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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Nov 07. 2024

내가 작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제주도 곶자왈 실종사건

Ⅱ. 내가 작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ⅰ. 제주도 곶자왈 실종사건     


나는 지난 2018년 3월에 13살 소년 둘을 데리고 제주로 갔다. 학교를 떠난 두 소년에게 긍정적 교육 서비스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소년의 부모에게 일정한 비용을 받고 함께 살며 생활과 학습 지원을 하는 것이 당시 내 직업이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지시에 반대로 행동하는 아이라 무뚝뚝한 청개구리로 무청이라 부른 아이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입에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는 뇌전증 환자였다. 또 다른 아이는 우는 말투로 떼를 쓰는 친구라 징징이라 불렀다. 징징이는 새엄마와 이복동생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퇴행한 태도를 보여 6학년을 중도에 그만둔 경우였다.

우리는 4월18일 오후에 숙소에서 가까운 유기농 차밭으로 마실 갔다. 무청이는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12시간 실종됐다. 오후 6시, 유기농 차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숙소로 혼자 걸어가다가 선흘리 곶자왈로 길을 잘못 들어 다음 날 아침 6시 반에 발견됐다. 

그날 밤 갑자기 서리가 내려 5만 평 차밭의 차나무 새순들은 몽땅 얼어서 잘라낼 수밖에 없는 냉해를 입었다. 아이는 반바지에 얇은 속건성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아이를 찾아 나선 수백 명의 사람들은 추위와 싸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흘리 곶자왈은 유네스코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 및 화산동굴군의 일부분인 벵뒤굴을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야생 노루의 더없는 천국이다. 곶자왈에는 길은커녕 사람이 드나드는 흔적조차 없어서 낮에도 동네 사람이 방향을 잃는 곳이다. 4.3 때 희생된 분이 워낙 많은 숲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아이는 혼자 들어갔고, 밤새도록 12시간을 헤맸다. 그날은 음력 초사흘이었다. 밤에 달이 전혀 없었다. 동네 어른들은 동사를 걱정했다. 아니 얼어 죽었을 것이라 모두 확신했다. 새벽 5시에 하늘이 훤해지길래 다시 들어가 보니 온통 가시나무 또는 가시가 달린 덩굴투성이다. 수종은 달라도 다들 가시를 품고 있었다. 아이는 온몸에 가시에 찔리고 긁히고 살점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얼굴은 단 하나의 스크레치도 없다.

아이는 무표정했다. 별로 춥지 않았다고 했다. 무섭지도 않았다고 했다. 뛰어다니고 때론 누워있기도 했단다.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단다. 붕괴된 벵뒤굴 안으로 떨어진 일도 있었나 보더라. 내가 아침에 확인한 바로는 3층에서 마당으로 떨어진 높이였다. 무엇보다 수많은 야생 노루 떼와 가까이 만났다고 했다. 당시엔 한 귀로 흘리던 얘기다. 아이는 너무 목이 탄다고 물 마시고 싶다는 말만 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마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전 11시쯤 숙소에 돌아왔다. 나는 안도가 밀려오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잠이 쏟아져서 자리를 펴고 누웠지만, 무청이는 전혀 아니었다. 상처 때문에 대강 샤워를 하고 나오더니 갑자기 책을 읽고, 영어 문장을 공책에 베끼고, 학습에 관련된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한다기보다는 질문을 토해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나는 졸려서 대답을 하는둥마는둥 했다.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청이는 사흘을 별로 자지 않았다. 늘 맑은 정신으로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했다. 눈빛이 달랐다. 분명. 그리고 결정적으로 늘 복용하는 약을 반의 반으로 줄여도 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곶자왈 실종 사건 직후 떠난 스페인 한 달 걷기 때 약통을 버렸고, 돌아와서 나와 살 때는 뇌전증 약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 내 손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칠흑 같던 밤에 무청이가 노루 떼를 만났다고 말한 것에 주목한다. 노루가 사람을 공격하는 짐승은 아니지만, 덩치가 크고 캄캄할수록 안광이 선명하기 때문에 깊은 밤 숲속에서 만나면 무서운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무청이는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난 한밤중 혼자서 산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만났는데 머리칼이 서더라.


당시 무청이의 행적과 발견됐을 때 모습과, 그 후의 극적인 아이의 변화를 다시 반추하는 것은 최근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인간은 자연환경, 특히 동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주의 동네 사람들은 비인간의 영역에 4.3 원혼들을 중심에 두려고 했다. 

무청이는 노루와 어떤 교감을 이루었을까. 무청이가 표현에 약하고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당시 일을 캐물어도 별로 들은 게 없다. 무섭지 않았다는 건 억지로 이해할 수 있다. 공포감도 상당 부분 학습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하니까. 하지만 춥지 않았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수색에 나섰던 모든 사람이, 제주 사람까지도 4월 제주의 맹추위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껴입을 수 있는 모든 걸 이중삼중으로 입고도 힘들어했는데, 반바지 반팔 차림의 아이가 춥지 않았다고 하는 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뭔가가 있다. 내가 안다는 범위는 얼마나 좁고도 좁은가. 참으로 숙연하다.

무청이를 찾은 날 오후에 마을부녀회장이 우리 숙소를 찾았다. 

“아이 간수 잘하셔야지요. 덕분에 마을 사람들 간밤에 한숨도 못 잤잖아요. 서리가 내린 추위에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건 곶자왈 귀신들의 보살핌입니다. 제주에서는 이런 경우 넋들이를 해야 합니다. 곶자왈 원혼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해요. 큰돈 들지 않아요. 과일 좀 사고 막걸리 한 병이면 돼요. 떡도 있으면 좋은데, 시루떡 한 말 해서 넋들이에 조금 쓰고 나머지는 노인정에 잡수시라 주세요. 넋들이, 잊지 마세요. 꼭 넋들이를 지내세요. 그냥 지나가면 곶자왈 귀신들의 원망을 받아요.”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동네 분들에게 큰 신세를 져서 무어라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 마을을 떠나세요. 우리는 당신 같은 엉터리 선생이 부족한 아이를 돌보는 걸 볼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 안으로 떠나길 요구합니다.”

추방 명령에 당황했지만 마음 상할 일은 아니었다. 넋들이라 말하는 제주식 고사에 대해 동의하든 거절하든 내 안의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릴 때 무당굿을 심심치 않게 목격했지만 하나의 퍼포먼스로 구경한 것이지 나와 연결끈이 전혀 없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돼지머리에 절을 한 적도 없다. 내 머릿속 스키마는 고사는 미신이고, 미신은 비과학이며, 비과학은 부끄러운 사고방식이라고 구조를 짜고 있다. 넋들이는 지내지 않고 인절미 반 말과 소주 한 박스를 마을 노인회관에 드리고 우리는 제주를 떴다.


무청이를 다시 만난 건 2021년 봄이다. 또 다른 중학생 나이의 학교밖 청소년들을 제주에서 돌보고 있을 때였다. 무청이는 엄마와 함께 승마장 근처에 달세방을 얻어 살며 매일 치유승마를 하고 있었고, 우리도 같은 승마장에서 승마 훈련을 받는 형편이라 어느날 예고 없이 마주쳤다. 

무청이는 나를 기억했지만, 징징이를 모른다고 했다. 함께 한 달 넘게 스페인 순례길을 걸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곶자왈에서 길을 잃은 일도 모른다고 했다. 하루 한 번 혼절한 무청이가, 그것도 나와 생활할 때는 약을 먹지 않아도 정신을 잃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세 번 발작하고 정신을 잃는다고 한다. 글 읽는 능력도 잃었고, 한 자릿수 가감승제도 잊었고, 하루에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은 청소년이 되었다. 그저 씨익 웃을 뿐.

엄마 이외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청이는 고립됐기 때문에, 엄마가 어리석은 판단을 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퇴행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넋들이를 하지 않았다는 기억이 자꾸 올라온다. ‘넋들이를 정성껏 했더라면, 그래서 곶자왈 원혼들을 위로하고 고마움을 전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하면서도, 80년 가까이 한을 품고 지낸 원혼이 어린아이에게 해를 끼친다는 상상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오히려 어린 목숨을 얼어 죽지 않게 도와줬으니 고사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를 끼친다는 건 연결하기 어려운 생각 과정이다.


그래도

그래도

4.3의 원혼이 아니라 곶자왈의 야생노루와 무청이의 연결끈이 있지 않았을까.

노루는 무청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지 않았을까.

무청이는 노루에게 어떤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학습장애였던 무청이가 숲에서 나오고 잠깐 동안 학습친화적 아이로 살았던 건 무엇인가.

엄마가 자기 삶을 유예하고 지극정성으로 무청이를 서포트하는데 청소년으로 크면서 심하게 퇴행하는 경우가 있는가.


이해할 수 없어서 질문만 던지는 나를 본다. 혹시 내가 <식스 센스>의 죽은 말콤 박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은 건 정작 자신인데, 죽은 혼령을 본다는 어린이를 심리치료하겠다고 노심초사하는 블루스 윌리스가 맡은 말콤 박사 말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넋들이를 지극정성으로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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