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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un 05. 2022

네트워크 속도와 정치적 양극화의 함수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정치적 양극화는 늘 있어 왔고 적절한 수준만 유지된다면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양극화가 심해지면 민주주의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최근 정치적 양극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여 년간 진보와 보수 사이의 중간 계층이 계속 줄어들면서 두 진영 사이 중심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통계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정치적 양극화가 그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트럼프는 백악관 공식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기보다는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이런 방식이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더 심화시켰다.  


          출처 : pixabay.com 


 한국 역시 미국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은 보수 진보 간 갈등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통계개발원과 한국행정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보수–진보 갈등이 빈곤층-중상층 갈등, 노인층-젊은 층 갈등, 남녀-종교-외국인 갈등보다 더 심각한 갈등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2013년에는 응답자의 39.8%가 보수-진보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는데 2020년에는 46.6%로 증가했다. 국민 두 사람 중 한 명이 보수 진보 간 갈등이 가장 심하다고 응답을 한 것이다. 2022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20년 통계보다 더 악화된 것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 모두가 2022년 3월 9일 실시된 20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이런 상황을 충분히 확인했다. 정책 대결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중도층 표를 확보하려는 전략 대신 상대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등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선전 선동만 선거 기간 내내 요란했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미국과 한국의 공통적인 배경 중 하나로 인터넷이 주요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쉴 새 없이 전달되는 메시지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전달받은 정보의 팩트를 확인할 시간도 없이 정보 그 자체를 별 비판의식없이 수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쉽게 동조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인터넷 특히 인터넷의 속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2013년과 2020년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보수-진보 간 갈등이 약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증가의 이유로 정치사회적 분석도 가능하겠지만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속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2013년의 경우 이동통신은 주로 3G 기반이었다. 2013년 하반기 기준으로 95% 이상의 가입자가 3G 모바일을 사용했다. LTE의 경우 2013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2017년 5천만 명을 돌파했다. 5G는 2019년 4월부터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해 2021년 말 2천만 명을 넘어섰다. 



 10년 사이에 이동통신 서비스가 3G에서 5G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예를 들어 2GB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G에서는 약 32시간, 3G에서는 약 19분이었는데 4G에서는 약 16초로 당겨지고 5G에서는 약 0.8초로 더 빨라진다. 다운로드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터넷 사용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3G에서는 문자와 이미지 위주로 SNS를 했지만 4G부터는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가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5G 환경에서는 고화질의 동영상뿐 아니라 인공지능, 클라우드, 자율주행, 메타버스 등의 서비스도 가능하다. 사실상 모든 종류의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5G 가입자가 계속 늘고 동영상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보수-진보 진영의 유튜브 채널들이 급격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치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016년 말~2017년에는 상위 채널마저도 구독자 10만 명을 넘기 힘들었다. 이때까지 4G 가입자가 많았지만 동영상 서비스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시점이었다. 4G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가 본격화되는 2018년부터는 정치 유튜브 구독자가 10만 명 이상 수준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100만 구독자를 넘기는 유튜브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대용량의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하게 되면서 정치 유튜브들은 기존 공중파의 뉴스 프로그램을 압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동영상 서비스는 텍스트와 이미지보다 사람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더 쉽게 양극화시켰다. 정치 유튜버들은 팩트에 대한 검증 없이 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을 정제되지 못한 언어로 배설하기 시작했고 콘텐츠 소비자들은 이를 여과 없이 수용하면서 상대 진영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게 된다. 확증편향이 인터넷 속도에 따라 가속되었고 여기에 빅데이터 기업들의 맞춤형 콘텐츠 제공 알고리즘이 정교화되면서 이제 정치 양극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기술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성숙이 필요하다.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겠지만 다른 솔루션은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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