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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un 28. 2022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머리 쓸 일이 줄어든다. 웬만한 두뇌 활동은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간단한 사칙연산조차 계산기에 의존하다 보니 계산기가 없으면 곤란해진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들어오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기억은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였는데 이제 컴퓨터에 그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공감 능력 역시 서서히 인공지능에게 그 자리를 뺏기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독거노인과 친절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TV 광고를 통해 매일 보고 있다. 인간 두뇌의 주요 기능들이 과학 기술의 결과물로 이전되면서 인간 지성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축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흐름은 구체적으로 직업의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단순 반복되는 일, 간단한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상대적으로 조금 더 복잡한 일도 서서히 인공지능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은행 창구 업무의 많은 부분은 인공지능으로 이전되어가고 있고, 보험 컨설팅 업무의 경우에도 빠르게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직업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에서도 이런 현상이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감정사, 의사의 업무 일부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지능이 더 발달하면 일부 대체가 아니라 많은 부분이 대체될 수도 있다.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이제 미래의 유망한 직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과 관련된 직업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유효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인공지능 기획, 설계, 프로그래밍 등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야도 기술적 특이점 (Singularity, 싱귤래리티, 인공지능이 진화하다가 인류의 지능을 초월하는 기점<특이점>을 뜻함)이 오면 더는 유효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싱귤래리티 시대가 멀지 않았고 실제로 이런 사실들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조금은 끔찍하게 보이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조금씩 수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유지될까. 호모 사피엔스의 유효기간은 언제이고 미래에도 살아남을 직업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의 질문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돌아가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시작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시공간에 대한 인식은 존재의 한계성에 대한 불안한 의식으로 이어지고 절대자, 운명, 미래 예측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과학기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산업혁명 시대부터 일부 지식인들은 종교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지만 수백 년이 지난 현재도 종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 중심에 서 있다. 



 이런 경향은 디지털 전환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종교의 세속화(secularization)로 기존 정통적인 종교가 사회생활과 통치의 여러 측면에서 권위를 잃고 있지만 종교의 필요성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점테크’ 스타트업들의 성공이다. 점테크 기업들은 주역과 명리학의 기본 원리를 AI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변환해 생년월일 등 사주를 입력하면 앞날을 예측해 준다. 사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수단만 바꿨을 뿐 본질적 서비스의 내용은 동일하다. 



 최근 점테크 기업들이 기존 서비스와 다른 점은 정보 제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술인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에 있다. 역술인 소개 서비스는 점테크 기업들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리걸테크 등에서 변호사를 소개해 주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리걸테크의 경우, 예를 들어 AI가 제공하는 형량 예측 서비스와 추천받은 변호사는 동일하게 ‘합리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를 소개해 주는 강남언니와 같은 메디컬 뷰티 플랫폼도 동일하게 ‘합리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점테크 기업의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보는 합리적이지만 역술인이 제공하는 정보는 ‘합리적’이지 않다. 



 점테크 기업들은 사람들이 이런 ‘합리적’이지 않은 정보를 듣고 싶어 하는 욕망이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 자체가 합리성과 불합리성의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불안함을 인공지능은 결코 상대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합리적 구성물이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 이후의 세계, 운명의 유무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미리 세팅된 알고리즘에 의해 정형화된 정보만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불안한 인간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이 불안을 느끼는 인간뿐이 없다. 불안한 인간에게 자신의 불안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힘든 과거를 위로하고 진정 어린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 없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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