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보다 대화
일요일이지만 평상시와 똑같은 일정으로 제7일째 캠프 생활을 진행했습니다.
오전 수업 2타임, 오후 1타임, 자전거로 표선 다녀오기, 저녁 식사 후 개인별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왕복 20km 자전거 주행은 가볍게 다녀옵니다. 자전거 제주도 일주가 무리 없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밥을 잘 먹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예쁩니다. 하지만 다양하게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친구들은 캠프의 기억을 제주도 돼지고기의 기억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습니다. 고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다양하게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캠프에서 섭생을 조절하기는 무리입니다.
아이들이 학습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데, 공통점은 어휘력 부족입니다.
다른 아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봅니다.
여의도에서 사는 중학교 1학년('여의도 친구'라고 지칭)을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여의도 친구는 사회교과서의 내용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에는 군장(군산-장항) 산업단지의 조성 이유에 대한 설명이 네 가지로 요약되어 제시되고 있었습니다.
1. 교역 전진 기지 조성
2. 포화 물동량 분산 배치
3. 지역 경제 활성화
4. 국토 균형 개발
여의도 친구는 '교역'도 '전진'도 '기지'도 '조성'도 알지 못하는 단어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들만이 제시된 중학교 교과서는 여의도 친구에게 마치 외국어 서적과 같았습니다.
과연 '포화' '물동량' '분산' '배치' 등의 개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친구들이 중학교 1학년 때 마주한 사회교과서가 친숙했을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포화' '물동량' '분산' '배치'를 아는 것과 '포화 물동량 분산 배치'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인천과 부산으로 수출입 물량이 몰린 것은 국토의 균형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라는 배경지식이 필요하거나, 과거 수도권과 영남지역에만 개발이 집중됐던 이유도 함께 학습하며 위 네 가지 산업단지 조성이유를 암기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캠프 친구들은 무조건 암기했거나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새로운 단어나 고급스러운 어휘는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에게 물어봐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요일 밤 11시 20분에 하는 [SBS 스페셜]을 추천한 것입니다.
밥상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밥 먹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자식의 근황도 살피고, 어버이의 현실도 알아보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휘를 익힌다는 설명입니다.
핵심은 '밥상'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대화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엄마와 대화는 늘 잔소리일 뿐입니다. 엄마는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엄마들은 시간도 참을성도 없습니다. 엄마가 말하는 것은 지시와 채근일 뿐입니다. 모두 대화가 아닙니다. 아빠는 더욱 중요한 인물이지만 거론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의 아버지는 투명인간일 뿐.
학교에 들어가서 대화는 징벌의 대상이 됩니다. 교실에서 떠드는 것은 죄악이니까요. 교실 밖에서 있는 시간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참으로 불쌍한 아이들이다.
이 프로그램의 부작용은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서는 부모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더 발전하면 "당신이 무능하니까 당신의 자녀도 부족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전문직 종사하는 아버지, 어머니에 먹고살만한 경제능력, 두루 화제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부모의 지적 능력과 독서이력이 중요시된다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확실한 오해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이유는 "독서보다 대화"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와 대화를 얼마나 했는가는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대화 상대자가 부모가 아니어도 됩니다. 현실적으로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과 계속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뿐입니다.
대화란 두 가지의 결합입니다. 듣기와 말하기. 내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들을 수 있는지 살펴보세요. 내 아이는 어디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불행히도 거의 없습니다. 듣는 것은 MP3와 TV, 게임의 효과음, 친구의 수다 정도입니다. 말할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없습니다. 친구에게 얘기하는 어젯밤 TV 프로그램 정보 정도입니다. 부모가 보수적이라도 좋습니다. 미디어법 통과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한번만 말해보세요. 밖에서 직장 동료들하고 얘기하지만 자식과 대화하지 않습니다.
정치, 사회적인 얘기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부모의 생업에 대한 대화입니다.
보험 종사자라면 피보험자를 설득하듯이 아이에게 보험상품을 설명한 적이 있나요? 건설현장 노동자라면 타워크레인이 어떻게 그렇게 높이 길어질 수 있는지(점점 자라나는지) 설명한 적이 있나요?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이리저리 가계부를 짜 맞추는 엄마의 고민을 왜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게 중요합니다. 부모가 살아가는 날 것 그대로를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알려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