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째 날

돌봄이냐 훈련이냐

by 박달나무

4박 5일 자전거 제주도 일주를 마치고 어제 돌아왔다. 잘하고 왔다. 힘들다는 투정도 있었지만 잘 참아주었다.

아이들은 그 좋은 제주의 풍광을 즐기지 못했다. 육체적 부하가 정신적 여유를 잡아먹었나 보다. 그저 주어진 코스를 빨리 완주하고 쉬기만을 바란다. 함께하는 mathdosa(이준호 대표교사)님의 표현처럼 아직 자신이 자기의 주인 역할을 못한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어린것이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이다. 어쨌든 200km 완주는 치하할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칭찬해주시기 바란다.

4박 5일 자전거 하이킹 떠나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너희들의 목표는 완주이다. 그것도 건강하게 완주하는 것이다. 소아천식환자 대부분이 애정결핍이 원인인 것처럼,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사람은 다치게 될 것이다. 다치면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네 무의식이 부상당하도록 유혹하게 돼있다. 그건 스스로 패배의 길에 서는 것이다. 꼭 이겨라. 제주도 일주라는 자신과 싸움에서 지지 말아라. 대신 선생님들은 너희들이 완주하도록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지원하겠다. 설영과 철영, 짐 관리, 끼니 문제 해결 등을 너희들이 신경 쓰지 않도록 하겠다. 그러니 너희들도 꼭 승리하도록 하여라"

방학을 이용한 캠프라고 하면 어떤 것을 떠올리는가? 마치 병영체험을 위해 한시적으로 부대에 입소하여 군인이 되는 프로그램과 오버랩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정해진 당번이 취사도 하고, 자기 빨래와 설거지도 직접 하고 청소와 정리정돈도 스스로 하는~

우리 캠프의 콘셉트는 그와 정반대이다. 우리 캠프는 "돌봄(care)"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Training"이나 "Teaching" 이 아니라는 얘기.

우리 아이들(캠프 참가자뿐만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이 언제 돌봄으로 성장했는가? 돌봄의 반대 개념이 무엇인가? 버려짐? 맞다. 돌봄의 반대는 "버려짐에 대한 불안"이다.

자녀의 불안요소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 한국의 아이들의 가장 큰 불안은 "엄마가 혹시 나를 버리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가장 큰 불안감은 "부모의 이혼 가능성으로 인해 자신이 버려질지 모른다"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부모 모두 자녀교육에 관심이 있는 집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분위기를 개인이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이혼율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가 이혼한 집도 많지만, 이혼이 자주 거론될 정도로 부부싸움이 심한 집이 아주 많다. 만 4세~10세 사이에서 이런 불안감은 학습은 물론 성장에 치명적이다.

이 문제는 부모 불안감의 연장이다. 우리나라는 부부 애정과 가정을 지탱하는 에너지에 경제적 문제가 너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재력이 화목한 가정의 제1요소가 돼버린 것이다.

한국은 평균소득 빈부격차는 큰 편이 아니지만 자산 빈부격차는 세계적으로 매우 큰 나라이다. 학력과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한 개인의 경우 직장생활이 지속되거나 가게 수준의 사업이 지속 가능할 때에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만, IMF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경우 실업(失業)은 곧 가정 파탄으로 이어진다. 버틸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곤 아파트 한 채인데, 거주하는 집은 처분해서 활용할 자산이 아니어서 자산 지니계수가 0.8에 이르는 한국은 사실상 세계 최고의 자산 빈부격차 국가이다. 이런 사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성인들은 언제나 불안감을 갖고 생활한다. (이미 한국은 불안감을 활용한 정치 역학이 뿌리를 내리지 않았는가)

부부 관계, 부모-자식 관계, 형제 관계가 모두 경제적 불안감의 포로가 돼버렸다. 어찌 아이들이 가정해체의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둘째, 동생으로 인한 불안감이다.

"동생에게 부모의 애정을 빼앗기지 않을까"하는 불안이다. 우리 캠프 참가자의 대부분은 맏이이다. 대체로 만 2~4세에 동생을 보게 되는데, 육아가 개인차원의 문제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둘째나 셋째의 출산은 곧이어 엄마의 육아노동 강도를 몇 배로 늘린다. 자연스럽게 큰 아이는 소홀하게 되고, 아빠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이나 아직 30대인 아빠들이 육아에 힘을 보태기엔 역부족인 현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습에 있어 결정적 시기에 동생을 보면서 엄마와 대화가 전보다 폭력적으로 적어진다는 점이다.

맏이들은 거의 대부분 동생을 미워한다. "너는 동생을 미워하니?"라고 물어보면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가 엇갈리지만 속마음을 쓰는 일기나 독후감 등에서는 예외 없이 동생이 미운 존재로 나타난다.

이 문제도 육아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과 연관 있다.

셋째, 어린이집, 유치원 단계부터 "경쟁에서 탈락할까 봐 느끼는 불안감"이 있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넷째, "또래 집단에서 제외될까 봐 느끼는 불안감"이다.

왕따와 깊은 연관이다.

다섯째,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다.

인간의 원초적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죽음은 곧 모든 것의 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깊은 공포를 내재하고 살아간다. 종교적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불안감으로 인해 아이의 성장이 왜곡된다면, 그 아이는 대체적으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예민한 감각도 가지고 있다. (결코 예민한 성격이 아니다. 여기서 종종 오해가 일어난다)

Care가 부족해서, 또는 부족하다고 느꼈던 친구들을 데리고 가장 먼저 할 일은 돌봐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훈련시킬 수 있다. 물론 돌봄과 훈련은 같이 간다. 하지만 캠프에 참가한 친구들은 돌봄이 먼저이다.

캠프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을 역이용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종의 명현현상이다. 사랑과 돌봄이 부족할수록 나타나는 현상이며 곧 없어진다.

그래서 캠프 다음엔 학교로 발전해야 한다. 언제나 우리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