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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아메리카나, 말 그대로 미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Taylor Swift의 신보 [Midnights]가 발매되었습니다. 앨범 발매 하루 만에 2022년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며, 빌보드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 Top10을 모두 석권하는 대기록을 쓰며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죠. Taylor Swift의 팬들은 이전부터 'Taylor Swift is The Music Industry' (Taylor Swift가 곧 음악 산업이다)라는 말을 농담으로 해왔는데요. 이제는 농담이 아닌, 사실로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Midnights]는 열세 개의 정규 트랙, 그리고 새벽 세 시에 공개된 일곱 개의 트랙까지 더해 총 20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발표된 트랙들 모두 'Midnights'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잔잔한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죠. 평소 Taylor Swift는 팝과 포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티스트로 저명한데요. 이번 앨범은 새벽에 어울리는 드림팝이 주를 이루며, 지금까지 발매된 Taylor의 팝 앨범 중에서는 제일 정적인 분위기를 이룬다는 개인적인 느낌도 받습니다. 포크를 좋아했던 팬들도, 팝을 좋아했던 팬들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무드입니다.
Taylor Swift는 이번 앨범을 발매하기 전, 본인의 SNS에 한 장의 편지를 게시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Midnights]는 한밤중에 쓴 음악들의 모음집이며, 악몽과 달콤한 꿈들 사이를 오가며 헤쳐 나가는 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서성거렸던 바닥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악마들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밝혔죠. 파도치는 본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새벽에 쓰인 이 음악들에는 팝스타 Taylor Swift의 자조적인 면모, 사랑을 온전하게 지켜내려는 의지까지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새벽에 맞닥뜨리는 다양한 빛깔의 감정을 집약해놓은 앨범이죠.
그중에서도 리드 싱글인 'Anti-Hero'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Taylor Swift는 이 곡을 지금까지 만들었던 음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이자, 불안함에 대해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다뤄본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요. 그동안 Taylor Swift를 둘러싼 각종 루머와 가십거리들에 본인도 지친 듯, 'It's me, Hi, I'm the problem, It's me'(안녕, 나야, 바로 그 골칫거리)라고 외칩니다. 이어 'I'll stare directly at the sun, but never in the mirror'(태양은 똑바로 볼 수 있지만, 거울은 바라보지 못해)라며 자기혐오적인 면모를 드러내죠.
자조적인 가사와 맞물리게 연출한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직접 연출한 뮤직비디오에서는 체중계에 올라서는 Taylor의 모습, 거인 Taylor의 존재를 기겁하는 사람들, 재산 상속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는 장례식을 상상한 장면까지 연쇄적으로 다룹니다. 본인의 뒷담화가 일상처럼 소비되는 모습에 자조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요. 이 음악을 통해 팬들은 물론, 대중들까지 화려할 줄만 알았던 Taylor Swift의 우울한 이면을 짐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Taylor Swift의 음악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탁월한 작사 능력도 한몫합니다. 아름다운 은유로 사랑을 빗대어 표현한 Taylor 표 러브송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아왔죠. 현재 Taylor Swift는 배우 조 알윈과 6년째 공개 연애 중인데요. 조 알윈을 만난 이후로 줄곧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써오며 많은 호응을 얻었던 그가, 이번 [Midnights]에서도 다수의 러브송을 공개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사랑에 빠진 모습을 표현할 때 'Lavender Haze'라는 관용구를 사용했습니다. 싱그러운 라벤더향으로 가득 찬 안개의 몽롱한 분위기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분과 유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는 드라마 '매드맨'을 통해 알게 된 이 관용구를 키워드로 잡고, 그간 각종 루머와 전형적인 여성상(1950's sh**)을 원하는 미디어의 비난을 피해, 조 알윈과의 사랑(Lavender Haze)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담아냈습니다.
Taylor Swift의 신보가 공개도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던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Lana Del Rey와의 컬래버레이션 사실이 공개되었기 때문인데요. 두 사람이 함께 제작한 곡은 'Snow On The Beach'로, Taylor에 따르면 이 곡은 내가 사랑에 빠진 상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느낀 비현실적인 감정을 다뤘다고 합니다. Taylor가 의도했듯, Lana Del Rey의 보컬이 은은하게 깔리며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더욱 짙어지죠.
그러나 이 앨범 속 Taylor가 말하는 사랑은 비단 이성과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본인을 사랑하는 것 또한 사랑이니까요. 'You're On Your Own, Kid'에서는 불안정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알려주며,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Bejeweled'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너무 착한 여자애였지'라며 과거를 회상하다가도, '나는 내가 보석처럼 반짝인다고 믿을래'라고 선언합니다. 신데렐라를 패러디한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Taylor는 역경을 겪었지만, 곧 왕자님 없이도 반짝이는 그의 미래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추가로, 해당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세 자매는 밴드 HAIM의 멤버들이며, 이 세 자매와 Taylor 모두 왕자님을 원하는 것이 아닌 성과 권력만을 원하는 설정도 꽤 흥미롭습니다.)
이어 'Vigilante Shit'에서도 무례한 남성을 적대시하며,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여성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Taylor Swift이기에 이번 신보에서도 이런 행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렇듯 [Midnights]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던 Taylor Swift의 과거와 지금의 자신을, 그리고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서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동안 본인을 도넘게 조롱하던 이들을 비판하는 힘까지 갖춘 채로요. 자책감에 잠 못 이루던 밤들이 모여 Taylor Swift를 한층 성장시킨 서사를 어떻게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울감, 사랑의 두근거림으로 잠 못 이루는 밤들, 새로워질 내 모습에 설레는 날까지. 새벽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안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이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Taylor Swift를 통해 나날이 맞는 새벽을 좀 더 진귀하게 여기는 리스너들이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발매와 동시에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Taylor Swift의 열 번째 정규 앨범, [Midnights]는 바로 하단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Taylor Swift – Midnights (3am Edition)
이미지 출처 | Taylor Swift 공식 인스타그램 (@taylorswi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