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부모는 있어도 나쁜 친구는 없어

슬아 엄마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by 김홍열
슬아


다해야,


어제 유치원에서 슬아가 친구들하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 다치거나 상처가 난 것은 아니라 하니 다행이네. 싸우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피할 수가 없어서 잘 싸우거나 싸우고 나서 정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오늘은 싸움, 넓게 이야기하면 갈등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갈등은 인간 사회의 기본 속성 중 하나야.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기 시작한 이후로 갈등과 협조는 늘 있어 왔어. 크게 보면 갈등은 두 가지 이유에서 생겨. 하나는 제한된 자원 때문이야.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적 욕구를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자원이 항상 예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당연히 갈등할 수밖에 없지.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이 만든 사회제도에 있어. 구체적으로 국가, 법, 신분, 계급 같은 것들이야. 사회제도는 그 제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 주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더 많은 결정력을 소유하게 되고 자신의 의도나 욕망에 따라 시스템을 운영하려고 해. 여기에서 갈등이 생겨요.


갈등은 때로는 폭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협조를 통해 해결되거나 완화되기도 해.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는 것을 혁명이나 변혁이라고 하고 완화되는 것을 개혁이라고 하지. 또 때로는 갈등이 아주 미미하거나 거의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유지되는 경우도 있어.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가 그런 시기라고 볼 수 있어. 물론 중세 안에서도 이런저런 사건들은 많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비교적 조용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혁명이나 개혁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어떤 사회적 긴장 상태가 계속 정점을 향해 치달리고 있을 때 사회 구성원들의 역사적 경험, 사회적 협력 정도, 긴장의 농도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 갈등을 해결해 본 역사적 경험이 없으면 많은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 바스티유 감옥을 깨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한 프랑스혁명이 대표적 사례야. 이런 극단적 선택은 계속 사회적 갈등으로 연결되면서 많은 희생을 낳게 돼요. 현재 프랑스가 관용의 나라로 이해되고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거야


만약 사회적 타협의 경험이 있거나 중재의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면 희생을 줄이고 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갈등 양 주체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타협이나 중재의 수용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만나다 보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합리적 수준에서 타협 할 수 있어.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 시스템은 이런 메커니즘의 하나야. 노동조합도 그중 하나고. 언론의 주요 역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어. 사회 제도 여기저기에 그런 장치들이 되어 있어.


근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객관적 인정이야. 감정적으로야 용납이 안 되지만 이성적으로 준비하고 대화해야 돼. 한번 감정에 휩쓸리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거나 자신만 힘들어져. 격한 감정에 오래 갇혀 있으면 문제를 선과 악의 싸움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을 선,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최종적으로 문제 해결도 못 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말아. 최악의 경우지. 자신의 생각, 이념, 요구사항들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상대방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말살되어야 할 악이 되는 거야. 이러면 안 돼요. 상대방이 악이 되는 순간 너도 동시에 상대방에 의해 악이 되는 거야.


이제 정리해 볼까. 슬아가 어제 친구들하고 싸웠다고 했지. 슬아가 친구들하고 싸우고 왔을 때 우선 그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나서 조금 진정되면 천천히 싸움의 원인을 물어봐. 그리고 부드럽게 말해. “ 아, 그래서 싸웠구나. 그럴 수 있겠네. 근데 이제 같은 이유로 다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 싸움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슬아가 알아듣게 슬아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 다음 갈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차분하게 이야기해 줘.


그리고 슬아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어. 슬아 편을 들어준답시고 슬아와 싸운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쁜 놈, 나쁜 친구라고 하면 안 돼. 나쁜 친구는 없고 있다면 나쁜 부모가 있는 거야. “ 우리 자식은 착한데 친구를 잘 못 만나서...." 이런 부모가 되면 안 돼. 부모가 이런 이야기를 노상 하고 다니면 그 자식은 부모를 잘못 만난 거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알려줘야지. 증오나 욕을 가르쳐서는 안 돼. 너도 경험해 봤겠지만 성장하면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돼. 갈등 원인의 반은 자신한테 있는 거야. 갈등은 불가피하니까 중요한 것은 잘 해결하는 거야. 그래야 상대방을 계속 만나고 때로는 더 사이가 좋아지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새 학기라 조금 바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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