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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번째날

사람은 자존심으로 버틴다 (2019.8.24)

by 박달나무

1.


아이들이 늦게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평소처럼 일어난다. 어제 오늘은 바깥 일정을 갖지 않고 집에서 쉬는 모드를 유지할 것이라 약속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요일에는 일찍 눈이 떠지는 것과 같다.


'평소처럼'이라고 말하지만 9시를 말한다. 아이들은 호주에서 길게 숙면을 취한다. 평상시 저녁 9시30분에 잠자리에 들면 아침 9시에 방 밖으로 나온다. 8시 정도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뭉기적거리다가 거실이 궁금하고 서로의 소식도 궁금하면 옷을 갈아입고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시하가 어쩌다 새벽에 오줌을 한 차례 누는 경우가 있지만, 거의 화장실 출입없이 10시간 이상을 잘 잔다. 그리고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밥을 잘 먹는다. 잘 먹고 잘 자니 아이들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


8월 시즌2 시작 이후 태호는 잠자리에 들 때 나를 부른다. 옆에 누워서 같이 자자는 것이다. 냉정하게 내치는 게 아니라 같이 자자고 요청하는 게 고맙고 귀여워서 불을 끄고 옆에 눕니다. 아,,, 이게 문제다. 내가 눈을 뜨면 새벽 1~2시. 이때 일어나서 밀린 숙제를 하려고 하지만 몸이 잠에서 깨지 않는다. 다시 잠을 청할 수밖에 ㅠ

2.


오늘은 노트북으로 유투브 시청을 마음대로 하겠다고 한다. 어제 그러라고 허락했다. 아이들은 유투브에서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한다. 시하는 어벤저스 시리즈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주로 본다. 예를 들면, 타노스가 어딘선가 제2의 헐크를 키우고 있다는 소식(기획 중인 새로운 마블 영화 시리즈에 대한 정보) 따위다. 기존 영상에 소리를 지우고 새롭게 더빙을 한 영상물-이게 엄청 웃긴단다. 예를 들면, 짱구 만화에서 짱구와 아빠, 엄마의 대화 장면에 원작과 전혀 다른 대사를 더빙한 유투브 영상물 등이다. 주로 짱구가 부모에 대해 비아냥거리는데, 그 내용이 기성세대에게 날리는 통렬한 똥침 수준이다. 어른(아빠 엄마 선생님 등)들은 주로 아슬아슬한 욕을 날린다.(수박 씨 발려먹어라 같은) 내가 봐도 재밌다.


태호는 세계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동물 10가지,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생물 10가지 같은 영상을 보고 그 내용을 내게 전달하려 애쓴다. 초등 아이가 있는 흔한 집 풍경이겠다. 대부분 엄마 아빠들처럼 나도 아이의 정보전달에 길게 귀 기울이지 못하고 건성으로 '그래 그래' 하다가 '이제 그만~'을 외치며 상황을 종료시킨다.


내가 같은 나이, 초등4학년 때 매월 집으로 오는 월간 <어깨동무>를 학수고대하다가 도착하자마자 뜨겁게 거푸 정독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또한 초등2학년부터 중2까지 소년동아일보를 구독했는데, 전면(全面)의 모든 글자를 다 읽었다. 만화는 물론 기사, 오늘의 한자, 학습문제, 숨은그림찾기, 광고에 이르기까지. 볼 게 그것 뿐이니까 빠져들게 됐다. 이때 읽고 기억하는 것이 mbc, kbs, sbs 퀴즈 프로그램에 차례로 나가서 망신 당하지 않는 성적을 거둔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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