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이 Aug 12. 2021

얼룩 아기 오리

미운 아기 오리를 다시 쓰다



얼룩무늬 알이 있었어요. 엄마 오리가 품은 여러 개의 알 중에 하나였지요. 얼룩 알은 다른 알에서 노란 아기 오리들이 전부 나온 후에야, 토독토독 깨지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막내 오리가 고개를 내밀자, 형제 오리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엄마, 막내 색깔이 왜 이래요?"

엄마 오리는 막내 오리를 쓰다듬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어요.

"우리 막내 털에는 회색이 섞여 있구나."

그러자 오리 형제가 자기들끼리 쑥덕거렸어요.

"얼룩 알에서는 얼룩 오리가 태어나는 건가 봐."

"그럼 막내는 이제 '얼룩 오리'라고 부르자!"



얼룩 오리는 형제들이 지어준 이름이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무리를 떠나 연못가에 홀로 앉아있을 때가 많았어요. 회색과 노란색이 섞여 얼룩덜룩한 제 모습을 물에 비춰보며 혼잣말을 했어요.

"그냥 혼자 노는 게 좋겠어. 나는 노란 오리가 아니라 얼룩 오리니까.'

그러던 어느 날, 얼룩 오리는 나무 기둥에 붙어있는 종이 한 장을 보게 됐어요.



얼룩 알을 찾습니다. 낳자마자 잃어버린 백조 알을 찾습니다. 주인 없는 얼룩 알을 발견하신 분은 백조의 호수 27번지로 알려주세요. -매일 눈물로 기다리는 백조 엄마



얼룩 오리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나는 백조였어! 그래서 얼룩 알에서 태어난 거였어!"

얼룩 오리는 백조의 호수로 가기로 했어요. 그곳에 가면 진짜 엄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오리 학교에 가는 길에 떠날 기회를 노렸어요.

"아가들아, 잘 따라오고 있니? 오늘은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는 날이야. 수영은 처음이지?"

“네.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엄마는 저녁거리로 지렁이를 잡아올 테니, 너희들은 수업 재밌게 받으렴."

"네!"

엄마 오리는 학교 문 앞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엄마 오리가 돌아서는 순간, 얼룩 오리는 몰래 무리를 빠져나왔지요.



사실, 얼룩 오리는 백조의 호수가 어디 있는지 몰랐어요. 개울 백조의 호수로 흘러간다고 들었던 게 기억나서, 개울을 따라 걸어갈 뿐이었어요. 하지만,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걷기만 한 얼룩 오리는 길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아이고, 가엾어라. 어서 우리 집으로 가자."

다행히, 지나가던 한 할머니가 축 늘어진 얼룩 오리를 발견하고 번쩍 안아 들었어요. 할머니는 얼룩 오리를 집에 데려가 눕힌 다음, 풀숲에서 잡은 살진 지렁이 한 마리를 내밀었어요.

"통통한 지렁이가 오리 먹이로 딱이지. 어서 먹으렴. 힘이 날게야."

얼룩 오리는 배가 고팠지만, '오리 먹이'라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할머니, 전 오리가 아니에요. '오리 먹이'는 먹지 않아요."

"그래? 그럼 어쩐다. 이거라도 먹어볼래?"

할머니는 얼룩 오리에게 닭과 병아리에게 주려던 옥수수알 한 줌을 집어 주었어요. 얼룩 오리는 옥수수를 꼭꼭 씹었지요. 하지만, 먹이를 빼앗긴 닭은 심통이 났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없을 때, 얼룩 오리의 뒷덜미를 콕콕 쪼아댔어요.

"야! 오리인지, 오리 친척인지 몰라도, 여긴 우리 집이야! 너네 집으로 가!"

얼룩 오리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워서 할머니 집에서 나왔어요.



얼룩 오리는 다시 개울을 따라 걸었어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몸이 오들오들 떨렸어요. 그때, 머리 위로 날아가는 들오리 떼가 보였어요. 얼룩 오리는 큰 소리로 물었어요.

"들오리 아저씨! 들오리 아주머니! 혹시 백조의 호수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

“백조의 호수? 너 지금 백조의 호수에 가는 거니?"

들오리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얼룩 오리 옆에 내려앉았어요. 얼룩 오리의 처량하게 걷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거지요.

"네. 이 개울을 따라가면 갈 수 있나요?"

"그래. 개울을 따라 남쪽으로 한참 가면 백조의 호수야. 하지만 걸어가기엔 먼 곳이지. 날아서 간다면 모를까."

그 말에 얼룩 오리는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혹시... 백조는 하늘을 날 수 있나요?"

"그럼."

들오리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갔어요.

"오리든, 백조든 세상에 어떤 새든 마찬가지야. 날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날 수 있어. 새에게 날개가 있는 건 하늘을 날기 위해서야. 모든 새의 날개 속에는 하늘 바람의 향기가 깃들어 있단다."

"제 날개 속에도요?"

"그럼, 네 날개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서두르렴. 곧, 겨울이 올 거야. 겨울은 새에겐 혹독한 계절이지. 게다가 요즘엔 사냥꾼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들오리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가야 했어요.

”조심하렴. 예쁜 새야!"



들오리가 간 뒤, 얼룩 오리는 제 날개를 천천히 펼쳐봤어요. 그리고 조금씩 움직여 봤어요. 이번엔 와다다 달렸다가 뛰어오르며 날개를 파닥였어요. 그러다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넘어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얼룩 오리는 하늘을 나는 연습을 했어요. 개울이 얼어붙고, 떨어지는 눈송이에 하얗게 덮일 때까지 연습은 이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얼룩 오리는 어디선가 “탕탕” 하는 사냥꾼의 총소리를 들었어요. 푸드덕하는 새의 날갯짓소리, 컹컹 짖는 사냥개 소리도 함께 들렸지요.

"컹, 컹, 컹, 컹!"

사냥개의 소리는 점점 커지자 얼룩 오리는 사색이 되었어요.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움직였지요.

‘제발, 제발!’

그때였어요! 얼룩 오리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거예요. 드디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거지요.



얼룩 오리는 하늘 높이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개울도, 나는 법을 연습하던 풀숲도 전부 작아 보였어요. 얼룩 오리는 걷던 방향을 따라 계속 날아가 백조의 호수에 다다랐고, 27번지에 있는 백조 엄마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요.

"넌 누구니?"

낯선 얼룩 오리를 본 백조 엄마는 눈이 동그라졌어요.

"네, 제 이름은 얼룩 오리예요. 하지만 전 오리가 아니에요. 얼룩 알에서 태어난걸요. 아줌마가 잃어버린 얼룩 알 말이에요."

백조 엄마는 눈을 글썽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룩 오리야, 이리 와서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렴. 너는 백조가 아니야."

"네?"

"넌 아주 멋지게 잘 자란 오리란다."

얼룩 오리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어요. 거기엔 목이 늘씬한 다 큰 오리가 있었어요. 윤기가 흐르는 흰 털 사이에 회색 깃이 멋스럽게 반짝였어요. 크고 영롱한 눈은 엄마 오리를 꼭 빼닮았지요.

"저는 오리였군요!"

얼룩 오리는 탄성을 질렀어요. 홀로 나는 법을 연습하는 동안, 개울이 얼어붙어 물에 비친 제모습을 보지 못하는 동안, 얼룩 오리는 멋진 어른 오리 된 거지요.



얼룩오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집을 나는 길은 춥고 험난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달랐어요. 날개를 스치는 따뜻한 바람이 룩 오리를 응원하고 있었거든요. 집에 도착했을 때, 오리가족은 봄볕 아래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어요. 얼룩 오리를 나타나자, 엄마 오리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왔어요.

"아가야, 그동안 어디 갔었니? 얼마나 찾았다고. 흐흐흑.”

"죄송해요. 엄마."

엄마 오리는 얼룩 오리를 감싸 안으며 한참을 흐느꼈어요. 얼룩 오리도 엄마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어요. 울음소리를 들은 오리 형제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왔어요.

"얼룩 오리야, 돌아왔구나!"

"보고 싶었어!"

부리가 뭉뚝한 형제도, 날개에 점무늬가 있는 형제도 모두 얼룩 오리 주변에 모였어요. 예전엔 자기만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형제들의 모습도 조금씩 달랐어요. 세상에 똑같이 생긴 오리는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얼룩 오리야, 이리 와. 같이 수영하며 놀자."

한쪽 다리가 짧아서 절뚝거리는 형제 오리가 말했어요.  

"그런데 난 수영할 줄 몰라."

얼룩 오리가 쭈뼛거리자 형제 오리가 빙그레 웃었어요.

"천천히 배우면 . 그리고 못하면 어때. 물장구만 쳐도 재미있단다."

얼룩 오리는 형제들을 따라 연못 속에 천천히 들어갔어요. 처음이라 조금 서투르고 어설펐지만, 얼룩 오리는 웃음을 잃지 않았요. 리고 수영은 조금 못해도 괜찮았어요. 얼룩 오리자기만의 특기가 있으니까요. 바로 하늘을 나는 것이지요! 



오리 가족 중에 하늘을 날 줄 아는 오리는 얼룩 오리뿐이었어요. 얼룩 오리는 가끔씩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도는 비행쇼를 했어. 그때마다 엄마 오리와 형제 오리는 입을 쩍 벌리 아낌없는 박수를 내줬지요. 얼룩 오리는 이제 자신이 오리여도, 오리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어. 얼룩 오리는 하늘 바람 향기가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였으니요.

매거진의 이전글 다섯 살에게 내일은 빨리 와야 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