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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Aug 28. 2020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보아를, 조금만 더

국내 뮤직 트렌드

보아의 데뷔 20주년을 맞아 SM STATION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Our Beloved BoA]는 보아의 대표적인 다섯 트랙들을 리메이크한다. 그렇지만 이번 프로젝트 이전에도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이 보아를 커버한 경우도 종종 있었고, 다양한 아이돌 팝 음악인이 보아의 댄스 커버를 담은 영상과 무대를 펼쳤다. 비록 저작권 등의 제한으로 인해 공식적인 음원으로 그러한 리메이크나 커버 트랙을 만날 수 있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지만 말이다.

보아가 지난 20년 간 남긴 수많은 명곡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다섯 곡이라는 [Our Beloved BoA]의 리메이크곡의 숫자는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팬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곡들이 새롭게 재탄생한 결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와 커버 작업은 기존 트랙에 대해 어떨 때는 헌정을 담고, 또 어떨 때에는 색다른 해석을 넣는 등 다양한 시선과 접근 방식을 통해 기존 트랙이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과정이었다. 지난 20년 간 보아를 재해석한 여러 리메이크와 커버곡들에서도 이 숨결들을 찾아 들을 수 있다.


글ㅣ나원영(웹진웨이브 에디터)

사진 출처ㅣ@boa.smtown, aboab.tumblr.com


백현 '공중정원'

레드 벨벳 'Milky Way'


# '아틀란티스 소녀', 청량하게 혹은 섬세하게

보아의 여러 2000년대 활동곡 중 국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분명 '아틀란티스 소녀'일 것이다. 보아의 대표적인 일본 초창기 타이틀 곡들은 하라 카즈히로가 작곡했는데, 그의 작품인 'Listen To My Heart'나 'Valenti'는 강하고 빽빽한 비트에 맞물린 강력한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아틀란티스 소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 에너지를 최대한 맑고 청명하게 풀어냈다. 덕분에 곡은 그 이후로도 가사와 맞물려 여러 보컬들의 다양한 표현법으로 특유의 청량함을 재해석하는 식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이는 특히 여러 음악 경연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보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K팝 스타" 시즌 1에서의 백아연을 비롯, "복면가왕"의 보미(Apink)와 "가왕"이었던 소향이 원곡의 에너지를 그들의 목소리에 맞춰 힘차게 끌어왔다면, "아이돌 보컬 리그 – 걸스피릿"에 참여한 Kei의 무대는 고글과 멜빵 등 당시의 복장까지 재현한 훌륭한 퍼포먼스를 해냈다.

한편 어쿠스틱 사운드를 동원해 곡을 커버한 경우 또한 여럿 찾아볼 수 있었는데, 아마 특유의 맑은 분위기에 맞춰 편곡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틀란티스 소녀'의 작곡가인 황성제의 곡들을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에 수록되었던 박정현의 버전은 조금 더 느린 분위기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관현악 악기들을 대동해 섬세한 기교들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은 "비긴 어게인 3"에서 헨리의 바이올린과 하림의 건반 연주, 임헌일의 기타 연주에 맞춰 박정현과 수현(악동뮤지션)이 선보인 듀엣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재편곡에서 악기를 강조하는 것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진아와 멜로망스가 곡을 다듬었을 때 스윙 풍의 건반 연주 구간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보아 '아틀란티스 소녀'

소향(노래 9단 흥부자댁) '아틀란티스 소녀'

케이 '아틀란티스 소녀'

백아연 '아틀란티스 소녀'

박정현 '아틀란티스 소녀'

볼빨간 사춘기 '아틀란티스 소녀'


# 보아만의 강렬한 힘을 색다르게 변환하며

보아의 여러 타이틀곡은 곡이 발표된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절제된 힘과 이를 알맞게 펼쳐내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전기 기타 소리를 중심으로 팝적인 R&B 보컬, 잘게 나눠진 전자음으로 강조된 리듬 파트 등이 꼼꼼히 들어간 데뷔곡 'ID; Peace B'의 구성을 큰 무리 없이 소화했던 것부터 그러했다. 2000년대 초중반, SM이 당시 선보였던 강렬한 비트의 댄스 음악과 힘이 실린 보아의 창법이 조화를 이루며 그 에너지가 깔끔하게 뿜어졌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 두껍고 쨍한 전자음을 강조한 댄스 음악이 담긴 [Hurricane Venus]의 트랙들부터 'WOMAN'이나 'ONE SHOT TWO SHOT', 'CAMO'에서의 미니멀하고 세련된 편곡 및 무거운 베이스에서 그 절제된 힘을 찾아볼 수 있다. 언제나 보아의 파워를 다채롭게 머금고 있던 곡들은 리메이크될 때에도 음악인들이 그에 맞춰 자신들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참조점이 되었다.

수많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과 서바이벌 오디션이 한창이던 2010년대 초반, "나는 가수다"에서 이소라가 불렀던 'No.1'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여섯 명의 기타리스트들을 양 옆에 둔 채 [슬픔과 분노에 관한]이나 [8]에서 선보였던 얼터너티브 록적인 편곡에 맞춰 이소라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재해석한 'No.1'은 보아의 곡이 록적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강하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줬다. 이후에도 이따금씩 'No.1'의 강한 비트를 록적으로 풀어낸 리메이크가 등장했다. 이소라의 무대가 방영된 지 한 달 후 "탑밴드"에서 밴드 2STAY가, 또 몇 년 뒤 "슈퍼스타 K6"에서 버스터즈가 편곡해 불렀던 'No.1'이 그러한 사례다. 한편 "슈퍼스타 K3"에서 버스커 버스커가 몇 회 전의 경연 무대였던 'Livin' la Vida Loca'의 신나는 라틴풍 록과 비슷하게 편곡했던 'Valenti'의 경우도 록의 관습에 맞춰 보아의 댄스 곡을 리메이크했다 할 수 있다.

조금 엉뚱하게도, 록 밴드가 보아를 편곡해 커버하는 경우가 한국 바깥에서도 한 차례 있었다. 이번 [Our Beloved BoA]에서 Gallant가 리듬과 그루브를 강조한 소울 풍의 편곡으로 'Only One'을 불렀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건 10년도 더 빨리 발표되었던 곡이다. 일본에서 발매되어 겨울 노래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마스곡 '메리크리(メリクリ)'가 파워 팝 밴드 Weezer의 [The Red Album]의 일본판 보너스 트랙으로 리메이크되어 수록된 것이다. Weezer가 내한 때 '먼지가 되어'를 커버했던 전적을 생각해보면 조금 기묘한 인연이기도 하다. 트랙 자체는 보컬 Rivers Cuomo가 어쿠스틱하게 편곡을 해서 부르는 소품에 가깝지만, 적어도 보아가 2000년대 일본에서 갖고 있던 위상이 어느 정도 까지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느껴진다.


이소라 'No.1'

2STAY 'No.1'

보아 'No.1'

보아 'Valenti'

보아 'メリクリ'

보아 'Only One'

Gallant 'Only One'


# '공식'의 바깥에서 리믹스하고 리메이크하기

앞서 언급했듯이 리메이크와 커버 트랙들은 여러 이유에서 공식적으로 발매된 음원으로 만나보는 게 어려운 편이다. 앞서 소개한 곡들을 비롯해 "불후의 명곡" 초창기에 효린이 온 실력을 쏟아 부어 멋지게 선보였던 'My Name'이나, 400회 특집으로 NCT DREAM이 일본에서 불렀던 의미 깊은 'No.1' 등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등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방송에 나온 여러 커버와 리메이크라도 음원으로 발매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돌 팝이나 각종 음악 프로그램 바깥에서 이런 "비공식"적인 성질을 뒤틀어 전혀 다른 접근을 꾀한 리메이크와 커버, 리믹스도 볼 수 있다.

한편, 메인스트림 팝 바깥에서 보아에 대한 헌정을 담은 음반 한 장이 통째로 나온 흥미로운 경우도 있었다. 2011년에 "비공식/무단 트리뷰트"라는 별첨과 함께 ABoAB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나온 트리뷰트 음반 [Model B. / A Tribute to BoA]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색다른 리메이크와 리믹스의 방식으로 보아의 원곡을 부수고 다시 합친다. 넘실대는 전자음과 함께 보아의 강렬함을 각자의 강세로 옮긴 트랙들이 많은 한편, 'My Name'과 'Sweet Impact'의 인상적인 부분을 샘플링해 재배치한 케이스, 아주 희미하게 'Valenti'가 들려오는 노이즈나 'ID; Peace B'를 산산조각 낸 글리치 트랙도 이 앨범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무려 18년 전인 2002년, 보아의 첫 일본 정규 음반 수록곡을 일본 음악인들이 리믹스한 [Peace B. REMIXES]도 있다. 대부분 원곡의 소리, 특히 보아의 보컬을 어느 정도 보존한 다음 덥부터 펑크와 소울, 클럽 댄스 음악, 드럼 앤 베이스 등 다양한 장르들의 비트를 까는 식이었는데, 여기서는 나중에 Mondo Grosso란 이름으로 보아와 함께 'Everything Needs Love'를 작업하게 될 하우스 음악인 오사와 신이치의 'ID; Peace B'를 주목하고 싶다. 기타 스트로크 음을 샘플링해 반복하되, 원곡의 빠르고 오밀조밀한 비트들을 함께 적용한 리믹스는 리믹스의 주체와 대상 모두의 특징이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원래는 미드 템포의 팝이었던 '두근두근'을 [Hurricane Venus]의 곡들에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총천연색으로 점멸하는 전자음으로 탈바꿈시킨 250(그는 NCT 127의 가장 강렬한 비트가 담긴 곡들인 'Chain'과 '내 Van'의 작곡, 편곡자이기도 하다)의 리믹스 'Pit-A-Pat' 역시 파괴적이면서도 지극히 충실하게 보아와 자신을 빛나게 만든 예시다.


보아 'Game'

보아 '너와 나 (U&I)'

보아 'Sweet Impact'

보아 'ID; Peace B (Shinichi Osawa Remix)'

보아 'Everything Needs Love (Feat. BoA) (Piano-Pella)'

보아 '두근두근'

250 '두근두근 (Pit-A-Pat) 250 Remix'


아이돌 팝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공식과 비공식을 넘나드는 리메이크나 커버, 리믹스 작업이 다양하게 존재해왔지만, 보아의 경우는 특히나 유별나게 많았으며 그 분류와 장르, 시기까지 다양했던 것 같다. 그 장르적인 범주는 팝은 물론 댄스, 알앤비, 전자음악, 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었고, 이러한 작업들은 보아의 일본 데뷔 시절부터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2020년까지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이 시간의 진행 속에서 보아가 각기 다른 위치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호명되는 것은 "당당하게 멀리 앞을 향해 걸어"가는 보아의 발걸음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한국 가요사의 정전으로 진입한 것은 물론, 아이돌 팝의 거대하고 단단한 롤모델로 오랫동안 존경받아왔으며, 단순히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 영미권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조명을 받은 보아. [Our Beloved BoA]라는 공식적인 헌정부터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의 커버들, 비공식적인 리메이크와 리믹스까지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보아의 재해석들은 보아의 거대한 영향력을 증명해준다. 그 영향력은 20년을 독보적으로 걸어온 그의 강한 힘과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 또 보아라는 아이콘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음악인들의 사려 깊고 창조적인 시선들이 관계를 맺으며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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