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여름 Apr 09. 2020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만의 보석

그것이 가끔은 단점처럼 보일지라도


 바쁜 월요일 아침, 정신없이 일을 하다 잠시 틈을 내 휴대폰을 확인했다. 빨갛고 작은 알림이 떠 꾹 눌러보니, 2년전 그만 둔 직장의 후배가 보낸 메세지가 와 있었다. 그녀는 귀여운 말과 함께 꽤 오래전에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그 사진은 4년 전 봄, 전 직장에서 만난 후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20대 후반이거나 30대 초반이었던 우리는 자주 모여 놀았다. 후배들은 정규직이 되지 못한 불안을, 나는 낯선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안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축복이었다. 나는 나머지 넷보다 5개월쯤 먼저 들어온 선배랍시고 자주 약속을 만들어 여기저기 놀러다니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 그때는 철이 없었거나 순수했거나 둘 중 하나였으리라.


 그런 좋은 순간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사진 속의 다섯은 모두 봄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본 나는 아직 영하의 날씨 덕에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날들임에도 온 마음에 꽃이 피는 것을 느꼈다. 그렇구나, 내가 부렸던 오지랖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구나.


 어른이 되고 조직에 적응해 나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선 긋는 일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주 질투를 했고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으려 애쓴 적도 있었다. 사람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 내가 쓸데없이 정이 많아서 선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치부했고, 떠다니는 소문과 말도 안되는 뒷담화가 불편하면서도 그저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했다. 나의 장점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재미있게 놀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데, 이런 장점이 조직생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점이라고, 조금은 섣불리 결론지었던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직을 하고서야, 비교대상이 생기고 나서야 꼭 그런건 아니란걸 알았지만 한번 움츠러든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나의 장점을 끊임없이 칭찬해 주어도 마음 속 한구석은 항상 불안했다. '앞에서는 저렇게 말해도 뒤에가서는 뒷담화를 할지 몰라'라던가, '내가 너무 나대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들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에서 친한 동료들에게도 선을 긋거나, '어차피 언젠가 떠날 곳'이라고 정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서 좋았던 것들은 모두 누군가와 놀고, 먹고, 마셨던 날들이다. 전 직장 동료가 보내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마음안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철이 없었기 때문이든, 순수했기 때문이든, 나는 그 순간 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었고 지금도 모두 연락을 이어가며 만나고 있다. 모두가 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끊어지지 않고 여전히 이어져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정말 소중한 보석을 갖고 있었음에도, 남들이 '그 보석은 쓸모없다'고 하는 말 때문에 그 보석을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게 아닐까? 돌이켜 보면 그들이 지어낸 이야기는 그저 질투에서 나온 산물일 뿐, 정말 회사에 도움이 되거나 생산적인 지적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경험이 부족했고, 질투와 조언을 구분하는 법을 몰랐기에 쉽게 흔들리고 지쳐갔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그게 아닐수도 있다는 의심이 싹텄고, 이제는 조금 확신이 선다.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미리 선긋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지금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두 친구에게 올해 안에 제주도에 놀러 가자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서 친해지고, 그래서 그 신뢰가 일로 이어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작지만 꽤 괜찮은 내 장점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하는 나도 좋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일상이 즐겁고 행복하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생각없이 던진말에 자신의 장점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분명 모두가 한두개씩의 보석은 갖고 태어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를 했다. 요즘 유행이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