도모하는 것을 교육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가 낳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시대가 낳았다는 것은 전술한 교육 개념이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패러다임의 고정이 아이들에게 비극을 안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피교육자에게 '충족'으로 가라고 명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방향을 잃어버린 상황이 현재 아이들의 비극이 됐습니다. 결국 교육현장은 "너는 부족한 존재야"라고 주입하는 일부터 하게 됩니다. 형식은 코미디, 내용은 비극입니다. 

   비극은 푸코가 말한 "생산하고 관리하는 권력"의 성격을 증명하게 됩니다. 유치원 연령의 어린이를 매일 일정 시간 교육기관에 묶어둠으로써 교사와 피교육자 간의 권력관계가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권력의 계급성은 인간 유전자에 없습니다. 앞으로 지금과 같은 세상이 1만 년쯤 계속된다면 상위계급, 하위계급을 천성으로 타고나도록 DNA가 리셋될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유전자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게 합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제한하는 권력에 반항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기관은, 특히 유치원 및 어린이집은 어리다는 사실이 권력에 순응해야 한다는 기본 조건이라고 반복 세뇌하도록 합니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수동적 인간이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우리의 현실은 인솔밴드(무지개손)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인솔밴드를 잡고 가는 모습을 보고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떠올렸습니다. 깔레의 시민들 등장인물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숭고성을 덧씌운 것처럼 인솔밴드를 붙잡고 대오의 흐트러짐 없이 움직이는 어린이 들 모습에 질서의 숭고미를 왜곡해서 덧칠한 것은 아닐까요. 

   밴드 손잡이를 놓는다면 반드시 페널티가 가해지는 상황에서 수년 동안 밴드 손잡이 잡는 것이 "모든 것을 배우는 유치원"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면화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인솔밴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스토리텔링도 생산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저는 검증된 지식이 상상력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꾸며진 신화보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가 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로 탄생하지 않은 꿈은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거치지 않는 소망은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억지웃음은 폭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엄중한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에서 로버트 풀럼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신화가 역사보다 잠재력이 크다고 믿는다.

     꿈이 사실보다 강력하다고 믿는다.

     소망이 언제나 경험을 누르고 승리한다고 믿는다.

     웃음이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어린이 청소년 시기의 교육이란 로버트 풀럼의 믿음을 설파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담은 스토리텔링이 현실을 더욱 풍족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 어린이 청소년 시기에 해야 하는 교육의 핵심은 그들이 마음 놓고 자기의 스토리텔링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교사의 유일한 역할은 그 스토리를 들어주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인솔밴드의 손잡이를 잡고 걷는다는 것이 주는 함의는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201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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