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소비자들의 반발로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국외 직접구매(직구) 제품’을 금지하겠다고 한 정부의 발표가 철회되었다. 계획 발표 3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 정부가 이 계획을 발표했을 때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면세제도 개편을 포함한 담대한 장기 구상까지 언급했지만, 유승민과 한동훈으로 이어지는 여권 인사들의 반대와 소비자들의 조직적 반대로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소비자들은 ‘직구규제반대소비자회’를 긴급 조직하여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직구 규제 반대 집회를 열고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정부를 지탄했다.
소비자들의 반대 이유는 분명하다. 물건 구매 선택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직구는 상당수 국민의 주요 소비 채널로 자리 잡았는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법을 통해 강제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정부가 해외직구 금지 사유의 하나로 제시한 ‘위해 제품 반입 우려’의 경우에도 소비자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유사 제품들을 비교하게 되고 사용자 후기 등을 참조하면서 구매 버튼을 누른다. 맹목적 구매나 블라인드 쇼핑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쇼핑 행위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직구규제반대소비자회가 5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연 '직구 규제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직구규제반대소비자회 제공=연합뉴스)
소비자단체들이 이런 구매 선택권을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당연히 해외직구 제품의 저렴한 가격에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산 해외직구 사이트에서는 국내 제품과 같은 기능의 제품을 삼분의 이, 또는 반값에 파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영구적 또는 장기간 사용할 제품이 아니라면 굳이 비싼 국내 제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 하이테크놀로지 제품이 아니라면 중국산 제품의 품질도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사용에 별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많이 보편화되고 있다. 2018년 2조 원대이던 해외직구 액수가 올해 7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합리적 쇼핑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해외직구 시장을 확대했지만 반대로 국내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사실 지난 5월 16일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직구 제품 원천 차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보도자료를 자세히 보면 해외직구로 피해를 보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를 지원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날 발표한 다섯 개의 주요 중점 추진 사항 중 네 번째, 다섯 번째 사항이 중소기업 지원책과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유통 플랫폼 고도화 및 역직구 지원 확대 등 기업 경쟁력 제고 추진’, ‘국내 사업자와 역차별 문제 해소 등을 위한 면세제도 개편여부 검토’ 등이다.
실제 이 발표 이전에 중소제조업체들은 중소벤처기업부에 해외직구 증가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예를 들어 전기·생활용품의 경우 국내 판매를 하기 위해서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생활용품안전법)에서 규정한 시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자파 안전인증과 KC인증이 대표적이다. KC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2~3개월이 필요하다. 인증 한 건에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인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4~5개월 걸리는 경우도 태반이다. 업체들은 신속한 처리를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검사소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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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적 물리적 비용 등은 모두 제품 원가에 반영된다. 그래도 해외직구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국내 모든 제품에 일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특정 회사가 불리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해외직구 시장이 커지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생산 사이즈가 다른 중국산 제품들은 국내산 대비 원가가 낮은 데다 검사에 소요되는 비용이 없어 물류비 등을 고려해도 국내 제품들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 당연히 국내 제조업체들의 불만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 때문에 오히려 국내업체가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내제조업체들은 이 사실을 중소벤처기업부에 어필했고 정부는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직구 제품 원천 차단’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직구 규제 발표를 한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인터넷 발달과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국제 간 물품 거래가 쉽게 이루어질 때, 국내 기업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미리 준비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는 국가의 통제 없이 또는 최소한의 규제만으로 개인들이 주식, 서비스, 물품 등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주식 등 금융상품의 거래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립되었지만, 전기·생활용품과 같은 일부 제품들은 아직 적절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번 사태가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