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이가 난데없이 힘들다며 한숨을 쉰다. 왜 힘드냐고 물었더니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날씨가 너무 안 좋아요."란다. 4세가 날씨가 안 좋으면 힘든 게 뭔지 알까. 저런 어르신 말투는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걸까.
"감기에 걸려서 힘든 건 아닐까?"
그랬다. 해님이는 감기에 걸렸다. 매일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이후 뜸하다가, 며칠간 불어온 쌀랑한 바람에 실려 여지없이 찾아온 감기. 하지만 열 없이 콧물만 조금뿐인 해님이보단, 누나에게 옮은 어린 동생이 더 문제였다.
모체로부터 받은 면역력은 서서히 사라진다고 하더니, 4개월의 작고 여린 몸이 벌써부터 홀로서기를 할 줄은 몰랐다. 체온이 38도까지 올라간 것도 생전 처음, 해열제와 콧물 기침약을 먹는 것도 생전 처음이었다.
작은 아기가 앓는 건 안쓰러워서 못 봐줄 노릇이었다. 코가 막혀 분유를 제대로 못 빨고 캑캑대는 모습을 평정심을 갖고 볼 수 있는 부모는 없었다. 그래도 아기는 먹고살아야겠다며 빨다가 울고, 다시 빨다가 울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기고, 결국 제 양을 다 못 채운 채 지쳐 잠들었다.
그리고 정작 밤에는 잠을 못 잤다. 늘 그림처럼 잘 자던 아기가 열 때문인지, 코 막힘 때문인지 수시로 깼다. 꺼이꺼이 우는 소리에 나도 당연히 잠을 설쳤다. 한 손엔 체온계, 다른 손엔 미온수에 적신 손수건을 든 채, 아기 옆에서 밤새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니, 이제 열도 내리고 콧물도 멎었다. 다행이었다. 먹구름이 낀 나날이 다 지나간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기 얼굴은 아직 개운하지 않았다. 앓는 동안, 뭔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걸까. 아기는 눕기만 하면 허리를 비틀면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자세를 고쳐줘도 다시 얼굴을 붉히며 몸을 비틀었다.
뒤집기를 시작한 거였다.
감기 걸리기 전에도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다리를 넘기지 못해 몸을 모로 세우는 게 고작이었다. 이번엔 다리를 훌쩍 넘기고 배가 바닥을 향하게 해서 제법 엎드린 자세가 됐다.
나는 얼른 남편과 친정 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내가 뭐랬어. 애가 아픈 거는 새로운 것을 하나 배우려고 그러는 거라니까."
친정 엄마는 예전부터 수없이 들었던 그 말을 또 했다. 감기의 끝과 뒤집기의 시작이 너무 맞닿아 있어서일까. 생각 없이 듣던 그 말이 이번엔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아프고 성숙한 건지, 성숙하기 위해 아팠던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감기가 떠난 날부터 시도 때도 없는 뒤집기가 시작되었다는 거다.
아기는 뒤집은 후에는 늘 끙끙거리며 울었다. 고개를 들지 못해 답답하다는 건지, 앞으로 배밀이해서 나가고 싶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하고 측은한 마음에 다시 눕혀주면, 아기는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시 뒤집었다. 그리고 또 울었다.
뒤집기를 반복하다 보면, 침과 분유 토사물이 늘어난 치즈처럼 줄줄 흘러 뺨과 턱과 팔과 바닥에 흥건해졌다. 토냄새가 심했다. 감기 때문에 땀 흘리며 앓은 데다, 감기가 심해질까 목욕도 건너뛰었기 때문에 퀴퀴한 쉰내도 났다.
아긴데, 벌써부터 고생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어쩌나.
"힘드니까 오늘은 그만해."
나는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만하라고 해도 그만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말리고 싶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울면서까지 열심히 할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삶은 힘든 건데, 왜 힘들게 굳이 애쓸까.
때마침 스피커에서 <달팽이의 하루>라는 동요가 흘러나왔다.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라는 가사에 잠시 머물렀다.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걷지 않아 본 사람도 있을까. 생각대로 쉽게 될 것 같은데 쓸데없이 더디고 진척이 없을 때. 그래도 제자리걸음보다는 나을 거라 마음을 다잡아도,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세상의 속도가 쏜살같이 느껴져 마음이 아득해질 때.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이미 기고, 걷고, 뛰고, 날아가 저만치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만나려면, 바닥에 엎드린 채로 아기처럼 버둥거리는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아니면 달팽이처럼 종일 애써서 한 뼘도 못 가거나.
하지만 기어이 마음이 부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인간의 본능인 것을. 때로 심한 감기를 앓아도, 때로 침과 토 범벅이 되어도, 아기가 뒤집기와 배밀이를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도착할 날도 요원하지만, 우리는 달팽이처럼 정해진 길을 간다. 때로는 신나서, 때로는 끙끙거리며 울면서.
긴 장마다. 해님이 말마따나 날씨가 안 좋아서 한숨이 나오는 날도 계속될 것이다. 비가 싫은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맞는 비라면 달팽이를 응원하기 위해 내리는 비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조금씩 가는 사람에겐 참 다행이지 않은가. 비가 내내 내린다는 것은. 하루에 한 뼘도 못 가는 달팽이지만, 장마에는 한 뼘에 한 뼘, 한 뼘에 한 뼘을 더해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간다. 아기와 나도 그렇게 함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