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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Sep 04. 2020

English로 만나보는 K-Pop 트랙 5

국내 뮤직 트렌드

K-Pop 아티스트가 영어 가사로 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미학적 효과를 노린다기보다는 산업적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시장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영어가 아닌 음악을 도통 청취하려 하지 않는 탓이다(이건 음악만이 아닌 다른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만이 아니더라도 영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서 한국 외 시장에서 접근성을 확보하기가 좀 더 용이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K-Pop 음악계는 일본에 이어 좀 더 넓은 세계를 노리기 위한 일환으로 영어로 된 곡을 꾸준히 만들어 왔으며, 이것은 K-Pop의 위상이 과거보다 훨씬 널리 퍼진 현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앞서 발표된 한국어 곡을 영어로 번안하는 데 그쳤지만, 개중에는 그보다 좀 더 인상적인 결과물들도 존재했다.


글ㅣ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사진 출처ㅣ'Doctor Pepper' MV, @chaelincl 인스타그램, 'Eat You Up' MV


# 방탄소년단 'Dynamite'

'Dynamite'는 여러 가지 면에서 Justin Timberlake의 'CAN`T STOP THE FEELING!'을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명성의 정점을 찍고 있는 팝 아티스트가 기존의 앨범 작업과는 별도의 노선을 타는 싱글을 발표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디스코라는 동일한 음악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곡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오토튠과 K-Pop적 터치가 살짝 가미된 디스코는 언제나 기본 이상의 즐거움을 가져오는 좋은 재료며, 나는 방탄소년단이 야심을 거침없이 내세울 때보다 ('DNA' 때처럼) 힘을 살짝 뺀 여유로움을 선보이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엇보다 'Dynamite'는 'CAN`T STOP THE FEELING!'이 지니고 있었던 핵심적인 가치, "밝고 긍정적인, 그래서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팝"이라는 명제를 곡 내내 확고하게 밀고 나간다. 그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서, 방탄소년단이 넓은 계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증거다.


방탄소년단 'Dynamite'


# CL 'Doctor Pepper'

클라우드 랩(Cloud Rap)이 힙합 씬 유행의 중심에 있던 2015년 당시, 나는 'Doctor Pepper'가 그 트렌드를 영민하게 붙잡긴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진 못하는 아쉬운 싱글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CL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끊임없이 되뇌이며 만들어냈던 바이브는 그냥 "트렌드를 쫓은" 트랙의 일부로만 치부하기엔 좀 더 강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Diplo의 나른하면서도 위협적인 사운드 속에서 날카롭게 랩을 내뱉는 CL의 목소리는 그의 능력이 애매한 스왝을 부리는 '나쁜 기집애' 같은 트랙보다 더욱 어두운 분위기에도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준 첫 증거였다. CL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YG를 벗어난 지금, 그 포텐셜은 더 멋진 사운드를 타고 날아오를 가능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CL 'Doctor Pepper'

CL 'Hello Bitches'


# BoA 'Eat You Up'

"Best of Asia", "Bring on America!"라는 대문짝만한 역두문자, "MTV 아시아 어워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 "CNN과 파이낸셜 타임즈와 인터뷰를 했다"는 타이틀과 함께 'Eat You Up' 뮤직비디오 앞에 붙어 BoA의 커리어를 소개하는 1분여의 인트로는 K-Pop이 지금의 위상을 얻기 전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보여주는, 지금 와서 보면 조금은 민망하기도 한 기록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트로를 견디고 나면 덜컥거리는 비트와 톱질하듯이 울리는 중저음의 신시사이저에 맞춰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BoA를 만날 수 있다. BoA의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놓고 보아도 'Girls On Top'과 'Hurricane Venus' 못지않게 "강력한 BoA"의 모습을 멋지게 살려낸 'Eat You Up'은 BoA가 이런 콘셉트를 선보일 때의 매력 - 청명한 목소리와 절도가 넘치며 힘이 담긴 댄스, 그리고 파워풀한 전자음을 하나로 묶는다는 전략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트랙이다.


BoA 'Eat You Up'

BoA 'Energetic'

BoA 'I Did It For Love'


# NCT 127 'Regular'

K-Pop 아티스트가 만든 한국어 버전의 트랙을 영어로 번안한 곡은 큰 감흥을 가져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가사를 영어로 개사하는 것과 그것을 다시 녹음하는 데 드는 수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한국어 버전이 있는 이상 그것을 듣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곡을 영어로 듣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테니까.

그렇지만 때로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발화되는 노래를 들을 때 마치 그것이 "원래"의 곡처럼 느껴지는 드문 경우가 있고, NCT 127의 'Regular' 역시 이 드문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건 'Regular'가 NCT의 전체 커리어 중에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본격적인 라틴 느낌의 팝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벌스에서 코러스로 넘어가는 구간 등의 몇몇 포인트에서 영어 버전이 좀 더 매끄러운 연결부를 선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정 장르의 음악에는 특정한 언어가 어울린다"라는 너무 나간 주장을 펴고 싶지는 않다. 다만 NCT 127이 'Regular'를 만들면서 어떻게 영어를 음악적으로 더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하는 건 무리가 없을 것이다.


NCT 127 'Regular (English Ver.)'


# Amber Liu 'Borders'

사람이 갖는 생각의 많은 부분은 언어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것은 창작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돌 팝 음악계에서는 많은 외국인 아티스트가 활동하고 있는 중이지만 한국을 주 활동 무대로 삼는 많은 그룹들의 여건 상 대부분의 외국인 아티스트들은 한국어로 된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언어로 된 가사를 노래할 수 있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조금 더 다양해지는 것이 아닐까?

'Borders'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공한다. Amber Liu가 두 번째로 발표한 솔로곡에서, 그는 "Cause mom said I'd be crossing borders / Never be afraid even when you're cornered / Stand up straight fight your way"라고 차분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노래한다. Amber가 원래 쓰던 언어로 직접 쓴 가사는 그의 첫 솔로 앨범 [Beautiful]과도, 그의 전 그룹인 f(x)와도 다른 차분하고 쓸쓸한 사운드에 담겨 자신이 경험한 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풀어낸다. 팝 아티스트가 "자신"을 노래하고 있다고 듣는 이에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Borders'는 한국인이 쓰는 것과는 다른 언어로 그것을 성취해내고 있다. Amber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Borders' 이후 발표된 그의 솔로 작업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Amber Liu 'Borders'

Amber Liu 'White Noise'

Amber Liu 'Stay C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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