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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Nov 04. 2024

한강, AI 그리고 창조성에 대하여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문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공지능의 창작에 관한 이야기도 재론되고 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AI가 쓴 소설이 당선되었다는 뉴스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생성형 AI 챗Gpt 등장 이후 이슈된 AI 창작론이 재차 소환된 것이다. 그러나 그사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한강의 수상 이전에는 AI가 작성한 문장이 소설일 수 있는가에 대하여 그럴 수도 있다는 인정론과 AI는 창작할 수 없다는 부정론이 어느 정도 비슷했지만, 수상 이후에는 인정론이 수그러들었고 창작은 인간 고유의 영적, 지적, 창조적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고 있다. 


찬성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가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문에 나와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 이유에 대해 한강의 작품이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시적 산문”이며 소설가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발표문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단어는 ‘역사’라는 표현이다. 한림원에서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상처, 역사적 트라우마는 실제 발생한 사건이고 한강은 이 사건들을 소설의 소재로 활용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이 배경이 되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을 축하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서울=연합뉴스)


물론 작가 한강은 위 두 사건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 대부분 구성원에게 깊은 정신적, 사회적, 역사적 상처를 남겼고 저자 역시 이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은 특정 사건이 벌어진 그 시공간에 물리적으로 실존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공유, 사회적 연대 등을 통해 사건의 희생자들과 하나 되는 과정을 겪게 되고 아픈 감정을 내면화한다. 내면화된 이런 감정은 소설, 시 또는 이미지로 표현되고 소환된다. 작가는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적 상처를 축적하고 있다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역사적 상처, 집단적 기억, 내면화된 정서 등은 정신적이고 감정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폭력을 경험했거나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도 주변 지인들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은 민주적 의사 표현을 불편해할 수도 있고, 반대로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한강의 소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우리 깊은 내면에 남아 있는 역사적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 환기하고 공유하고 대화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 상처를 치유하자는 메시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일러스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작업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감당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지금 가능한 대답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AI가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과정들이 너무 많다. 역사적 상처, 집단적 기억, 내면화된 정서 등을 연결해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는 일은 미리 설계된 알고리즘에 의해 데이터를 분석, 정리, 재구성하는 프로시저와는 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이런 경우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회 구성원이 아닌 이상 아픔을 공유할 수 없고 따라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구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이 짧은 기간 안에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집단적 트라우마를 공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강과 같은 소설을 AI가 쓸 수 없다고 해서 AI의 작문 능력을 낮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AI의 작문 실력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품질 좋은 생성형 AI를 경쟁력으로 출시하고 있다.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지금도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AI의 작품인지 사람의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구분이 의미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언어를 전문으로 학습·생성하는 ‘언어처리장치(LPU·Language Processing Unit)’가 탑재된 반도체가 등장하면서 속도, 비용, 품질 모든 면에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작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17일 서울도서관 외벽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한강 작가님 덕분에 책 읽는 시민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글판이 걸려있다. (서울=연합뉴스)


노벨상은 작품이 아닌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작가는 역사와 사회의 증언자이면서 동시에 샤먼으로서,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디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AI는 ‘그가 살아온 삶’과 관계없이 프롬프트에 따라 하루에도 수백 편씩 ‘작품’을 만들어 내 위안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창조적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창조는 기존의 것을 재해석,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결과물은 작가에 따라, AI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둘 다 필요하고 둘 다 의미가 있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공감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AI가 만든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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