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업인 대상 강의 때 일이다. 어느 분이 미세먼지 문제 좀 싹 해결해 주는 스마트 솔루션은 왜 아직 없냐고 가벼운 질타까지 느껴지는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스마트시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 드렸으니 그런 질문을 하실 법도 하다. 서정주 시인 말씀대로 국화꽃 한 송이를 제대로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울어줄 소쩍새와 먹구름 속 천둥이 필요한 것처럼, 스마트 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 역시 단숨에 되는 것은 아니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업그레이드시켜 가야한다고 답변 드렸지만 그 순간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그 질문이 꼭 ‘미세먼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느냐’는 핀잔처럼 들려 과학기술인을 대표해 사과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삼한사미’가 ‘삼한사온’을 대신하게 되었다니 시쳇말로 참 웃프다. 말만 들어도 벌벌 떨리게 맹위를 떨치던 한반도 터줏대감 동장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삼한사온은 한겨울 강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숨 돌리고 바깥 활동 좀 하라고 동장군이 통 큰 아량을 베푼 건데, 그 자리를 뜨내기 불청객 미세먼지가 떡하니 차지해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미세먼지보다 차라리 추운 게 낫다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질 거라는 일기예보를 더 반기게 되었으니, 사람들에게 미세먼지가 가장 큰 도시 문제의 하나로 여겨짐직하다.
미세먼지로 인해 우리 일상에는 고민과 결정의 순간이 현저히 늘었다. 미세먼지가 무섭다고 실내 환기를 안 할 수도 없고, 답답한 집안 공기를 참아야할지 창문을 열어야할지, 또 언제 창문을 열면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해야한다. 모처럼의 주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는 싫은데, 바깥나들이는 설레기보다는 망설여지는 일이 되어 버렸고, 언제, 어디로 가야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고민과 결정의 순간 사람들의 손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첫 화면에 받아둔 미세먼지 앱(App)을 습관처럼 열어보고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미세먼지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행동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스마트 기술은 사용자의 위치에 따라 보다 정확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그 수치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알려주는 일을 한다. 스마트의 단계 중에는 가장 기본적인 ‘초등’ 수준의 솔루션으로, 미세먼지 상태에 따라 사용자 스스로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전문 상담 창구 같은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초등 수준이 On-demand형의 수동적 솔루션이라면, 중등 수준은 그간 축적해 둔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을 모니터링하면서 가벼운 조언을 해 주는 ‘측근’ 같은 역할이랄까. 출근길, 등굣길에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알려주거나, 가족 나들이는 실내가 좋겠다거나, 귀가 후 손과 눈을 씻으라든가, 쇼핑할 때는 미세먼지 줄임 효과가 큰 제품을 사도록 슬쩍 조언한다든가... 문제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점이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담 창구 직원이 어설프게 내 행동에 이런 저런 조언을 하려 드는 것을 상상해 보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릴 것이다. 스마트 기술이 소위 ‘듣보잡’ 잔소리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용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사용자와 스마트기술이 서로를 알아 가는 데에는 누군가를 측근으로 여기게 될 정도의,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고 수준의 스마트 단계는 비유하자면 ‘도와줘요, 슈퍼맨!’을 외치면 ‘짠’ 하고 나타날 법한 문제 해결 영웅이다. 그 영웅은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사용자의 건강상태와 생활 패턴에 딱 맞춘 쾌적한 환경을 ‘알아서’ 설정해주고, 미세먼지는 물론 에너지절약, 사용자의 편리와 비용절약까지 한 번에 다 잡아 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언젠가 우리 곁에 찾아올 진정한 문제 해결 영웅을 고대하며, 과학기술인들은 오늘도 국화꽃을 피워낼 소쩍새와 천둥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