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지금도 그 때보다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200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인디 밴드의 음질은 참혹함을 넘어 안쓰러움을 느낄 수준이었습니다. 데모는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4트랙 녹음기로 녹음하기도 했으며, 정규 앨범 녹음도 제대로 된 녹음실이 아니라 연습실에서 녹음하기 일쑤였죠. 그런 때에 유독 음질이 너무 튀어 눈길을 사로잡은 앨범이 있었습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데뷔 앨범이 그것이었는데요.
전체적인 소리의 무게중심이 높고 소리의 해상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녹음이 잘 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할 정도로 듣기엔 나쁘지 않은 소리가 나는 겁니다. 뭐랄까요? 예전에 제가 초등학교 앞에서 먹었던 떡볶이의 느낌이랄까요? 위생 관념 같은 건 그런 개념조차 없었고, 더구나 초등학교 앞에서 50원어치 먹는 떡볶이에 좋은 재료가 들어갈리 만무하지만 너무 맛있어서 삼 시 세끼 그 떡볶이만 먹고 싶었고, 엄마에게 엄마는 왜 이런 떡볶이를 만들지 못하냐며 땡깡을 부리던 바로 그 맛.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앨범은 황병준 엔지니어가 마스터링 작업을 한 앨범이었습니다.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12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누구에게나 반려견은 소중한 존재겠지만 저는 그 녀석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직업도 바꾸고, 집도 새로 짓고 하면서 24시간을 같이 지냈던, 친자식에게도 그렇게는 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랑을 줬던 녀석이었죠. 너무나도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데 형님이 정미조의 [37년] 앨범 커버를 보내면서 이 앨범은 왜 이렇게 음질이 좋은지 알려달라고 하시더군요. "형님, 앨범 북클릿보면 황병준이라는 이름이 있죠? 있을 거예요. 그 양반이 이 앨범 작업했다는 소식 들었거든요. 그 황병준 대표가 그 이유예요."
음악의 소비자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전부입니다. 가수가 노래를 잘하면 녹음도 좋은 앨범이 되고, 가수의 노래가 좋지 않게 들리면 녹음을 잘못한 앨범이 되는 거죠. 정말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조차 세션 멤버가 누구인가 정도만 관심이 있을 뿐, 누가 녹음을 했는지, 어디서 녹음을 했는지, 어떤 엔지니어가 그 작업을 했는지는 관심도 없고,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의 생산자, 즉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가수는 앨범을 만드는 사람 중의 한 명,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비중이 큰 사람이긴 하지만 앨범 작업에 필요한 한 사람일 뿐, 음악의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음정, 박자는커녕 기본적인 발성도 안 되는 사람들이 다른 쪽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몇 장씩 앨범을 발표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실력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금이야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을 해서 이런 작업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이지만 예전처럼 아날로그 릴 테이프로 녹음했다면 수없이 많이 테이프를 잘랐다 붙였다 해야 하고, 음정이 안 맞는 가수들은 요즘의 오토튠이 아니라 손으로 테이프를 물리적으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음정을 맞춰주는 매뉴얼튠(오토튠에 빗댄 필자의 조어. 필자 주) 이펙터를 걸어야겠죠.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녹음과 믹싱을 같이 진행합니다. 우리가 녹음실 모니터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진이 믹싱 콘솔에 엔지니어가 앉아있는 그림이고, 그림에서처럼 녹음 단계에서 각 마이크의 볼륨을 조절해서 모니터링을 합니다. 즉 각각의 마이크에서 서로 다른 악기의 소리를 녹음하지만 그렇게 녹음된 소리는 믹싱 콘솔에서 볼륨을 조절해서 하나로 묶어서(mixing)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마스터링은 다릅니다. 마스터링은 마스터 테이프, 즉 음악 소비자가 실제로 듣는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스튜디오의 환경이나 시스템이 완전히 다릅니다. 모니터로 사용하는 스피커만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는데요. 제가 아는 스튜디오는 레코딩 모니터용으로는 대부분 Genelec이나 Kii, KRK, 야마하 등 일반적인 하이파이 오디오 동호인은 잘 모르는 브랜드의 스피커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는 B&W나 ATC, PMC, 심지어는 정전형 스피커인 Martin Logan 스피커를 사용하는 스튜디오도 있죠. 이렇듯 음악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장비로 그들의 귀에 어떻게 들릴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귀에 더 좋은 소리를 들려줄지 고민하는 이들이 마스터링 엔지니어입니다.
컴퓨터공학에서는 데이터 무결성에 관한 내용으로 "garbage in, garbage out."이러는 걸 배웁니다. 안 좋은 데이터가 들어와도 그대로 안 좋은 데이터가 출력된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녹음은 다릅니다. 아무리 녹음이 잘못되고, 아무리 믹싱이 이상해도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어느 정도 수정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어떤 가수가 있는데 그 가수의 목소리를 잘 들리게 하고 싶다면 믹싱 과정에서 그 가수 목소리의 볼륨을 높일 것이 아니라 마스터링에서 이퀄라이저로 그 가수 목소리 대역을 살짝 부스트시키고, 그 배음의 대역을 살짝 부스트시키는 것이 훨씬 듣기 좋게 들립니다. 이런 게 마스터링의 노하우인 것이죠.
또 하나. 위에서 말했다시피 녹음이나 믹싱은 잘못되어도 어느 정도 수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스터링은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바로 프레싱입니다. 더 이상 수정할 수 있는 단계가 없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마스터링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앨범은 전량 폐기처분해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마스터링 엔지니어의 몸값이 비싸기도 하고요.
아무리 녹음은 녹음 부스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녹음실 장비, 그리고 잔향의 길이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각 녹음실의 시그니처 소리가 있습니다. 믹싱 엔지니어에 따른 특성, 마스터링 엔지니어에 따른 소리의 차이 또한 존재하죠. 그 단적인 예가 BTS의 'Dynamite'였고요. 그들은 언제나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최고의 엔지니어와 일을 했지만 결과물은 달랐습니다. 그 엔지니어의 지향점이 달랐기 때문이겠죠.
단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런 차이도 생각하면서 듣는다면 음악 듣는 재미가 더 쏠쏠해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