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카이로스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복음주의 개신교인 8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절반 정도(54퍼센트)만 ‘매주 대면 예배에 참석한다’고 답했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비율은 39퍼센트로 나타났다. 대면 예배 참석자는 대폭 줄었고 온라인 예배 교인은 코로나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전반적으로 종교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인식이 낮아지고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면 예배 참석자 감소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글로벌한 뉴노멀의 상황이 교회 불출석에 대한 적절한 핑곗거리를 제공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온라인 교인 증가 또는 대면 예배 교인의 온라인 교인으로의 전환은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보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이런 구조적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 VOD) 서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 기사 내용 중에 ‘메뚜기 성도’(church hoppers)라는 표현이 있다. 메뚜기 성도는 여러 교회 목회자의 설교나 교회의 각종 활동 등을 디지털 방식으로 탐색해 교회를 옮기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인데, 조사 결과 이들이 15퍼센트로 나와 팬데믹 전(5퍼센트)보다 3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메뚜기 성도들은 이런저런 소스를 통해 알게 된 유명 목사의 설교, 조회수 높은 설교, 최근 이슈가 된 설교 등을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시청하고 맘에 드는 교회를 선택한다.
이런 메뚜기 성도와 온라인 성도들이 가능했던 이유가 VOD 서비스에 있다. VOD 서비스는 글자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없던 서비스다. 이전에는 방송국, 극장 등에서 송출하거나 상영하는 영상 프로그램,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 정해진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 입장해야만 했다. 콘텐츠 상영 스케줄에 내 시간을 맞추고 내 신체를 구속시켜야만 했다. 시간과 공간에 구속되어야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고, 접근해야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의례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인류학적 사례를 보면 많은 종족의 영적 지도자들이 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 자신을 유폐시켰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시간과 장소의 구속은 신석기 후기 이후 모든 종교의 기본 구조가 되어 교인들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여 영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주요 기제로 작동해 왔다. 이런 시스템이 최근까지 별 저항 없이 유지되어 왔다. 교회 출석이 하나의 교리처럼 인식되어 온 과정이 여기에 있다. 신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는 누구나 감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절차였다. 매주 특정한 요일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는 예배 의식은 그만큼 중요했다. 스케줄이 먼저 있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몸과 마음이 있다. 구속을 통한 이런 영적 체험 또는 희열은 예배뿐만이 아니라 매스미디어의 본질이기도 하다. 대중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예배 의식은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중문화 유통과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 대중문화 확산에 균열이 생긴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VOD 서비스의 등장이다. VOD를 통해 개인은 시공간을 구속하는 스케줄링 서비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VOD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들은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든지 선택해서 시청할 수 있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즉시 스트리밍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반면 방송사가 미리 정한 편성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특정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스케줄링 서비스에서 시청자는 원하는 시간에 특정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이런 기술적 차이는 콘텐츠 주도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VOD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는 콘텐츠를 정지, 재생, 되감기, 앞으로 감기 등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다. 자신만의 페이스에 맞춰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지만, 스케줄링 서비스에서 시청자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동안에는 콘텐츠를 제어할 수 없다. 녹화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방송된 프로그램은 다시 볼 수가 없다. 기술적 차이는 서로 다른 사용자 경험으로 연결된다. 스케줄링 서비스에서는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이 같은 시간에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 실시간으로 함께하는 시청 경험이 중요하다. 반면 VOD 서비스에서는 개인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선택받지 못한 프로그램은 아주 짧은 순간에 사라진다.
네트워크를 타고 송출되는 설교 영상도 VOD 서비스 사용자에게는 여러 콘텐츠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가상공간에서는 수많은 설교 영상이 시청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선택은 신의 섭리가 아니라 처음 몇 분 안에 얼마나 임팩트 있게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시공간을 장악한 개인은 더 이상 특정 공간이 주는 아우라에 종속당하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한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설교 영상을 소비하고 모바일 뱅킹을 통해 헌금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한다. 신앙은 공동체적 신앙생활에서 개인적 소비로 재구성된다. 시공간의 주체가 개인으로 전환되면서 우리는 두 번째 세속 종교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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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인터넷 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명 칼럼 '김홍열의 디지털 카이로스'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