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Metallica의 4집 앨범인 [...And Justice For All]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의 Metallica를 땅 위로 이끌어낸, 지금의 Metallica를 만든 앨범입니다. 하지만 그 앨범에서 베이스기타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믹싱 과정에서 베이스기타의 소리를 들릴 듯 말 듯 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앨범의 믹싱 엔지니어인 Steve Thompson 실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Guns N' Roses의 초대박 히트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를 비롯해서 John Lennon, Aretha Franklin, Whitney Houston, Madonna, Tesla 등등 쟁쟁한 뮤지션의 앨범 작업을 했고, 그래미 상을 여섯 번이나 받은 엔지니어였죠. 이유는 팀 내부에 있었습니다.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Metallica의 멤버들, 그중에서도 Lars Ulrich와 James Hetfield는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Cliff Burton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그를 대신해 들어왔던 Jason Newsted를 따돌렸고, 특히 팀의 리더인 Lars Ulrich는 자신의 드럼 사운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주파수 대역이 겹치는 베이스기타의 소리를 거의 안 들릴 정도로 내려 앨범을 출시했습니다. 헤비메탈 드럼 사운드의 표준 내지는 백두산 드러머인 박찬 씨의 표현을 빌자면 "드럼의 지구 대표 사운드"인 Metallica의 5집 앨범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도드라지게 느껴지죠.
Metallica - ...And Justice for All
이럴 경우 킥드럼은 더 단단해지고, 스네어 드럼은 금속성이 강해집니다. 기타 역시 James Hatfield가 연주하는 배킹의 사운드가 더 명확해지죠. 한 마디로 Lars와 James는 그들이 원하는 사운드를 얻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진 앨범이 되었습니다. 다리 근육과 팔, 어깨 근육은 엄청나지만 허리와 복근이 없는 보디빌더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For Whom The Bell Tolls' 같은 곡에서 베이스기타가 전체적인 멜로디를 이끌어갔던 Cliff Burton의 시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Metallica - For Whom The Bell Tolls
자, 그렇다면 이런 앨범은 어떤 오디오 시스템으로 들었을 때 만족감이 높아질까요? 베이스기타의 소리를 듣기 위해 해상도가 대단히 높은 B&W나 ATC, 포칼 류의 스피커나 여음 포착 능력이 뛰어난 다인오디오의 스피커로 들으면 좀 나아질까요?
물론 그런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로 듣는다면 일반적인 음악 감상용 스피커로 들었을 때보다 Jason Newsted의 베이스기타 소리가 더 잘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피커의 종류가 어찌 되었건 드럼과 베이스기타의 음량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고, 이는 아무리 해상도가 좋은 스피커로 듣는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베이스기타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는 볼륨을 높여야 하고, 그렇다면 드럼 소리는 더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ATC SCM 20 스피커처럼 저역을 약간 부스트시키는 스피커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긴 하지만 대부분의 모니터 스피커는 특정 대역이 부스트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대역간 밸런스가 좋기에 모니터용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한 마디로 녹음이 잘못되면 아무리 오디오 시스템이 좋아도 답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모니터 스피커는 구동이 어렵고, 잘못된 소리를 꾸미지 않고 그대로 들려주기에 듣기에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라면 그런 스피커보다 JBL 4408, 4410, 4411, 4412 류의 덩치 크고 구동이 어렵지 않은 북쉘프 스피커(오디오가 취미인 사람들은 이 정도 사이즈의 스피커를 궤짝 스피커라고 부릅니다. 크기가 사과 궤짝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필자 주)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베이스기타의 소리는 포기하는 대신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즐기기에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녹음에 따라, 음악 장르에 따라, 그리고 청취공간의 크기에 따라 좋은 소리를 내주는 오디오 시스템은 달라집니다. 오디오는 비쌀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이 바로 여기에서 깨지는 것이죠.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지인 중 한 명은 집에 포칼 그랜드 유토피아 스피커와 VTL 플래그쉽 앰프 세트(TL 7.5 mk2, 지그프리트), 그리고 dCS CD 플레이어와 에소테릭 마스터 클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CD 플레이어의 기기 간 동기화를 담당하는 클록의 가격만 2천만 원에 달하는, 이 이외에도 이 집에 있는 오디오 기기 가격을 모두 합치면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을 훌쩍 넘어서는 엄청난 고가의 시스템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분은 이런 오디오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 별도의 청음실이 있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에서 들었던 사이먼 래틀 경의 말러 교향곡 제2번은 제가 들었던 모든 말러 교향곡 중에서도 첫 손에 꼽을 만큼 소리가 좋았죠. 하지만 이 집에서 [...And Justice For All] 앨범의 타이틀곡인 'One'을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한 쪽 채널에만 6550관이 열두 개 들어가는 VTL 지그프리트 앰프는 Lars의 6연음 킥드럼을 따라가지 못해 허둥댈 것이고, Kirk가 주로 쓰는 EMG 81 픽업과 메탈존의 날카로운 소리는 베릴륨 트위터와 만나면서 귀를 자극하는 소리를 만들어낼 겁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제 작업실에 들어온다면 그 자극적인 소리는 훨씬 더 심해질 것이고요.
20평이 채 안 되는 제 작업실처럼 작은 공간에는 그런 어마무시한 시스템보다 PMC DB1i나 TB2i 정도의 작은 스피커에 적당한 인티앰프가 연결된 시스템이나 지금 제가 모니터용으로 듣고 있는 맨해튼 II 정도의 D/A 컨버터에 젠하이저 HD 800 헤드폰으로 구성된 시스템에서 더 나은 소리가 날겁니다. 물론 맨해튼 II 컨버터나 HD 800 헤드폰을 합한 가격이면 결코 저렴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헤드파이 시스템이지만 그래도 그랜드 유토피아 스피커에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 한 개(한 조가 아니라 한 개!)의 가격보다도 쌉니다.
앞의 오디오 시스템에서 파워앰프를 스피커의 구동력이 좋은 브라이스턴이나 파라사운드의 앰프로 바꾸고 프리앰프도 스펙트랄이나 비투스처럼 시원시원하게 소리를 내주는 브랜드의 프리앰프로 바꾼다면 눈앞에서 Metallica의 네 멤버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럴 경우에는 제가 들었던 말러교향곡 제2번은 다시 듣지 못하겠죠. 이런 예처럼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는 변수는 많습니다.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 소리의 지향점이 달라지는 것이고, 그에 따라 소리의 만족도가 달라지는 거죠.
다만 변치 않는 오디오 조합의 팁이 있는데요. 모니터 계열의 스피커일수록, 그리고 스피커가 크고 유닛이 많이 달려있을수록 고급 하이파이 파워앰프보다는 고급 프로용 파워앰프에 연결했을 때 좋은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고, 스피커나 앰프와는 달리 소스 기기는 공간의 크기나 주로 듣는 장르에 상관없이 비싸고 하이엔드로 갈수록 좋은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 그래서 어떤 소리를 만드느냐가 오디오의 재미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