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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Jun 11. 2024

미뤄두었던 철학 강의를 들었다.

EBS ‘강신주의 장자수업’ 후기


강신주 박사님을 처음 알게 된건 20대 후반이었다. 철학을 접해본 적 없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남겨주고 홀연히 사라진(?) 철학자. 순진한 천둥벌거숭이였던 나는 그의 이야기에 크게 놀라기도, 또 공감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균열을 낸 그의 강의는 충격이면서 동시에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보게 하는 도구였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는건 유튜브를 통해 알았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건장한 외형과는 다른, ‘건강이 안 좋으셨나’ 걱정될만큼 마른 모습. 그리고 장자강의를 한단다. 몇분짜리 짧은 샘플 영상을 보며 빨리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더 정확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긴 강의를 각잡고 들기 어려웠다. 몇 개월이나 미뤄두었던 그 과업을 이제야 조용히, 한달 4,900원짜리 e-클래스 전용 구독권을 구입하며 시작한다. 


출처 : ebs 홈페이지 


기원전 4세기를 살던 장자의 정신은 철학자의 입을 통해 오늘날에 맞게 해석돼 흘러나왔다. 인간의 욕망이 달라지지 않아서 일까, 세기를 몇십번이나 거슬러 올라간 장자의 말은 지금의 나를 꾸짖는다. 인재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라는 말, 스스로 노예로 살지 말라는 말, 작은시야에 매몰되지 말라는 말, 누가 뭐래도 당신의 길을 가라는 말…. 강의를 듣는 내내 아프다. 


장자를 처음 읽은 20대에는 그의 말을 추상적인 판타지로 여겼다. ‘와, 정말 좋은 내용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양철학을 공부한다는 허영만 채웠지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철학은 힘이 없다. 밥이 중요하지 철학이 중요한가. 아는 것과 현실은 따로 놀았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나를 후회하는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파릇파릇한 젊음이 지혜로우면 얼마나 지혜롭단 말인가. 그 허영이, 소금에 절이기 전의 배추같은 뻣뻣함이 오히려 예쁜 나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슬쩍, 장자의 말에 밑줄을 치며 곰곰이 생각에 빠진다. 그 중 가장 나를 고민하게 한건 인재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는 ‘거목이야기’였다.


우리는 왜 인재가 되어서는 안되는가? 


출처 : ebs 유튜브 캡쳐



우리는 세상이, 혹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쓴다. 인정받기 위해서, 나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마음속으로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왜 인재가 되지 말라고 하는가? 철학자는 말한다. 인재가 되는 순간, 사회와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자라게 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랄 수 없다고. 20대 때 나는 그에게서 같은 말을 들은적이 있다. 일면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대기업이나 좋은 직장에 가고 싶었다. 그러면 내 가치가 늘고 승승장구하며, 돈도 많이 벌거라 생각했으니까. 좋은 회사를 간 다음에는 무리하면서까지 상사에게 잘보이고, 눈치보고, 그들의 요구에 맞게 일을 해 나갔다. 그때의 성실함을 후회하는건 아니지만, 내 성실함의 방향이 꼭 회사여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진심이 아니면서도 아부했던 기억, 어떻게든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던 기억들이 이제와서 나를 조금 비참하게 만든다. 


회사에 충성했지만 남은게 없다. 사회생활을 하며 시간이 흐르자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이 노력을 회사에 쏟아부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하지만 평가를 잘 받으리라는, 혹은 승진을 하게 될거라는 기대감으로 그 레일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하니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냥 묵묵히 열심히 했다. 나쁜건 아니었지만, 그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채운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이게 그렇게까지, 내 인생을 다 걸만큼 중요할까?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듣는 철학자의 말은 깊이 숙성된, 굴곡진 감정을 담은 트로트처럼 가슴을 문지른다. 이런 마음까지 더해서 퇴사를 했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그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48강이나 되는 꽤 긴 그의 강의를 하나하나 듣고 난 후 내린 결론은 ‘조금 더 용기를 내자’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온 강박과 허영을 버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걸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포기의 주된 내용은 ‘남들의 시선’과 ‘사나운 욕심’이다. 흔하게 널려 있는 저 단어들이 내 안에서 자주 변주를 이루고, 또 이런저런 마음들과 싸우며 자리를 잡아간다. 실은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반복했다. 20대 후반에도 똑같이 고민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것들이 촉촉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레옥잠처럼 머리위를 떠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오며, 그리고 행동으로 까지 나아가며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공부는 쉽지만 나의 삶에 녹이는건 이렇게나 어렵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봐야지. 돌다리를 두드리며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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