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Mar 21. 2016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은 알파고에서 시작되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세돌 프로기사가 인공지능 알파고에 한판 두 판 지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공지능에 연속 3연패를 당한 날 언론들은 절규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종말이 생각보다 가깝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끝났다.”


3연패 후 가까스로 1승을 하고 나니 종말의 시그널이 희미해지고 다시 인간 중심의 평화로운 세계가 이어질 것 같았다. 


“ 인공지능 역시 약점이 있다.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어서 인간의 위대함이 여기저기서 웅변적으로 표출된다. 


“소프트웨어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 “ 

“예측 불가한 미래를 창조적으로 개척하는 능력이 인간의 본질 “


이세돌의 1승이 없었다면 한 동안 절망의 시대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세돌이 고맙다.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 이세돌이 고맙다. 그러나 언론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홍보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1패 4승으로 졌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없어지고 지능만 존재하기 시작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별 관심이 없었다. 누가 이기건 지건 그저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바둑에 조예도 없었고 무엇보다 승패가 결정되는 이벤트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든 미디어는 인공지능 알파고에 대한 찬사와 기대, 우려로 도배가 됐다. 이제 인간보다 더 지능적인 인공지능이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시대가 멀지 않았고 그런 시대가 오면 인간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하는 불안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대부분 미디어의 첫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사실 컴퓨터와 인간의 지능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체스에서는 오래전에 있었고 몇 차례 경기 결과 체스에서 인간은 더 이상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당시에도 컴퓨터의 승리는 주요한 사회적 관심이었지만 어느 순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체스에서 이긴 컴퓨터가 인공지능으로 업그레이드된 다음 여러 과정을 거쳤고 최근 선택한 종목이 바둑이다. 첫 판에서 이세돌이 이겼다면 아마도 큰 소란 없이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컴퓨터에 졌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인간이 지구 상에서 가장 탁월한 생명체인 까닭은 호모 사피엔스, 즉생각하는 힘에 있다고 믿어왔는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 생명체’가 등장했으니 두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극단적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저자 이스라엘 히브리대 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40)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2100년 이전에 현생 인류는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그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의 현 지능이 이제 곧 무용지물이 되고 인공지능은 인간이 해오던 지적 업무를 인간보다 더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 나오고 있다. 스티브 호킹, 빌 게이츠 등도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제 대국도 끝났으니 인공 지능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더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본질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알파고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서 시작한다. 알파고 현상은 우리에게 아주 쉽고 고민 없이 ‘인간은 지능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 다른 생물체보다 더 지능적이어서 진화의 과정 속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고 현재도 그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규정한다. 만약 더 지능적인 다른 생명체가 나타난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게 되어 다른 종에게 종속당하거나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치더 지능적인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인이 멸종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이런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리 설득력이 크지는 않다. 지능은 인간 진화의 과정 속에서 일부의 역할만 수행해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로 현실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인간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생존해 왔다. 자연환경은 때로 예측하기 힘들 때도 있고 돌발적인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희생과 경험을 통해 생존 방식을 터득해 왔고 그 방법을 후손에게 물려줬다. 우리가 온전히 진화론적 관점을 유지한다면 살아남은 종들의 생존 이유는 자연환경과 상호 공생적 시스템 구축에 있다고 봐야 한다. 시스템의 부재는 결국 멸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종 공동체들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존이 전제되지 않으면 결국 공멸로 이어지게 된다. 자연생태계는 진화의 역사를 가능하게 만들어온 시스템이다. 자연을 매개로 미생물부터 최상위 포식자까지 자연스럽게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생태계 안에서 개별 종들의 장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생태계 안에서 존재하기 위해 진화되어 온 개별적 특성일 뿐이다. 인간의 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생태계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멸망은 공존의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시작된다. 공존의 시스템이 존재하면 외부 환경의 급작스런변화도 수용할 수 있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인간 종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고 무엇을 먼저 실천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다. 기술과 과학은 학문과 예술, 종교처럼 도구적으로 활용되어야 하고 많은 경우 그래 왔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순간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매몰되기 시작했고 그 덫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최고라는 생각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인간의 지능이 모든 문제의 솔류션이라고 믿어왔다. 당연히 지능 중심의 사회가 구축되고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소유하는 시대로 이어져왔다. 인간은 멸종해서는 안 되는 특수한 종이고 어느 경우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종으로 스스로 생각해 왔다. 


알파고에 대한 찬사와 우려는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선택받은 종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짙게 깔려있다. 따라서 멸종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종말이 그리 슬픈 일이 아니다. 공룡도 매머드도 멸종했고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종들이 멸종당하고 있는데 굳이 인간만이 이 지구 상에서 영존할 이유가 없다. 환경에 적용하지 못하면 다른 생명체처럼 멸종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화론적 관점을 유지한다면 인간의 멸종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멸종이 두렵다면 생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상호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생태계와 사회 생태계를 계속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두려워만 하고 있다.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인공지능뿐만이 아니다. 생명복제도 있고 외계 생명체도 있다. 돌연변이 바이러스도 있고 화학 폐기물로 인해 끔찍해진 한강의 괴물도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 자신이다. 


알파고는 알파고 일뿐이다. 단언할 수 있다. 알파고는 좋은 소프트웨어고 여러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 괜찮은 솔류션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이용하는 가에 달려있다. 걱정은 그 점에서 출발해야 된다. 새로 도입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돌발 문제가 발생해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미래는 어느 한 요소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 알파고는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부당한 권력과 탐욕스러운 자본이 알파고를 앞세워  공동체 파괴에 앞장설 수도 있다. 멸종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

매거진의 이전글 여론조사 · 빅데이터 · 국민투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