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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Sep 30. 2024

매크로 암표의 정보사회학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지난 12일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연·스포츠 경기 입장권 부정거래 근절 방안’을 마련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소위 암표 거래로 인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여가생활 향유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앞으로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예약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입장권을 영업 목적으로 웃돈을 얹어 재판매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관련 법령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예약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다.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입장권을 부정하게 취득하는 모든 방법과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익위가 굳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언급한 이유는 개정된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이 사실상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유명 가수의 공연이나 스포츠 특별 경기 입장권이 중고 거래 플랫폼 등을 통해 고가로 거래되는 일이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다. 지난해 말 가수 임영웅 공연의 암표 가격은 500만 원을 웃돌았고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티켓은 400만 원에 팔렸다.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이 어떤 사정에 의하여 관람할 수 없게 되자 중고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부당이익 취득 목적으로 기획하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량 구매해 암표 장사를 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9월 12일 SBS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당연히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가 있었고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이 일부 개정됐다. 2023년 3월 21일 개정되어 2024. 3월 22일 시행된 개정 공연법은 4조 2항이 추가되었다. 추가된 2항의 내용은, 누구든지 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입장권 등을 부정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국민체육진흥법의 경우 6조 2항이 추가되었다. 내용은 개정 공연법 제4조 2항과 동일하고 벌칙 역시 당연히 동일하다.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 매크로를 이용해 입장권 등을 구매해 판매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관련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권익위에서 다시 문체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한 이유는 분명하다. 중고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입장권이 매크로를 통해 구매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범죄 입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구매는 예매 당시 시스템에서 걸러내지 않으면 잡아내기 어렵다. 예매 사이트들은 매크로 사용이 의심되는 비정상적인 접근을 차단하고 있지만, 매크로 기술 역시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근본적 차단이 쉽지 않다. 또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시중에서 1~2만 원에 거래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서 자신이 원하는 티켓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행 법령에서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매크로 암표는 정보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정보의 불균형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티켓 예매 시스템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적 이해와 도구(매크로)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 사용자들보다 티켓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 정보와 기술의 격차가 생기고, 이러한 불균형이 암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기술적 우위를 가진 소수의 사람이 네트워크를 통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나은 혜택을 얻는 것은 기술 발달 초기에 발생하는 일반적 경향 중의 하나다. 인터넷 도입 초기에 정보검색 능력에 따라 취득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는 디지털 격차가 한 사례다.  


국민권익위원회 유철환 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러나 정보검색 능력에 따른 정보 불평등의 경우 다양한 검색 플랫폼 등장과 검색 엔진 등의 발달로 사람들의 정보검색 능력이 향상되면서 더 이상 주요 사안이 되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의미 있게 보였던 특정 기술이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기술이 되면서 정보 불평등 문제는 주요 의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즉, 누구나 같은 수준으로 티켓을 예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매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아예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합법화하거나 또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NFT나 앱을 통한 티켓 인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매크로 암표 이전에도 암표는 존재했다. 매표소 직원과 공모해 입장권을 미리 빼돌리거나 여러 명을 동원해 대리 구매해 암시장에서 판매했다. 온라인 티켓팅이 도입되면서 이제 더 이상 암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크로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다시 암표가 등장하게 되었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술발전이 사회적 규범이나 법규보다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생겨난 불가피한 현상이다. 특히 사회적 준비가 미흡한 초기에는 새로운 기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가 기술에 대한 사회적 적응력이 어느 정도 생기면 그 피해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이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이 다수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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