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상식과 함께 읽다
나이를 쬐끔 먹었다고 생각하니, 생각 못해본 새로운 상상이 떠오른다.
“오늘 저녁 내가 죽는다면, 그걸 미리 안다면 나는 후회 없이 받아들일까?”
물론 후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후회의 크기가 줄고 있다는 거다. 그나마 스스로 위로가 되는 지점이다. 모기 물린 자리를 손톱으로 십자가 모양이 되도록 꾹꾹 눌러 작은 통증이 가려움을 이기도록 하듯이, 일부러 고통을 만들어 오늘 저녁 죽는 이벤트의 아쉬움을 지우는 수행을 한다. 그것은 읽고 쓰는 일이다. 바로 지금 우리 모임의 미션(독후감 쓰기)을 수행하는 건 조금은 힘든 즐거움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근육의 섬유질을 찢어 상처를 내고, 그 상처가 회복되면서 육체미를 만드는 것처럼 읽고 쓰는 일은 자기 스스로 괴롭히는 일이 되어야 공부로서 가치가 있다.
수년 전부터 나를 들볶는 괴로운 즐거움은 “세상 사람들의 좁은 시야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출발은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아수라장의 해결책 고민이었다. 30년 정도 묵은 미션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런 지혜를 깨닫지 못하고 우주 먼지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초조해졌다.
지난 1월15일은 신영복 선생 10주기였다. 선생이 출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종문화회관 챔버홀에서 강연한 후 뒤풀이에서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유일한 선생과 대면이었다. 신영복 선생은 그저 책으로만 만났고, 책도 제목만 남았을 뿐이지만 다음의 구절은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제한된 지식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것을 강요받는 삶, 그것이 노동자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바로 선생의 이 말이 내 괴로운 즐거움의 화두이다. 노동자 대신 어떤 명칭을 넣어도 유효하다. 교사이든가, 학생이든가, 의사, 변호사, 정치인, 운동선수 등 어떤 대상을 넣어도 뼈 때리는 말씀이다. 우선 제한된 지식의 제한 벨트를 풀어버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마취 상태에서 강요받는다는 자각으로 견인하는 방법론, 비참한 극(드라마)을 그만 보고 싶은 마음이 한데 어울려 숨쉬기 답답하다. 하지만 뒤섞인 채로 답답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괴로움은 또 다른 차원이다. 그 괴로움이 공부 근육을 키운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
독후감을 쓴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서론이 길었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는 절판됐기에 온라인 서점에서 새 책을 주문할 수 없다. 작년 11월 말의 일기를 가져와서 내가 이 책을 만난 기쁨을 설명하고 싶다. (그날 대구 용무가 있었다)
동대구버스터미널에 내려 동대구 전철역으로 내려가다 보니 알리딘 중고서점이 있는 거야. 꼭 누가 안에서 환대하며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느낌이었지. 시간이 넉넉하니 그냥 들어갔어. 휘적휘적 크지 않은 중고서점을 둘러보는데,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가 눈에 들어오는 거야. 책등이 두껍고 제목이 강렬해서 먼저 눈에 띈 거지. 책이 자기를 꺼내달라고 소리를 쳤어. 나는 분명 들었어.
560쪽! 보통은 거들떠보지 않았겠지만, 책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기에 늘 그런 것처럼 뒷표지 글을 읽고 머리말을 읽었어.
어? 이거 내가 찾던 책이잖아. 누가 이런 책을 써줬으면 막연하게 생각했고, 내가 쓰자니 엄두가 안 나는 주제/소재/콘텐츠였지.
누구야, 저자가….
김상태? 그러쿤. 어? 그런데 역사학자가 아니잖아…. 뭐 서울대 수학과 졸업했다고…. 초등 동창 중에 김상태 이름에 서울대 수학과 나온 녀석이 있었는데…. 다시 저자 소개란을 보니 1964년 생이란다. 그럼 동창 친구 확실하네.
나의 괴로운 즐거움은 우리 고대사를 돌파구로 설정하고 있는 참에 필요한 책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간절할 때 책이 나를 찾아온다. 농담이 아니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를 읽으면서(상당한 분량일 뿐만 아니라 내 독서 버릇이 꼼꼼한 정독 스타일이라 읽는데 여러 날이 걸렸다) 괴로운 즐거움은 즐겁고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저자의 어린이 시절 얼굴을 기억하는 독자의 프리미엄이랄까 뭔가 친근감이 작동한다. 더구나 글이 시원시원하고 어려운 말을 빼버린 대중 저술의 모범이다.
이덕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년 전에 이덕일을 알았다. 이덕일은 강단사학자에게 욕을 때려박는 정통 역사학자이다. 이덕일의 책을 읽고 나주의 반남고분을 답사했다. 그때의 혼란스런 마음은 지금 떠올려도 당황스럽다. 나주 땅이 뭐라고, 왕릉 규모의 고분이 수십 개가 있고, 신라금관보다 더 화려한 금동관이 나오냐 말이다. 그것도 일제 식민지 때 발굴됐다는 데 왜 나는 중년 나이가 되도록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덕일에 대한 주류 역사학계의 십자포화는 곁에서 구경하는 나에게까지 파편이 날아와 박히는 기분이었다. 이덕일을 인용하면 바보 취급당하는 분위기에서 우리 고대사를 거론하기 쉽지 않았다. 단재 신채호의 저작은 소화하기 힘들어 파고 들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데....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는 나에게 업계의 묻어둔 비밀을 전해준다. 고조선 역사를 전공한 학자가 거의 없다는 것과 관련한 책과 논문을 쓴 몇 안 되는 교수급 학자들의 수준이 저잣거리 똥개와 같다는 걸 말이다.
저자 김상태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 고대사는 기존의 역사책을 읽어서는 알 수 없다. 그 책들을 써내는 강단의 주류 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말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주류 강단 고대사 학자들이 다른 것도 아닌 한국 고대사를 서술하는데 목숨까지 걸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거짓말이 발각되거나 폭로되지 않은 채 지난 100년간 유지되었다는 것,-그럼에도 하필 나 같은 일개 비전문가 대중이 거짓말을 눈치챘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사유들 중 하나다.
(중략)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들 전부를 학문의 전당에서 제거해야 하며 이들이 저지른 저열한 작태를 역사의 명부에 영원히 기록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고조선, 그곳은 김상태의 표현대로 '환빠'와 '식빠'의 칼부림이 난무하는 곳이다. 한쪽에는 종교 수준의 열광적이고 맹목적인 민족주의로 가득 찬 환단고기빠(환단고기 추종자, 환빠)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일본에게 나라를 잃은 시절, 매국적인 식민사학에 경도되어 민족을 배신한 식민사학빠(식민사학 추종자, 식빠)들이 여전히 학계에 똬리를 틀고 있다. 맹목적 민족주의와 식민사학이라는 이란성 쌍둥이들의 칼부림 속에서 김상태는 문외한으로서 검증에 나선 것이다.
처음엔 김상태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역사인식의 얄팍함을 말한다)
신채호와 민족사와 조선상고사 이야기가 종종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럴수록 그것은 심드렁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럼 나는 그런 신채호의 주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이제 와 생각하니 그것은 독립운동가의 뜨거운 애국심으로 쓰여진 소설이나 선언문 같은, 일종의 문학작품이라 여겼던 것 같다. <조선상고사>는 애국심을 고취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학문적으로 고려할 만한 책이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p.77)
그러나 김상태는 곧 태세를 전환한다. 신채호 조선상고사를 편집한 <청소년을 위한 조선상고사> 150쪽 대목을 소개한다.
선대의 유학자들이 이따금 패수는 대동강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최근에 일본인 백조고길(白鳥庫吉;시라토리 쿠라키치 )등이 압록강 하류를 패수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같은 망발도 다시없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조선상고사> 이성길 엮음. p.150
김상태는 고대사 논란을 환빠와 식빠의 싸움 대신 소고조선론과 대고조선론의 대립으로 표현한다.
이병도(1896)-김철준(1923)-노태돈(1949)-송호정(1964)으로 이어지는 서울대 역사학과 계보는 고조선이 짧은 기간 평양 부근 한반도에 머물렀고, 한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했으며 고조선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돼 400년 가량 한나라의 통치를 받았다고 말한다.(각자 디테일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대고조선론은 신채호와 윤내현(고대사 연구의 거장, 작년 별세), 북한의 사학자 리지린의 주장으로 단군 신화 내용대로 BC25세기에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거대한 국가 권력을 이룬 고조선은 멸망 후 부여와 고구려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대고조선 주장은 한사군이 베이징 북서쪽 허베이성을 지나는 난하 유역에 있었다고 말한다. 즉 고조선의 강토는 난하 지역까지 펼쳤다는 내용이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윤내현은 모르고 신채호만 피상적으로 알았을 때) 대고조선론 내용은 일부 재야사학자들의 과대망상에 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치우천황 깃발을 국가대표 시합 때 축구장에 펼치는 행위와 같다고 봤다. 동시에 중국의 동북공정의 속뜻을 국가 경쟁에서 있을 수 있는 이기주의 정도로만 생각했다. 더군다나 북한 평양에 단군 무덤이 발굴됐다는 뉴스는 민족성에 광적인 북한 정권의 치장(사실상 역사조작)으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드디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를 만나고, 저자 김상태에게 설득됐다. 나는 반론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머릿속으로 저자와 싸우면서 책을 읽는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도 마찬가지다. 김상태는 나의 반론에 몽땅 재반론하여 나를 압살했다. 김상태가 옳다.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 누가 옳은가와 ’나는 왜 고대사에 집착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이건 우리가 역사하면 생각의 대부분은 조선(고조선 아니고)에 머물고, 조선 중에서도 정조대왕 이후의 18~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머무는 것에 기인한다. 누군가가 우리의 역사인식을 그렇게 디자인했다. 학교 교육과 재래 언론, TV의 역할이 매우 크다.(그중 으뜸은 학교의 역사교육)
조선의 후반부 200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배후에 오도된 유교 또는 주자성리학이 있다. 우리가 신도가 아니라도 불교의 영향을 받지만 주자성리학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여전히 심리적 조선시대를 산다. 누구나 대통령과 王을 연결해서 인식한다. 잘못된 인식인 걸 알면서도 대통령을 왕의 반열에 놓는다.
내 괴로운 즐거움은 조선 후기 비틀린 주자성리학 이전은 물론이고 소수림왕 불교 공인 이전의 선조는 어떤 신념과 철학으로 살았을까 더듬어보는 단계로 나아갔다. 즉 고조선을 복원하지 않으면 내 괴로운 즐거움은 즐거운 괴로움으로 끝나버릴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때 도올이 나타났다. 중고서점의 서가에 있던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가 나를 불렀듯이 도올이 나를 부른 것이다. 오래전부터 도올은 종교 이전의 구석기로 가고 싶다고 외쳤다. 신석기에는 이미 주술 성격의 종교가 나오니까 구석기를 외친 것이다. 12.3 내란 직후 도올이 사자후를 참을 수 없는 정서와 출판사의 상업적 판단이 손뼉을 마주치면서 급하게 쓴 원고가 <상식-우리는 이러했다>(통나무, 2025.1)로 나왔다. 원고라기 보다는 도올이 마구 떠들면 누군가 녹취를 떠서 책으로 엮은 냄새가 난다. 내용이 깊을 리가 없다. 우리 역사를 다루며 아사달 문명부터 12.3 내란에 반동으로 빛의 혁명으로 장식한 현재까지를 빠르게 내달린다.
독자로서 옥석을 가리는 읽기가 중요하다. 도올이 날 불러 ”여보게. 내 얘기를 들어보게“라고 말한 연유가 있을 것 아닌가.
도올은 고조선에 대하여 신채호와 윤내현의 대고조선론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은 찬란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고조선과 공자를 연결한다. 젊은 도올은 노자를 좋아했고 공자는 맘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랬던 도올이 공자의 “이게 나야(是丘也; 구는 공자의 본명)” 라는 담백한 고백을 알고 난 후 공자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복잡한 얘기를 건너뛰어, 도올은 주자성리학은 공자의 뜻이 아니며, 공자가 직접 글을 쓴 적도 없고,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은 고조선 사람의 철학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한 달 전 내 일기를 소환한다.
공자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하고 물으면 여러 사람이 유교의 창시자, 4대 성인 중 한 사람…. 뭐 이런 얘기를 흔히 하는데,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했다.
유교는 공자 이전에 이미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공자는 그것을 전달했다는 거다.(述) 하지만(而) ‘내가 창작한 것이 아니야‘(不作)라고 말한 것….
공자는 우리 고조선이 성할 때 동시대 사람이고, 그가 동이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나는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한족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자보다 1500년 후배인 주희가 창시한 주자성리학과 공자 사상을 확연히 구분하는 것이다.
주자성리학이 한반도 조선 땅에서 돌연변이로 왜곡되며 만든 군사부일체 운운과 철저한 계급사회를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20세기에 식민지를 겪고 내전(6.25)으로 수십만 명이 죽고, 군사정권의 깡패정치를 거쳐온 거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 이전의 그리스로 돌아가자”고 외친 것처럼 수운 최제우는 불교 전래 이전의 고조선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게 아닐까(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제목의 책도 있지만, 수운은 공자를 주자성리학에서 분리하고, 조선 사회를 해체하고 외래 종교사상 유입 이전의 고조선 시대 동아시아 질서(한울사상)를 되살리자는 생각을 했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동학이고 천도교이다. 계급 타파, 권력 해체, 페미니즘, 아동인권, 대동세상을 외치면서도 공자의 仁(humanity)과 禮(ritual)를 강조한 것이 동학이고 천도교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수운 최제우는 19세기 조선의 혼돈을 극복하는 길은 고조선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뜻으로 용담유사를 쓰고 혹세무민 죄로 참수된다. 수운의 뜻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해월 최시형 덕이다. 수운은 창시자이면서 유일하게 경전을 직접 지었지만, 일찍 세상을 뜨면서 해월의 포덕과 경전 출판이 없었다면 동학도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계급사회의 찌꺼기가 주자성리학의 탈을 쓰고 아직 우리를 지배하는 걸 벗어나는 것이 21세기 사반세기를 지난 현재의 혼돈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아, 그러고보니 왜 강단사학자들이 고조선을 지우거나 축소하려고 했는지 내 판단을 말하는 걸 빼먹었다. 이병도(1896)-김철준(1923)-노태돈(1949)-송호정(1964) 라인과 현재 젊은 대학원생들은 고조선이 대단한 역사와 철학을 가지고 국가 형태로 존속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상을 팩트라 말하지 말라며 신채호는 낭만적 민족주의자로, 리지린은 북한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학자로, 윤내현은 할 말이 없으니 투명인간 취급한다. 결국 그들의 주장(소고조선론)은 불교 전래 이전의 우리 민족의 정서를 지운다.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든 동아시아 전통 철학을 지우는 것은 주자성리학과 계급사회를 존속시킨다. 조선 후기 권문세도 가문은 일제에 부역했고, 해방 이후에 자본을 축적하며 기업가 또는 자산가로 이어진다. 그들이 홍익인간을 반가워하기는커녕 귀신을 본 듯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명하다.
올해 나는 아내와 함께 천도교 종무대학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2년 공부하는 코스로 학비가 무료이고, 토요일에만 수업에 참여하면 된다(드문드문 수요일 저녁 특강도 있다) 3월 초 출발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내게 연락하면 안내해 드린다. 평생 살면서 이제 공부가 즐거워졌다. 물론 괴로움은 디폴트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