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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May 08. 2020

Apink의 재발견

국내 뮤직 트렌드

안정적인 트랙. 1년 3개월 만에 돌아온 Apink의 타이틀 트랙 '덤더럼(Dumhdurum)'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1도 없어'와 '%%(응응)'에 이어 다시 한번 블랙아이드필승에게 프로덕션을 맡긴 '덤더럼'은 귀에 잘 들어오는 훅을 매력적으로 출렁거리면서 [ONE & SIX] 이후 콘셉트를 변화시킨 Apink의 노선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글ㅣ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타이틀 곡을 넘어가면 들리는 다양한 소리들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타이틀 트랙에 있어서 "안정성"을 가장 먼저 느꼈다는 건 보통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룹이 자신이 선택한 경로에 있어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준비가 되었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감각은 그룹이 (상업적인 관점에서든, 팬덤의 만족도란 면에서든) 최대한 안전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는 함의도 지니고 있다.

'덤더럼'의 깔끔한, 하지만 '1도 없어'와 '%%(응응)'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익숙해진 사운드를 들으면서 후자의 측면을 좀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LOOK]이 "이미지 변화" 이후 세 번째로 공개되는 Apink의 레코딩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인상이기도 하지만, Apink라는 그룹 자체가 보통 "혁신적"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과거지향적인 사운드와 콘셉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역사의 영향 탓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은 어디까지나 '덤더럼'만을 들었을 때 성립한다. 유려한 보컬과 기분 좋은 코드 진행의 반전이 도사린 R&B 트랙 'Yummy', 트로피컬 하우스와 퓨처 베이스의 좋은 부분만을 따와 각자의 색이 또렷한 정은지, 김남주, 박초롱 / 윤보미, 손나은, 오하영의 보컬과 각각 결합시킨 'Be Myself', 'Love is Blind' 등의 곡들은 '덤더럼'과 또 다른 영역에 있는 Apink의 모습 – 조밀하게 세공된 일렉트로닉 팝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그룹으로서의 Apink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덤더럼

Yummy

Be Myself

Love is Blind


다시 보는 과거


그런데 이렇게 대중지향적 훅을 전면에 내세운 안정적인 타이틀곡과 다양한 일렉트로닉 팝의 가능성을 탐사하는 수록곡의 이중주를 선보인 것이 [LOOK]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일까? Apink의 앨범을 꼼꼼하게 들어왔던 팬들이라면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SM 엔터테인먼트적 감각의 딥 하우스를 짜릿한 브레이크와 함께 Apink적으로 재해석한 듯한 '느낌적인 느낌', 유려하게 배치된 브라스 사운드와 절도 있는 비트가 기분 좋은 긴장감을 만드는 R&B 트랙 'Enough', 4박의 정직한 베이스 드럼 위로 온갖 색깔의 신시사이저를 폭죽처럼 터뜨리는 'A L R I G H T', Perfume의 통통 튀는 정신없는 일렉트로팝을 연상시키는 빠른 템포의 트랙 'I Like That Kiss'… [PERCENT]와 [ONE & SIX]에서 Apink는 이미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성을 갖춘 훌륭한 일렉트로닉 팝 트랙들을 여럿 선보인 바 있다.


느낌적인 느낌

Enough

A L R I G H T

I Like That Kiss


더불어, Apink가 최근 몇 년간 보여준 결과물에서 나는 여전히 2010년대 초 이들이 내놓았던 히트곡들의 잔향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ONE & SIX]와 [PERCENT], [LOOK]은 "요정돌", "청순돌" 같은 고민 없는 수식어나 "K-Pop 초창기 걸그룹을 따르는 과거지향적 음악"이라는 일반적인 프레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Apink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끔 만든다. 미립자 같은 아기자기한 사운드를 청량한 드라이브감과 멋지게 결합시킨 'NoNoNo'와 'Mr. Chu'의 세심함, 긍정적인 멜로디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파워풀한 보컬을 겹겹이 쌓아 올린 'Good Morning Baby'와 'BUBIBU'… Apink에게는 활동 초기부터 높은 수준의 짜임새와 끝도 없이 올라가 있는 텐션이라는, 얼핏 보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두 특성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그것은 다양한 색을 자랑하는 멤버들 개개인의 보컬이라는 요소와 결합해 이들의 음악에 생동감을 전달했다. 단지 너무나도 익숙한 문법을 구사한다는 점에 가려져서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


FIVE

별의 별

Boom Pow Love

좋아요!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은 그룹

이러한 생각을 "그랬기 때문에 Apink가 오랜 시간 동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라는 결론과 섣불리 연결 짓고 싶지는 않다. 아이돌이 계속해서 수명을 이어 나간다는 것은 음악적 성취보다는 산업적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렇지만 그 반대로 생각해 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Apink가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지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성취도 없었을 것이라고.

팝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고막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못지않게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시간을 쌓아 올린 아티스트의 작업물이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쌓인 시간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너무 늦을 때가 많다는 건 그런 타입의 아티스트를 다시 발견하게 될 때 언제나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Apink를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다. 그 기쁨이 좀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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