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아 엄마에게 보내는 일곱 번째 편지
다해야,
슬아가 유치원에서 상장 받아왔다는 이야기 들었다.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잘 지낸다고 받은 상이라고 했지. 축하한다. 매우 대견스럽겠네. 넌 슬아가 늘 아기 같다고 걱정했잖아. 유치원에 보내야 할 나이는 맞는 데 적응을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고 했지. 엄마랑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해서 걱정되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걱정하고. 주변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안심하지 못하고 불안해했지. 슬아는 또래의 다른 아이보다 더 어리고 자립심이 부족해 보인다고 걱정이 많았지.
그래, 충분히 이해해.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보편적 심성이니까 쉽게 동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슬아를 위해서는 어느 순간부터 네 생각을 바꿔야 해. 유치원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이제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것이고 슬아는 그 세계에 조금씩 적응해야 돼. 그리고 슬아를 포함해 대부분의 아이가 잘 적응해. 아이들은 친구들과 잘 놀고 때로는 다투면서 성장하는 거야. 문제는 부모야.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데 부모들만 걱정하는 거지. 부모가 자신의 관점에서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거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 봐. 유치원 선생이나 초등학교 교사 중 많은 사람이 너와 같은 학부모일 거야. 그들은 오랜 기간 아이들을 교육해 왔어. 집에서 하던 행동과 학교에서 해야 할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어. 시기마다 배워야 할 것들이 있어서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알려줘야 할 것들을 분명히 알려주는 좋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 교사들에게 자식을 맡기는 거야. 충분히 믿어도 되지. 오랜 경험과 직업적 소명 의식으로 아이들을 충분히 잘 키울 수 있어. 다시 반복하지만, 문제는 부모야.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는데 부모의 시선은 아이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어. 아이 성장만큼 부모의 시선 역시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그러나 이런 현상은 사실 부모 자식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 지금 그 상태를 보고 상대방을 이해해야 하는데 보통 옛날 모습을 먼저 떠올려. 오래전 봤던 모습을 먼저 기억해 내고 그 상태에서 출발하는 거야. 예를 하나 들어 볼까. 조금 거창하지만 잘 들어 봐.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한복음 6장 41-43)
위 상황은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에게 구원과 평강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중 일어난 일이야. 예수가 고향 근처에 갈 일이 있어 그곳에서 메시지를 전파하던 중에 예수의 메시지를 듣던 사람들 중 예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 거지.
“ 무식한 목수의 아들 주제에 아는 척하기는 “
이런 뉘앙스야. 예수의 지금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예수의 모습이 더 부각된 거지. 무식한 목수의 아들은 무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내포되어 있어. 예수의 어린 시절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의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이지만, 예수를 아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수용하기 힘들어. 그래서 성경에 “ 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고 한 거야
예수님 비유가 좀 과한 것 같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 것이라고 믿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보라는 거야. 너는 멈춰있고 아이만 성장하면 안 되잖아. 너와 네 아이를 위해서 네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해야 돼. 돈에 집착하면 사는 게 피곤해지고 아이에게 집착하면 네 인생이 피곤해져요. 돌같이 돈을 여기듯이 아이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해요. 그게 사실상 아이를 위하는 길이야. 아이는 아이들대로 잘 자라고 있어. 대부분 어릴 때 부모의 충고를 듣기 싫어하지. 다들 잔소리라고 생각해. 부모가 나를 너무 어린아이로 여기는 것이 싫었던 거야. 그게 듣기 싫었으면 이제 네 아이한테는 하지 말아야 해. 아이한테 좋은 이야기랍시고 해줬는데 아이가 싫어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
하고 짜증을 내지.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안 돼. 너도 키웠지만 학교, 교회, 지역 공동체, 사회, 국가 모두가 함께 키운 거야. 아이를 위해서 다른 후견인들의 시선과 네 시선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아. 마음속으로는 늘 어린아이지만 실제 대할 때는 달라야 해.
물론, 너는 잘할 거야. 잘하고 있고. 오늘 여기까지 하자. 유치원 잘 다니고 잘 성장하도록 늘 기도 하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