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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Mar 20. 2020

윤상이 꿈꾸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미래

국내 음악 트렌드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는 뮤지션 윤상.

윤상과 윤상이 꿈꾸는 새로운 일렉트로닉 음악 세상을 소개합니다.


# 정의 불가능한 윤상의 음악 세계

아티스트 윤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별의 그늘' 같은 발라드로 기억하는 사람과 걸그룹 러블리즈의 프로듀서로 기억하는 사람의 거리는 윤상이라는 뮤지션을 정의하는데 극심한 혼란을 준다.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같은 탱고 장르나 힙합 뮤지션 Dok2가 피처링한 1Piece의 'Let`s Get It (Feat. Dok2)'까지 더하고, 2018년 역사적인 평양 공연 남측 예술단 음악 총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떠오른다면 그에 대한 정의를 포기하게 만든다.

윤상의 초창기 앨범이 대부분 미디를 사용한 가상악기의 소리라는 사실과 그가 고(故) 신해철과 함께 우리 대중음악사 희대의 명반 노 댄스의 멤버고, 모텟 같은 시대를 앞선 전위적인 전자음악 팀을 선보였으며,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날 위로하려거든'이 2015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을 수상한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그의 음악적 정체성은 어렴풋이나마 보일지 모르겠다.

윤상은 국내 대중음악계에 미디를 사용한, 전자음악을 본격적인 의미로 시도한 1세대 뮤지션이다. 멜로디를 만들고 사운드를 조율하고 믹스, 마스터 후반작업까지, 음악의 처음과 끝을 모두 책임지는 프로듀서라는 개념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첫 세대의 음악인이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윤상을 설명하는 건 난해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단순히 멜로디와 가사가 아니라 소리 하나까지 치밀하게 조율하는 프로듀서 개념은 윤상을 통해 완성됐다는 점이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국내외 모든 젊은 프로듀서들의 원형이 윤상에게서 발견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 윤상을 설명하기 위한 노래 5


'행복을 기다리며'

100만 장 이상 팔렸던 윤상의 데뷔 앨범 [윤상](1990) 수록곡이다.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 황치훈의 '추억속의 그대', 강수지 '보랏빛 향기', 김민우 '입영열차 안에서' 등 히트곡을 쏟아낸 천재 작곡가의 가수 데뷔라는 사실만으로 윤상의 앨범은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행복을 기다리며'는 스물셋 윤상의 소리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가 고스란히 담겼다. 신시사이저와 전자악기의 전면적인 활용뿐 아니라 시계 초침 등 다양한 일상 속 소리를 교묘하게 배치해 "소리를 가지고 노는" 윤상을 만날 수 있다.


'달리기'

윤상과 고(故) 신해철의 프로젝트 앨범 [노땐쓰-골든힛트-일집](1996)의 수록곡이다. 두 사람은 가지고 있던 전자악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합숙까지 하며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하고 의기투합해 이 앨범을 완성했다. [노땐쓰-골든힛트-일집]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명반을 얘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상업적으로는 다소 부진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달리기'는 만큼은 S.E.S., 옥상달빛 등이 리메이크하면서 재조명돼 꾸준히 리플레이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시티 팝과 유로팝 스타일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또 한 번 시대를 앞선 명곡으로 회자되는 중이다.


'편지를 씁니다'

버클리를 거쳐 NYC까지, 긴 유학 생활 도중 발표한 윤상의 정규 6집 [그땐 몰랐던 일들](2009)의 수록곡이다. 전자 음악에 대한 탐구가 정점에 올랐을 시기였던 만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험적이고 신선한 소리들이 발견되는 앨범이다. 수록곡 '편지를 씁니다'는 비트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시도 덕에 다소 난해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곡이다. 하지만 공간감에 대한 이해와 윤상 특유의 서정성이 더해져 듣는 재미는 무한대로 증폭되는 곡이기도 하다.


'날 위로하려거든'

윤상이 데뷔 후 처음으로 발표한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2014)은 단 한 곡으로 5년이라는 공백을 한 번에 날릴 만큼 탁월한 명곡이다. 이 곡은 정교하고 촘촘한 사운드와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까지 대중들이 윤상에게 기대하는 모든 걸 충족시키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구성 덕분에 3분 31초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대곡을 듣는 듯한 기분까지 들게 만드는 기대 이상의 놀라움까지 선사한다. 이듬해 한국 대중음악상 수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결과였다.


'Let`s Get It'

윤상이 프로듀싱 팀 1Piece의 이름으로 발표한 [Let`s Get It](2015)은 순도 100% EDM이다. 윤상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일 수도 있지만 윤상이 만든 곡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곡이다. EDM의 짜릿한 질주감을 위해 윤상이 정교하게 쌓아올린 사운드 레이어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애초 작정하고 춤을 추게 만든 곡이지만 감상용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곡이다.



# 음악적 상상력을 가진 이들에게 열린 시대 (Interview)

Q.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윤상입니다. 반갑습니다.


Q.여러 번 말씀을 해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 중학교 2학년 때 삼촌에게 클래식 기타를 받았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밴드를 했었고, 그때 만든 데모 테이프가 김현식 님에게 들어가 작곡가로 먼저 데뷔했죠. 전자 악기에 대한 관심은 더 어렸을 때부터 있었는데, 1987년에 처음 신시사이저라는 걸 사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후에 다른 신시사이저들을 하나씩 장만했죠. 그때 "이거 하나면 혼자 음악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Q.전자악기나 시퀀싱 작업을 선호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제가 처음 음악을 하던 시절, 많은 뮤지션들이 시퀀싱으로 전향하거나 병행하는 분위기였어요. 전 아주 조금 빨리 시작한 경우고요. 제 경우, 실은 연주자들이 모여서 정해진 시간에 끝내야 하는 작업 방식이 부담스러웠던 게 이유였던 것 같아요. 연주자들의 컨디션에 따라서 제가 만든 곡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원치 않았고요.

Q.전자음악과 함께 혼자 음악을 만든다는 개념이 시작된 것 같아요.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프로듀서의 시대가 열린 것 아닐까 싶은데요.

-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혼자 한다는 개념이 생기긴 한 것 같네요. 당시에 프로듀서라는 개념은 편곡자에 가까웠어요. 악보를 그려서 나눠주는 사람이었던 거죠. 연주자들이 편곡자의 악보를 받아 스튜디오에 모여서 연주를 하는 거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몰랐죠. 전자악기와 시퀀싱의 발전과 함께 뮤지션이 혼자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건 이런 의미에서 중요했던 것 같아요. 보컬을 제외한 최종 결과물까지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게 된 거죠.

Q.그런 작업 방식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것 같아요.

- 저 같은 경우에는 초창기에 리듬을 만들며 장점들을 많이 발견했어요. 드럼은 연주부터 녹음, 믹스까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작업이고 톤이나 정확도 면에서도 사람이 연주하는 것과 차이가 확연해요. 내 머릿속에 있는 리듬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단점이라면 혼자 하는 작업이니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뛰어넘는 걸 만들 수 없다는 점이겠고요. (웃음) 그래서 상상력이 더 중요해졌죠.

Q.일렉트로닉 음악, 전자음악이라는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라서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 사실 장르보다 사용되는 악기라고 이해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 1집 수록곡 '이별의 그늘'이나 '행복을 기다리며'도 실제 악기를 거의 쓰지 않았으니 전자 음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점점 사람이 연주하지 않은 게 티가 많이 나는 소리가 많아져서 그런 음악만을 전자음악,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Q.전자음악을 통해 음악을 만드는 게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것도 특징인 것 같아요.

-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을 만드는 도구가 편리해진 건, 전 음악 전체를 봤을 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음악을 하려면 먼저 악기 연주를 할 줄 알아야 했고, 그걸 위해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했잖아요. 일단 음악 세상에 진입을 해도 그 악기에 갇히는 경우가 더러 생기고요. 악기마다 고유의 소리들이 있으니까요. 전자악기는 그 진입장벽을 확 허물어버린 거죠. 이제 음악은 문학이 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펜만 쥐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잖아요. 그 안에서 신기한 아티스트들이 나오는 거죠. 리스너 입장에서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고요. 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는 건 그래서 멋진 것 같아요. 시대가 음악적 상상력을 가진 이들에게 열려있는 거죠. 물론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대중들이 하는 것이지만 말이죠.

Q.혼자의 힘으로, 자신만의 재능으로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형 뮤지션들을 위해 "디지털리언 믹스업"이라는 컴피티션을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어떤 지원자들이 오시길 기대하시나요?

- 사실 인디 뮤지션 민수나 수민 같은 친구들을 보면, 값비싼 렌털 전문 녹음실 밖이나 홈리코딩 방식으로 만든 음악도 충분한 완성도를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잖아요. 특별히 녹음실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걸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순수하게 음악을 위해,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친구들이 많이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 윤상's Pick나를 흔든 일렉트로닉 앨범


Kraftwerk

1970년대 초에 독일에서 결성된 팀으로 아직까지 활동 중인 팀입니다. 전자악기로만 구성된 최초의 팀으로, 데뷔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오고 있죠. 이제는 레전드 급 뮤지션에 속하면서도 3D 공연 등 늘 최신 기법들을 과감하게 선보이는 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2013년, 2019년 두 번 공연을 했어요.


Kraftwerk [Autobahn (Remastered)]


Visage

1978년 영국에서 Steve Strange가 결성한 팀입니다. 전자음악계의 르네상스라고 부를 시대가 있다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들어도,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음악뿐 아니라 패션이나 메이크업 등도 파격적이라 후대에 여러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Visage [Visage]


Yazoo

Yazoo는 1982년 영국에서 프로듀서 Vince Clarke와 보컬 Alison Moyet가 결성한 혼성 듀오입니다. Vince Clarke는 Depeche Mode의 원년 멤버이기도 해요. 단 두 장의 앨범만 발표하고 해체됐지만 신시사이저가 차가운 악기라는 편견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신스팝 역사의 중요한 팀입니다. 멤버 두 사람은 현재까지 각자 밴드 Erasure와 솔로로 활동하고 있어요.


Yazoo [The Best Of]


deadmau5

deadmau5는 80~90년대의 아이디어들을 21세기형으로 리모델링한 전자음악가입니다. 인기 DJ고 그의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 음악이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어서 그의 음악까지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지만, 분명한 건 트렌드를 좇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과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며 치열하게 완성한 사운드는 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죠.


deadmau5 [while(1<2)]


Oneohtrix Point Never

국내에서 인지도는 다소 낮지만 일렉트로닉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뮤지션입니다. Daniel Lopatin이라는 본명으로도 활동 중이기도 하지요. 대중적인 음악부터 극도로 실험적인 음악까지 스펙트럼이 상당한데요. 영화 "굿타임 (2017)", "언컷 젬스 (2019) " 등에서 OST를 맡으며 일렉트로닉 스코어링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Daniel Lopatin [Uncut Gem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디지털리언 믹스업 Vol.2" 소개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의 프런티어 뮤지션 윤상이 신예 일렉트로닉 뮤지션 발굴 및 지원을 위해 시작한 컴피티션 프로젝트 "디지털리언 믹스업"은 일렉트로닉 장르의 저변 확대와 일렉트로닉 스타 뮤지션 탄생을 목표로 합니다.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만 30세 이하 일렉트로닉 장르 뮤지션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미디만을 사용해 완성한 트랙으로, 가창을 포함한 곡으로 지원하실 수 있습니다. (* 가창자는 지원팀에 포함되지 않아도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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