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금요광장] 칼럼 > 스마트기술로 준비하는 ‘위드코로나’ 시대
독자들께서도 ‘스크래치맵(Scratch Map)’이라는 세계여행 지도를 기억하실지. 언뜻 보기엔 황색의 평범한 세계지도인데, 복권을 긁듯이 긁어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자신이 가본 나라나 도시를 하나씩 긁어내며 ‘모으는’ 재미가 있어서, 여행 애호가들에게는 대표적인 ‘잇 아이템(It Item)’이었다. 자신의 여행족적을 남기는 지도가 유행한 것을 보면, 그때의 여행자에게는 ‘얼마나 많은 곳에 가봤는가’의 기록이 중요했던 듯하다.
인류의 역사를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로 나누자는 얘기가 나올 만큼,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은 모든 면이 달라졌다. 여러 변화 중 가장 큰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여행이 아닐까. 최근 한 여행 서비스 기업에서는 세계 28개국 2만여 명의 여행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여행의 미래를 나타내는 키워드 9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스마트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자의 입장이라, 조사 결과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기술이 이끄는 여행의 미래’에 관한 내용이었다. 설문조사 대상 중 64%가 안전하고, 자유롭고, 유연한 여행을 위해 기술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55%)이 향후 기술혁신을 통해 개개인에 맞춤화된 여행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일상 속 스마트가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여행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여행기술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당연하다.
온라인 여행에 대한 내용도 눈에 띄었다. 거의 모든 응답자(95%)가 ‘집콕’하는 동안 온라인 여행 정보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메타버스(Metaverse)’와 관련된 내용도 있다. 응답자의 3분의 1(36%) 가량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여행지를 가상현실(VR)로 미리 둘러본다면 더 안심될 것이라 답했다. 비록 온라인 콘텐츠가 실제 여행 경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메타버스를 관광과 연계하여 여행자의 필요를 충족시키자는 시도에는 힘이 실린다.
여행 제한 조치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망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과 방식은 사뭇 달라질 듯하다. 위드코로나 시대, 미래의 여행자들에게는 ‘얼마나’보다는 ‘어떻게’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여행자들의 여정은 어떤 모습일까?
결혼기념 여행을 꿈꾸는 30대 김미래씨 부부는 함께 VR고글을 착용하고 ‘메타스크래치맵’을 실행시킨다. ‘메타스크래치맵’은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된 가상현실기반의 여행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그 가상의 공간 안에서는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러 여행지를, 사전답사를 하듯이, 생생하고 실감 나게 탐색하며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가장 안전하고 편한 교통수단과 숙소를 손쉽게 예약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숨은 맛집과 볼거리를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행지에서 생길 수 있는 기분 나쁜 돌발상황을 예측하여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주고, 만약의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사전 연습도 해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는 모든 과정을 개인 가이드처럼 도와주고 기록해 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여행자는 예약 누락이나 꼬여버린 일정으로 허둥거리거나 옥신각신할 필요 없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여정에 따라 기록된 사진과 영상을 감상하며 추억을 되짚어볼 수도 있다. 메타스크래치맵은 여정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다음 여행으로의 연결고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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