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위치를 바꾸기
풍물 교육의 국내 최고봉 오광식 선생님이 오후에 도착하셨다. 오 선생님은 현직 교사이면서 30년 동안 풍물을 위한 수련과 연구로 최고봉의 자리에 오른 분이다. 도착하자마자 풍물 수업을 하려고 했으나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내일로 수업을 미뤘다. 캠프 친구들은 덕분에 신나게 놀았다. 자전거 하이킹을 쉬고 싶은 참이었는데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지 않아서 에너지 비축이 가능했기 때문이리라.
밤에 자지 않고 딴짓(책 읽기나 MP3 음악 듣기, 핸드폰 게임하기)을 하려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몇 번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지만 선생의 말을 불쌍해서 들어주는 정도이다. 이런 친구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우선 생각의 근본이 변해야 한다. 누가? 학생이 아닌 교육자의 생각 말이다.
숫자 0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길어지는 수직선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덧셈의 방향은 오른쪽이다. 왼쪽으로 진행하는 것은 뺄셈이라 부른다. 우리는 "더하는 것"은 양(陽)/ 커지는 것/ 진보하는 것/ 성장하는 것/ 긍정/ 나에게 보탬되는 것/ 좋은 것으로 생각하도록 세뇌돼있다. "빼는 것"은 음(陰)/ 작아지는 것/ 퇴보하는 것/ 퇴행하는 것/ 부정/ 나에게 해가 되는 것/ 나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위의 생각은 2차원적(저차원)인 사고이다. 3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해보자. 수직선을 그대로 두고 관찰자인 당신이 수직선 뒤로 이동해보라. 아니면 수직선을 움켜쥐고 뒤집어놓아 보라. 이제 오른쪽은 과거의 뺄셈이다. 왼쪽이 방금 전까지 덧셈이었다. 수직선의 성질은 그대로이다. 내 관찰 위치를 바꾸면 덧셈이 뺄셈 되고, 뺄셈이 덧셈된다.
퇴행이 성장으로 보이고, 양이 음이 된다. 긍정이 부정으로 보이고, 나쁜 것이 좋은 것 된다.
아이들은(어른들 조차)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왜냐하면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진행하고 진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아이들도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장소나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 진행시킨다. 그것이 "딴짓"인 경우라면 아이를 탓하지 말고 당신의 위치를 되돌아보라.
왼쪽으로 가는 아이를 오른쪽으로 가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직선 위의 점(내 아이)을 마우스로 드래그하듯이 끌어낼 것이 아니라 숨소리 조차 죽이고 수직선 반대편으로 자기 위치를 옮겨보자. 아이는 이제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거기서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문제 해결의 시작을 자기 위치 변화로 하라는 것이다.
아이는 방향 전환 없이 가고 또 간다. 수직선이 아주 큰 반지름으로 원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라.
아이는 한 방향으로 걷고 또 걷지만 어느 시점엔 출발점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선생이고, 현명한 부모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