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아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다해야,
저번 가족 모임 때 네가 슬아를 혼내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적이 있다. 슬아가 아빠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엄마인 네가 한마디 한 거지.
“ 어른들에게는 존댓말을 쓰는 거야, 알았지 “
하면서 슬아에게 이런저런 존댓말 용례를 알려주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려 존댓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주고 싶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네가 더 이상 슬아에게 존댓말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네가 내 의견에 동의해도 좋고, 반대해도 상관없어. 이건 내 의견이니까 다 들어보고 판단을 해.
내 생각에 언어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상호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봐.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내용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면 언어의 사명이 완성되는 거야. 상대방에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거지. 그것이 언어의 일차 목적이자 최종 목적이야. 원래 언어의 시작은 고함이나 함성 또는 비명이었을 거야. 동물들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발음이 정교화되면서 구별되기 시작한 거지. 호랑이와 곰을 구별하고 위험하다와 주의하라를 구분하고 아픔과 굶주림을 다른 언어로 구별해서 표현하기 시작한 거지. 결국 의사소통이 되면 소통을 매개하는 모든 것을 언어라고 할 수가 있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이런 원시적 언어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매우 평등한 언어 구조를 갖고 있을 거야. 예를 들어 주체가 있고 그 주체의 의지나 욕망이 표현되면 그걸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거지. 어린아이의 예를 들면 아이가 ‘맘마’ 하면 아이는 그 한마디로 자신의 먹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발설한 거야. 굳이 복잡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그러나 사람들은 언어에 사회적 관계를 포함시켰어. 언어가 단순히 욕구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까지 포함해서 표현되기 시작한 거야. ‘나는’ 이 아니라 ‘저는’ 이렇게 시작되어야 하는 경우를 만든 거야. 상대방에 대한 존경 또는 복종이 내포되어 있는 거지. 즉 언어 이전에 사회적 관계가 우리의 의식을 먼저 규정하는 거야. 내가 아니라 관계가 우선시되는 거지.
문제가 관계 자체가 아니고 어떤 관계이냐 하는 거야. 달리 말하면 내가 먼저 있고 관계가 형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관계가 먼저 있고 그 관계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 어려서부터 가족, 가문에 대해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아이는 가족을 위해 출세를 해야 하고 가문을 일으켜야 하고 집안 어른에 대해 항상 예의를 갖추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게 돼. 이런 경향은 주로 농업에 기반한 봉건제 동양 사회에서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어. 동아시아 삼국이 다 그렇고 그중 특히 우리 말과 글에 강하게 남아있어. 한글 창제 당시에 사회적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거지. 한국은 최근까지도 전근대적 생활양식을 유지했고 현재까지도 그 유습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어.
나는 가족 가문을 중요시하는 경향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이것은 중요한 사회문화적 이념이야. 우리가 흔히 보수주의라고 할 때 그 보수주의의 주요 내용 중의 하나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거야. 문제는 보수주의, 진보주의 모두 개인의 자발적 선택으로 주장될 때 의미가 있다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관계를 계속 주입하다 보면 아이는 분별력이 생기기도 전에 자신의 주체성보다는 가족, 가문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돼. 이건 문제라고 생각해.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책임지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존재가 외부적 조건에 의해 그 가능성을 상실당한다면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지.
좀 멀리 갔는데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자. 아이에게 존댓말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예의를 가리켜 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회적 관계를 강요하는 거야.
“어른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하고 꼭 존댓말을 써야 해”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기계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그런 아이들을 주변에서는 예의 바르다고 칭찬하는 거지. 그러나 ‘민주적으로’ 말하자면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거야. 남이 먼저 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 있는 거야. 물론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게 문제지. 자, 이제 정리하자. 슬아가 이웃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할 거야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의 경어에 익숙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 그러나 적어도 집에서는 편하게 대화를 하도록 해. 집에서 만큼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네가 도와줘.
난 내 아이들에게 한 번도 경어 사용을 강요한 적이 없어. 지금도 아이들하고 서로 편하게 소통해. 친구 같아서 좋아. 그렇다고 아이들이 무례하지는 않아. 또 타인과의 대화 시에도 예의를 잘 지켜. 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웠거든. 최소한 집에서만큼은 아이들이 편하게 의사소통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여기까지다. 내 생각은. 다시 연락 하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