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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Apr 03. 2020

십대들을 위한, 십대들에 의한

국내 뮤직 트렌드

틴 팝(Teen Pop)은 보통 "십대들을 위한 팝"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는 으레 "상업적으로 기획된" "강렬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을 인정한다고 해도, 틴 팝에 내재한 에너지와 메시지는 때로 발라드나 록처럼 다른 "양식화된" 대중음악보다 훨씬 강력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그것은 틴 팝에 담겨 있는 치기 어린 정신이 다른 어떤 대중음악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시점의 한국의 아이돌 팝에 대해 "십대들만 즐기는" 음악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 됐다. 하지만 십대 멤버들에 의해 노래되는 경우가 많은 아이돌 팝은 여전히 다른 누구도 아닌 십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지점을 갖추고 있다. 아이돌 팝 역사 속에 남은 네 개의 곡을 통해서, 그 지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글ㅣ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 H.O.T.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High-five Of Teenagers"라는 그룹의 이름이 증명하듯이 H.O.T.는 십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트랙을 이들의 활동 기간 내내 선보였는데, 이들이 택한 방식은 주로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방식이었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에서 90년대 힙합의 둔탁한 비트 위에 학교 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담은 가사를 얹은 것은 이러한 전략을 가장 잘 드러낸 예시로, 이후 H.O.T.는 '열맞춰!'와 '아이야! (I Yah!)' 등의 트랙에서도 같은 방식의 공격적인 힙합 타이틀곡을 내놓는다.

지금 다시 들어 보면 이들 트랙은 (비록 'Candy'나 '빛 (Hope)' 같은 "완충제" 역할을 하는 트랙이 있었다 해도) 꽤 어두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는 "상업적인 아이돌 음악"이란 꼬리표에 맞서 "음악적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였을 수도, 혹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엄혹했던 90년대 당시 10대들의 삶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온전히 성공적인 시도라고만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내겐 도움이 안 돼"라는 외침이나 "그들은 나를 짓밟았어 /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갔어"라는 음울한 멜로디의 코러스에서 나는 십대들이 느낄 법한 우울의 심상을 잡아내고 있는 편린을 발견한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도.


H.O.T. -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H.O.T. - 열맞춰! (Line Up!)

H.O.T. - 아이야! (I yah!)


# 방탄소년단 'No More Dream'

2010년대의 아이돌 팝은 "사회 비판"이라는 강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진정성"을 증명하지 않아도, 아이돌 팝은 이미 한국 대중음악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대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다른 어떤 SM 그룹보다도 H.O.T.를 가장 직접적으로 계승한 듯한 초기 방탄소년단의 행보는 신선한 것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십대의 입장에서 사회 모순에 대한 치기 어린 비판을 담은 힙합을 선보였고, 그것은 데뷔곡인 'No More Dream'을 비롯해 'N.O', '등골브레이커' 등의 곡에서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비판의 방향은 조금 달라졌다. "열 맞춰 낙오하면 버림받고"('열맞춰!')처럼 폭압적인 분위기에 대해 반발하던 분노는 "But 사실은 I dun have / any big dreams"처럼 따르고 싶은 가치를 찾지 못하는 혼란에 대한 분노로 변화했다. "공수래 공수거 / 거품처럼 사그러질 것들"처럼 일종의 "거대 담론"을 추구하던 가사는 "철 좀 들어 제발 좀 너 입만 / 살아가지고 임마 유리멘탈 boy"처럼 보다 친근하게 와 닿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방탄소년단이 H.O.T.를 계승하는 방식은, 90년대에서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십대들이 느끼는 억압의 양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 - No More Dream

방탄소년단 - N.O

방탄소년단 - 등골브레이커


# 보아 'ID; Peace B'

십대들은 새로움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것이 기술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런 점에서 보아의 데뷔곡 'ID; Peace B'는 틴 팝이 사회에 퍼지고 있는 신기술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에 대한 교과서와도 같은 선례를 제시한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고 대중화될 무렵, 십대들이 가졌을 법한 기대감은 "그 속에는 나와 같은 / 꿈을 꾸는 친구가 있죠"와 같은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ID; Peace B'의 가사가 공익광고 같은 구석이 있다는 건 숨길 수 없다. 하지만 보아가 날렵하게 웅장한 신시사이저 리프에 맞춰 "난 내 세상 있죠 / Peace B is my network ID"라고 힘차게 노래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인터넷 세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넘어서 십대들이 상상하는 자유를 직접적으로 소망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 점에서 'ID; Peace B'는 새로움이란 가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십대의 내면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보아가 '아틀란티스 소녀'나 'Girls On Top' 같은 이후의 노래들에서 이러한 가치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건 'ID; Peace B'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흐름이었을 것이다.


보아 - ID; Peace B

보아 - 아틀란티스 소녀

보아 - Girls On Top


# 여자친구 '시간을 달려서'

아이돌 그룹 중에서 "만남과 헤어짐"이란 테마를 가장 꾸준히 다루고 있는 팀은 '오늘부터 우리는'에서 '교차로'에 이르기까지 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 주제에 계속해서 집중해 왔던 여자친구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이들의 가장 인상 깊은 곡 중 하나가 '시간을 달려서'라는 건 십대 시절이 유독 만남과 헤어짐이란 경험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시기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처 말하지 못했어 / 다만 너를 좋아했어"라는 표현부터 교복을 입고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한데 모이는 뮤직비디오까지, '시간을 달려서'는 십대 때 경험하고 있는 만남과 헤어짐의 설렘과 안타까움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추억담"으로 회상되기만 하는 저 너머의 기억이 아니라는 점이 이 곡이 지닌 진정한 힘일 것이다. 여자친구의 노래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십대들이 느끼고 있는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감각을, 그리고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망을("시간을 달려서 /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 거친 세상 속에서 손을 잡아줄게") 다루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자라 버린 사람의 과거가 아닌, 자라고 있는 사람의 현재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여자친구는 만남과 헤어짐이 안타까움뿐만이 아닌 성장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자친구 - 시간을 달려서

여자친구 - 오늘부터 우리는

여자친구 -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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