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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Oct 11. 2024

반드시 권력을 잡아야 한다

검찰공화국의 출발

“구독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낭독하지 못한 소설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김조영 성우님 부탁합니다.”


“원장님, 제가 원장님 방으로 가겠습니다. 제게 시간을 내주십시오.”

이명호 국정원 8국장이 노재준 국정원장에게 내선 전화로 단독 미팅을 제안했다. 노재준이 원장으로 취임한 다음 날이었다.

“무슨 일로 날 만나겠다는 건가?”

노재준 원장이 껄끄럽다는 느낌을 풍기며 물었다.

“제가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명호 8국장은 25년 째 국정원에서 일하는 실세였다.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가 됐지만 임관 3년 만에 안기부에 현역 군인으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우고 중위로 제대했다. 노태우 정부 출발부터 안기부에 들어가 궂은일 뒤치다꺼리 하면서 잔뼈가 굵어졌고, 김기춘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육사 출신이지만 군인 색깔을 진즉부터 뺀 인물이다. 노재준의 국정원장 임명으로 분노와 더불어 불안감을 안고 있는 김기춘은 가장 먼저 이명호에게 전화했다. 김기춘은 이명호에게 노재준 원장을 독대해서 ‘깝치면 죽는다’는 국정원의 전통을 통보하라고 명령했다. 아울러 인사 발령도 가이드하도록 했다.

“자네는 왜 나를 만나자고 했나?”

원장실 방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은 방음과 도청방지가 완벽하다. 이명호 8국장과 마주앉은 노재준 원장이 물었다. 

“선배님. 원장으로 취임하신 걸 축하합니다. 선배님이 노구를 이끌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겠다고 하니 후배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옆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이명호의 축하인사는 유쾌한 느낌이 아니었다. 이명호는 노재준의 육사 후배로서 기수는 16년, 나이는 18살 아래다.

“어쨌든 고맙네. 8국장 같이 유능한 직원이 부족한 날 도와주겠다고 하니 든든하구만.”

“원장님이 베트남에서 초급장교로 사선을 넘기도 하셨지만, 국정원은 전쟁터보다 더 긴장되는 배틀그라운드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계급에 관계없이 주저 없이 제거하는 게 국정원의 전통입니다. 정보부 수장이 최고 권력을 권총 사살한 세계 유일 국가가 우리 한국입니다. 김재규 부장님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박정희 각하를 제거했겠습니까. 우리 회사는 풍전등화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살신성인 하신 김재규 부장님과 다섯 안기부 영웅들의 정신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원장님도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이명호가 뼈가 있는 말을 건넸다.

“8국장. 내 들은 말이 있네만 역시 무척 건방지구만. 8국장이 나한테 경고하려고 날 만나자고 한 건가. 참으로 고약한 일이야. 오늘의 하극상을 잊지 않겠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 그만 돌아가게.”

노재준 원장이 최대한 자제하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원장님, 저는 오직 충정으로 드린 말씀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뵙고자 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2차장 임명에 관한 일입니다. 이게 다 우리 회사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일입니다. 사천호 치안정감을 2차장에 임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천호 경찰대학장은 전국 각지에서 지역 경찰 수장을 두루 역임하고 정보 업무에도 정통하고 있어서 국내 파트 2차장으로 제격입니다. 반드시 빠른 시일에 사천호 치안정감이 국정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이명호는 ‘반드시’를 말할 때 천천히 힘을 줘서 말했다. 국장은 1급 공무원으로, 이명호는 자신의 상사인 차관급 2차장 자리에 특정인을 천거하고 국정원장에게 임명하라고 압박을 넘어 협박했다. 사천호 경찰대학장은 경찰대 1기로서 경찰 계급 랭킹 2위 치안정감까지 올랐지만 경찰청장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한 다리 건너 고향 선배인 김기춘에게 자리 청탁을 했다. 김기춘은 사천호의 경력과 인물 성향까지 체크하고 노재준 원장 바로 밑에서 국내 파트를 다루는 2차장으로 사천호를 앉히기로 했다. 인사 천거의 통로는 심복으로 오랫동안 신뢰를 쌓은 이명호 8국장이었다. 

이건 노재준 원장에게 간접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형국이다. 시쳇말로 ‘쫄리면 뒈지시든가’와 같았다. 막 취임한 노재준 국정원장이 어떻게 대응할지 실험 삼아 자극하는 의미도 있었다. 마치 소련 흐루시초프가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하고 실행한 것과 같다. 김기춘은 노재준이 힘이 있다면 이명호의 통보를 거절할 것이고, 쫄리면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두 가지 상황에 따라 다음 단계를 각각 달리 설정하면 될 일이었다.

노재준이 이명호의 인사 제안을 받아들인 건 박지만과 상의한 결과였다. 그들은 국정원의 국내 파트 업무는 거의 불법적이고 지저분한 일을 벌이는 것이라 신임 2차장이 수행하고 책임도 지게 만들면 손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과 학살을 통한 국정원 장악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사천호는 세월호의 책임을 지우고 죽이든 살리든 아무 부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명호 같은 인물은 정권과 국정원장의 손바뀜에도 국정원을 쥐락펴락하는 실세라서 제거할 수 있는 좋은 명분도 생긴 셈이었다. 이명호의 숙청 없이 국정원 장악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사천호는 2차장에 취임하자마자 온갖 나쁜 짓을 벌였다. 사천호는 겉모습은 은퇴 노인으로 보이는 김기춘과 우병우 변호사를 만나서 무한 까방권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권력의 세례를 받아 영생을 얻은 것과 같았다. 사천호 국정원 2차장은 김기춘 우병우 쌍포가 미래 권력이 아니라 현재 권력이라 확신했다. 

김기춘은 박정희 사망 후 꿈에 그렸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성공해서 구름을 걷는 느낌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음은 자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5년 동안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통령 자리는 현실이 된다고 믿었다. 자기의 지난 캐리어는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대한민국에 자신만한 능력자는 없었다. 당연히 한반도 남쪽을 지배하고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혼란스러운 북한을 자신만큼 설득하고 항구적 한반도 평화를 만들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삶에서 조국에 바치는 마지막 봉사가 될 것이라 셀프 세뇌했다. 세뇌는 확신을 거쳐 신념이 됐다.

포스트 김기춘은 우병우였다. 김기춘은 만20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승승장구하던 우병우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할 때부터 눈여겨봤다. 하는 짓이 젊을 때 자신을 보는듯했다. 어떡하든 권력을 거머쥐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게 맘에 들었다. 캐리어에 비해 젊고, 특수통이라 말하지만 공안부에 앉아도 하나도 어색할 게 없는 놈이었다. 무조건 서울법대 출신 검사를 지낸 남자이어야 했고 60 넘은 후배들은 일단 걸렀다. 야망이 더 뜨거워서 화산에라도 뛰어들 배짱이 있는 사람을 찾았다.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말아야 하고 일처리 솜씨가 뛰어나서 보탬이 되는 놈을 고르다 보니 우병우가 선발됐다. 물론 스스로를 기만한 과대망상의 김기춘이 판단한 것이라 우병우는 기준에 걸맞지 않았지만 김기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렇게 둘은 검찰이 다스리는 공명정대한 공화국을 이루어보자고 합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공정(恐政)이었지만 말이다.


“네. 이 지점에서 소설을 잠시 멈추고 토크가 필요합니다. 국정원장에 4성 장군 출신 노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되고 김기춘의 검찰 세력과 박지만의 군부 세력이 서로 국정원을 매개로 냉전을 진행했다는 말씀이네요. 이게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2013년 얘기고, 다음 해 2014년에 냉전은 열전으로 진화해서 세월호 학살이 일어나는 전개입니까?”

이성한이 소설낭독을 멈추고 스토리 전개를 정리하고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려고 했다.

“정확한 이해네요. 세월호는 제2의 광주학살이구요. 1980년에 전두환 일당은 권력 탈취를 위해 기획 학살을 저질러요. 5년 전 당시 주한미군 정보원이었던 김용장이 증언한 내용이 있어요. ‘목포. 마산은 너무 협소하고, 부산. 대구는 너무 큰데다 경상도라는 지역적 의미가 있고, 대전은 서울과 너무 가까운데다 지역민들이 시위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광주여야 했다고 본다.’ 이 내용으로 80년에 자신이 미국 정부에 보고서를 보냈다고 말했어요.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받아내려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30년이 훨씬 지났으니까요. 문재인은 미얀마 바다에 가라앉은 KAL858 기체를 인양할 수 있음에도 모르쇠로 지나간 것처럼 미국으로부터 80년 당시 기밀문서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의도적 외면이지요.”

“저도 5년 전 김용장 씨 증언을 듣고 몸서리를 쳤습니다. 전두환이 죽기 전에 진실이 밝혀지기를 양심 세력은 모두 바라고 있었습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니까 가능하다고 기대를 걸었던 것입니다.”

“국가폭력의 역사는 끊인 적이 없어요. 세계사가 그렇고 우리 한국의 경우만 봐도 마찬가지죠. 세계전쟁사에서 가장 작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이 죽은 전쟁으로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말하잖아요. 6.25의 100만 민간인 희생은 국가폭력의 대표적 예이구요. 조선말에는 살아보겠다고 아우성 친 농민들을 조정이 외국군을 요청해서 학살했었죠. 그 결과 우리 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바보천치 짓을 한 고종이 있구요. 그런데 5.18 광주학살이나 4.16 세월호 학살이나 보안부대의 기획인데, 겉모습은 전혀 달라요. 5.18은 언론통제로 숨기려고 했지만 4.16은 일부러 모든 매체를 동원해서 나라 전체를 장례식장으로 만들었어요. 전 국민 분노를 이용해서 노태우 이후 30년 동안 권력 실세로 군림한 국정원을 밀어버리고 군부가 권력 중심으로 복귀하려고 한 거죠.”

토끼탈이 우울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저도 김용장 씨 증언을 듣기 전에 설마설마 했습니다. 자국민을 이유 없이 죽이는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부터 5.18은 늘 광주 시민의 과다한 저항을 상상하게 세뇌됐습니다. 무기고 습격이라든가 아시아자동차 공장의 장갑차 탈취라든가 당시 광주 시민의 무법 탈법이 도화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성한의 목소리도 덩달아 우울감을 토하고 있었다.

“그래서 4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80년 5.18의 진실은 덮여있어요. 뭐 77년 전 제주 4.3도 일부만 알려졌지 더 큰 진실은 깊이 가라앉아있지요.”

“세월호 비극은 잘못 알거나 전체가 가려진 것입니까?”

이성한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보통 선량한 시민들의 애도가 오래갈 수 없어요. 함께 울고 조문하고 잊지 않겠다는 배지를 가슴에 달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사를 지어서 스스로 믿어요. 그래야만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신이 믿는 서사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포된 건 모르죠. 천안함 비극은 세월호보다 4년 먼저 있었죠. 엊그제 같지만 천안함 참사가 벌써 14년, 곧 15주기가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뭔가 자기 설득이 되지 않아도 북한 잠수함 어뢰에 의한 폭침으로 서사를 만들어 받아들이고 잊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이명박 정부에서 꾸준히 만들었어요. 심지어 한주호 준위의 영웅 전기까지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배포했거든요.”

토끼탈의 말투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세월호 경우도 마찬가지란 말씀으로 들립니다. 80년 광주에서 무기고 탈취조, 장갑차 탈취조, 유언비어 살포조로 나뉘어 머리를 기른 보안사 비밀군인들이 상황을 기획했다는 김용장 씨 증언처럼 기무사의 치밀한 기획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슬픔은 끝났어요. 10년이 넘었잖아요. 이제 냉정해야 해요. 범인을 잡아야지요. 문재인 정부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실 은폐에 앞장섰어요.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의 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럼 문재인 정부의 실제 권력자는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광주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흥분해서 잠시 잊었습니다. 사천호 말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사천호 국정원 2차장은 올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천호 의원 아닙니까? 성씨가 독특해서 사천호 의원이 떠올랐습니다.”

“맞아요. 경찰대학장이다가 제복을 벗고 곧바로 국정원 2차장으로 국내 파트 공작을 담당했던 사천호가 이번 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어요. 10년의 잠행 끝에 그야말로 화려하게 양지로 나온 거죠.”

“이재수는 자살 당하고, 조현천은 미국으로 도망가면서 군부는 쫄딱 망했는데, 사천호가 뜬금없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건 상징성이 큽니다. 아직 김기춘이 죽지 않았다는 신호로 보입니다. 사천호가 수많은 불법공작에 연루돼 기소된 여러 건이 집행유예와 실형을 받았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갑자기 사면복권되고 곧바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서 출마하는 걸 보면서 뜨악 했습니다만…”

이성한이 마치 월척을 낚은 것처럼 흥분해서 말했다.

“기무사가 국정원을 접수하기는커녕 되치기 당한 꼴이에요. 그 결과 국정원이 군사쿠데타를 막은 문재인 정부의 개국공신이라고 자처하며 문재인 청와대를 윽박지르며 컨트롤 한 거죠.”

토끼탈이 말했다.

“제가 좀 흥분해서 이야기가 사방팔방으로 튀었습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김조영 성우님. 이어가주십시오.”


사천호는 이명호보다 한 살 많지만 대학 학번이 같아서 오랜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국정원 내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 사적인 만남도 자주 가졌다. 하지만 자신을 천거해준 8국장이 사실상 사수 역할을 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사찰이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나 특히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깊이 개입했지만 모두 이명호 8국장의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

사천호의 효용성은 경찰대 1기 졸업생에 있었다. 초창기 경찰대는 프라이드가 특별했다. 지금의 로스쿨과 육군사관학교를 합친 역할을 하리라 학생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경찰대 출신은 경찰 내부에서 빠르게 승진하고 일부는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변호사가 되거나 이른 나이에 경찰서장으로 진출했다. 국정원 2차장으로서 사천호는 전국의 지방경찰청장과 일선 경찰서장들의 네트워크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인사에 사실상 결정권자이고 세상의 정보는 모두 국정원으로 모이고, 사천호의 책상에 올라왔다. 

2013년 10월에 특이한 일일 동향 보고서가 사천호에게 전달됐다. 사천호는 다가오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대비한 투 트랙 대비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탈북민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일에 골몰하고 있을 때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략하는 네 가지 방법을 모두 현실이 되도록 준비해놓는 게 사천호 2차장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언제든 죽이거나, 성희롱 용어를 만든 박원순을 성추행범으로 만들거나, 서울시 행정 업무 관련 배임으로 몰거나, 간첩과 내통하며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로 뒤집어씌울 수 있도록 기초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특별한 일일동향보고는 인천항에서 올라왔다. 인천항 지부에서 활동하는 요원이 풍문을 전한 것이다. 일본에서 들어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는 세월호 여객선의 선원들이 일주일이나 길어야 한 달 근무하면 퇴사를 하는데, 퇴사하는 선원들에게서 수집한 정보가 의아하다는 내용이다. 세월호는 조만간 침몰할 거라서 근무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 휴민트를 통해 수집한 내용이다. 사천호는 빨간펜으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보고서에 덧붙여서 돌려보냈다. 사천호의 직접 관리는 아니지만 세월호는 국정원에서 전현직 직원의 복지사업을 위해 운항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틀 후 일일동향보고에 국정원 휴민트가 기무사 수사관과 접촉하면서 들은 얘기가 들어 있었다. UDT 대원들이 수중 콘크리트 작업을 한다는 내용이고, 어떤 목적인지 알 수가 없다는 특이사항이 적혀있다. 촉이 예민한 사천호는 뭔가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해군 쪽에 국정원 라인을 동원해서 정보의 진위와 자세한 내용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사천호는 세월호 선원의 잦은 교체와 UDT의 수중 작업 내용을 묶어서 이명호 8국장에게 전했다. 공식 정부 루트에서도 확인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내용은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곧바로 날아갔다.

김기춘은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 파악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명호 국정원 8국장에게 전화했다.

“8국장. 나요. 세월호와 관련된 동향보고 받았나. 이거 뭐야? 운항한지 반년도 안 됐는데, 선박에 하자가 있나?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맘에 걸리는 게 있어. 요즘 노재준 원장 접촉선이 어떻게 되나. 계속 체크하고 있는 거야?”

“네. 노 원장은 댓글공작 뒤치다꺼리 때문에 저와 자주 대면하고 있습니다. 저나 다른 직원들과 갈등이 없고, 매일 자리를 지키며 직접 일을 챙기고 있어서 직원들의 신망도 높고, 퇴근 후에 바로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화 감청은 어떤가?”

“내부 전화, 비화폰 두 대, 인터넷 접속 동향을 24시간 실시간 체크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 퇴직한 선원들 직접 만나서 정보를 얻으라고 해. 곧바로 나에게 알려주고.”

김기춘은 다시 유병언에게 전화한다.

“유 회장. 세월호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있는데, 알고 있나?”

“세월호는 장사를 잘 하고 있습니다. 안전점검도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을 말씀하시는지…?”

유병언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아, 됐어. 유 회장도 당분간 세월호 동향 파악을 매일 해봐. 그럼 다음 달 약속한 날에 보세.”

“네. 금수원에서 뵙겠습니다.”

김기춘은 의자를 한바퀴 빙글 돌리고 허리에 힘을 줘서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혔다.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비서실장 방을 천천히 계속 돌았다. 그는 자신이 4성 장군 출신이고, 박지만이 제안하고 최순실이 면접을 본 국정원장이라면 지금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을 불렀다. 

“노재준하고 박지만, 그리고 이재수의 지난 3년 동안 출입국 기록을 가지고 와.”

“이재수라고 하심은…?”

“임마. 그 정도 센스도 없나. 지난주에 기무사령관에 취임한 이재수 말이야. 박지만하고 아삼육인 놈이야”

한편 이재수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재수가 공식적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 기무사령관에 취임했지만 인사사령관의 자리에서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다녔다. 누가 감히 쓰리스타 인사사령관을 홀대하겠는가. 육참총장보다 국방장관보다 더 막강한 실세 중의 실세로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민간인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군부 권력에서 목숨을 바칠 만한 행동대장을 포섭하러 다니는 반년의 시간이었다. 

수중 콘크리트 작업은 보안 문제로 적합한 작업팀을 구하다가 결국 중국 업체에게 용역을 주기로 했다. 최종 세월호를 인양한 중국 국영 상하이샐비지에서 용역을 받아 작업하는 팀에게 보안 각서를 받고 어청도와 병풍도 주변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을 고정시키는 일을 시켰다. 용역을 주는 기무사 상사도, 일을 진행하는 중국 업체도 왜 콘크리트 구조물을 바다 속에 단단히 고정시키는지 알지 못했다. 작업 검수는 UDT 상사가 진행했지만 그도 역시 용도를 알지 못하고 진행했다. 앵커가 걸리도록 역할하는 쇠막대는 국내 잠수사들에게 시켰다. 단순히 거대한 막대기를 수중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 집어넣는 작업이라 이틀 만에 완료했다. 국내 잠수사들도 자신들이 한 작업이 무엇을 위한 설치인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충분히 양생되고 쇠막대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이 충분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격일로 출발한다. 제주에서 인천으로 오는 날에는 앵커 사용을 실험할 수 없다. 방향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항로에서만 침몰 예행연습을 할 수 있다. 연습인데 실제로 침몰할 정도로 선박을 기울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70세 이준석이 신보식 선장이 쉬는 월요일마다 대타 선장으로 승선했다. 이준석이 승선할 때마다 원하는 장소와 원하는 타이밍에 앵커가 구조물에 정확하게 걸리도록 투묘와 양묘를 반복하는 연습을 했다. 기획 침몰을 알고 있는 선원은 이준석 대타 선장과 강충식 1등 항해사, 박기훈 기관장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세월호를 필요에 의해 진도 부근 병풍도에서 기울게 한다는 것이지 끔찍한 학살이라고 알지 못했다. 블랙 요원은 병풍도 부근에서 배를 옆으로 쓰러뜨리면 거액의 보상을 약속했다. 착수금 6억은 선불로 전달했다. 약속한 돈의 10% 수준이다. 세 사람은 돈의 위력에 무릎을 꿇었다. ‘단지 배를 옆으로 눕히면 돼’ 이렇게 일을 단순화시켜서 자기기만을 반복했다. 기무사의 심리전담팀이 붙어서 세 사람이 자기합리화를 통해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공작했다. 대신 배신은 죽음뿐이라고 알렸다. 실제 기무사의 처형이 어떤 것인지 영상을 통해 보여주며 겁을 주면 누구나 오줌을 지리게 마련이다. 가족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서 세 명 선장과 항해사, 기관장은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라 큰 몫을 챙기는 행운으로만 생각하도록 세뇌된다. 

디데이가 잡혔다. 2014년 4월 15일 밤 출항이 세월호의 마지막 출항이 됐다. 항해부 선원들은 출항 직전 고의침몰 계획을 알게 됐다. 울고불고 출항하면 안 된다고 저항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처음 보는 이정훈 UDT 대위의 협박은 무서웠다. 사람은 공포의 방에 갇히면 판단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선원 자신들은 안전하다는 설득, 국가의 안보를 위해 진행해야한다는 거짓 명분, 거절했을 때 일어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성공보수에 대한 유혹 등이 뒤섞여 갈팡질팡했다. 그때 강충식 1등 항해사의 미션 수용은 나머지 항해부 선원들에게 명분을 줬다. 항해부 선원들은 강충식 1항사가 처음부터 고의침몰을 알고 빌런들과 한 패였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기관부 선원들은 아무도 침몰 계획에 대해 알지 못했다. 기관부의 조기수들은 출항을 위해 정위치에 섰을 때 새로운 조기장이라는 사람이 승선했다는 걸 알았다. 서로 소개나 인사도 없이 출항했고, 새로운 조기장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숯검댕이 두꺼운 눈썹에 얼굴의 절반을 덮는 마스크를 쓴 장영준은 환갑의 나이로 보이지 않는 날씬한 몸매에 짐승의 안광을 가진 강렬한 인상이다. 말도 한마디 없다. 매우 두터운 장갑을 끼고 몽키스패너 들고 뛰어다녔다.

출항은 2시간 늦게 했고, 하루 전이 보름이라 거의 동그란 달이 떴다. 달빛으로 인천대교와 자잘한 섬들이 분명하게 보였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항해했다. 해운사는 자정에 불꽃놀이도 서비스했다. 침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3시가 넘어서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다. 다음날 아침 8시49분에 병풍도 앞에서 급회전하면서 왼쪽 갑판이 순간적으로 푹 꺼져서 우현 갑판에 서있던 단원고 양승진 선생이 공중을 날아서 좌현 쪽 바다에 빠졌다. 침몰로 인한 유일한 희생자였다. 나머지 303명은 구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

다시 2013년 10월 청와대 비서실장실. 김기춘의 명을 받은 조응천 비서관이 세 사람 출입국 기록을 가지고 실장실에 들어섰다.

“뭔가 특이한 사항이 있나?”

김기춘이 물었다.

“출입국을 자주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특이점을 찾자면 지난 3월 말에 셋 다 해외에 나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각각 중국과 일본 태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있습니다.”

“3월 말이면 노재준이 원장에 취임했을 땐데, 해외로 나갔단 말이지. 노재준 출국 명분이 무엇인지 조사해서 보고해. 이재수도 마찬가지. 2시간 내로.”

30분 만에 보고가 올라왔다. 노재준이나 이재수나 출장으로 출국했고 사유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장에 취임한지 며칠 안 된 사람이 중국 출장을? 이재수도 특별히 태국에 출장갈 일이 뭐가 있나… 같은 시기에 박지만이 일본 여행을 했다는 건 셋이 만난 게 분명하군.’

“그런데 실장님. 이재수와 동행한 인물이 있습니다. 이재수 육사 1년 후배 조현천 육군학생군사학교장입니다.”

“조현천이 누군가?”

“이재수와 조현천은 매우 가까운 선후배지간으로 군부에 다 알려진 사이입니다. 이재수가 자신처럼 인사통으로만 데리고 다니면서 조현천을 키웠습니다.”

“그래? 알았다. 수고했어.”

김기춘은 네 사람이 외국에서 은밀하게 만났다는 걸 눈치챘다. 왜 만났느냐와 무슨 얘기를 했는가를 알아내야 하는데, 당장은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다만 국정원 양우회 소유의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할 것이라고 선원들이 수군댄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국정원에서 진심으로 조사에 나섰으니 뭔가 전말을 알 수 있을 거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성한이 소설 낭독을 중단시켰다.

“소설 속에 ‘한 명만 침몰로 희생되고 나머지는 구조하지 않아서 죽었다’표현이 강하게 남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왜 이런 표현을 썼습니까?”

“정말로 적극 구조하려고 했다면 양승진 선생님만 죽고 아무도 죽지 않았을 거예요. 비록 100분 만에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았지만 100분은 전원 구조가 가능하고 남을 시간이지요. 상식을 위배하고 너무 빨리 배가 가라앉는 바람에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방 안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면 승객 전원을 살릴 수 있었어요. 방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이 결정적이지만 해경의 구조 방기는 분명한 원인이에요. 구조할 수 있었고, 구조해야 하는데, 구조하지 않았어요.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가장 가슴 아픈 지점이지요.”

“그렇다면 구조 방기도 고의라는 말씀입니까?”

“제 판단은 그래요. 고의예요.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면 침몰시킬 필요도 없지요.”

“진실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것일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진실을 밝혀야 범인을 잡을 수 있으니까 저희 이성한의 <극중TV>는 이를 악물고 진실과 마주하겠습니다. 고의로 구조 방기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다음 금요일까지 씩씩하게 지내고 다시 만납시다. 토끼탈 님, 김조영 성우님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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