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선거에 떨어진 슬아에게

슬아 엄마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by 김홍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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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야,


슬아가 유치원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우 안타깝네. 한동안 풀이 죽어 있었다는 말에 나도 속이 좀 상하더라고. 그래도 금방 잊혀질 거야. 슬아 성격이 좋아서. 며칠 지나고 나서 슬아하고 이야기를 해봐. 우선은 슬아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천천히 다음 이야기를 해봐.


“네가 반장을 하고 싶어 하는 만큼 다른 아이들도 하고 싶어 하고, 네가 반장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반장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거야 “


조금씩 납득을 하면 슬아가 알아듣게 쉬운 언어로 반장의 의미를 조곤조곤 알려줘. 중요한 것은 반장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주는 거야. 반장, 회장, 대표는 공부도 잘하고 다른 일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고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교사에게 지명받지 못하는 아이는 열등한 아이라는 인식은 정말 위험해. 아직도 우리 사회가 리더에 대한 선망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아이들에게까지 전염되어 있지만 이런 편견이 오래 가면 안돼. 편견이 확대되면 부질없는 지도자 대망론으로 연결되고 민주주의의 약화로 연결돼.


" 나는 못해. 너도 못하고. 우리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해 "


이런 표현과 사고방식을 심하게 말하면 노예근성이라고 할 수 있어. 노예근성이 지속되면 노예적 삶을 살 가능성이 많아져. 지금은 이런 표현을 안 쓰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 남자는 하늘이야 " 이런 표현이 참 많았어요. 집안에는 가장이 있고 모두 그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질서가 잡힌다고 믿었던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어. 아버지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어도 다들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거야. 가정 폭력은 부부싸움이나 자녀 훈계를 위한 사랑의 매로 인정받는 거지.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책임이 중요할 수는 있지만 책임이 중요하다고 해서 폭력이나 무질서가 용납돼서는 안 돼요. 자녀 동반 자살은 이런 무질서의 대표적 사례야. 가장의 결정이 절대적이라 가장 스스로 믿고 있고 가족 구성원 모두 부지불식간에 그 생각에 동의한 거지.


리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후진 사회야. 이건 분명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수많은 사례가 있어. 리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서로 리더가 되기 위해서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 흑색선전, 여론 조작, 상대 후보 매수 등 다양한 방법의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갖고 싶어 해. 일단 당선되면 불법은 합법이 되고 유권자는 다시 누군가를 뽑아야만 되는 투표기계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거지. 자녀 동반자살과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야.


리더십이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야. 카리스마도 아니고 탁월한 업적도 아니야. 리더십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운영될 때 인정받을 수 있고 인정받아야 해. 공정하게 선출되고 약속된 임기 안에 최선을 다해서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하고, 임기가 끝나면 바로 생업에 종사해야 되고.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은 쉽지 않아요. 매우 힘들 수 있어. 그러나 힘들더라도 어릴 때부터 알려줘야 해요. 아이들의 작은 모임에서부터 조금씩 연습을 하는 것이 좋아.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조금씩 연습해야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게 돼요.


그러나 이런 사회적, 정치적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더십에 대한 본질적 이해야. 가장 중요한 리더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리더십이야.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리더십의 본질에 가장 가까워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리드하지 않으면 누가 리드를 할까. 부모가 평생 해줄까. 신이 해줄까. 이 사회의 정치 지도자들이 리드를 해줄까. 아무도 해줄 수 없어. 자신은 자신 스스로가 사랑을 갖고 리드해야 돼.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가 되어야 해.


우리 모두는 다 자기 삶의 반장, 회장, 대표이고 그런 대표들이 모여 일시적 대표를 선출해 심부름을 시키는 거야.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일들은 많아. 능력과 적성을 감안한 다음,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또는 자발적으로 어떤 일의 책임을 일시적으로 맡을 수도 있는 거지. 또는 그 책임 맡은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고. 우리 모두가 서로 도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전보다 더 좋아진다면 서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한 거야. 그런 사람들을 리더라 하는 거야.


나는 네게 좀 진지한 언어로 표현했지만 너는 슬아에게 쉬운 언어로 자주 이야기를 해줘. 슬아가 어떻게 살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사람은 슬아에게 달려 있다고, 슬아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슬아의 리더십이라고.


내주 다시 보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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