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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회적 콘텐츠, 정보의 자유인가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지난 20일 인천 송도에서 사제 총기로 자신의 친아들을 살해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경찰은 범인 조씨의 자택에서 페트병과 세제, 우유통, 기름통, 시너 등으로 만들어진 사제 폭탄을 발견했다. 발화 장치와 타이머도 장착된 정교한 폭탄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조씨가 제조한 폭발물이, 만약 기폭 장치가 작동됐으면 폭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았다. 조씨는 이 사제 폭탄을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여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실제 유튜브에는 폭탄 제조 방법 수천 개가 올라와 있다. 폭탄 제조 ‘Bomb making’을 검색하면 관련 동영상이 끝도 없이 나온다. 조회수가 수백만 넘는 채널도 꽤 많다.


지금 인터넷에는 반사회적 콘텐츠가 아무런 제약 없이 퍼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폭탄 제조 말고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마약 제조법이다. 일부 해외 사이트에서는 화학 원료 구매처부터 제조 비율, 복용 방법까지 사진과 영상으로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으며, 이를 우리말로 번역해 재유통하는 커뮤니티도 존재한다. 자살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는 게시글, 자해를 부추기는 챌린지, 특정인을 상대로 한 살해 위협까지도 여과 없이 유통된다. 특히 10대 청소년층은 이러한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제 인터넷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의 바다가 아니다. 콘텐츠 내용과 운영 주체의 의도에 따라 충분히 무기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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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Pixabay.com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은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열린 공간의 기초가 되었고, 수십 년간 정보 민주화의 상징이 되어왔다. 누구나 자료를 올릴 수 있고, 누구나 그 정보를 다시 공유할 수 있는 구조는 초기 인터넷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철학이 과연 여전히 유효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자유롭게 퍼지는 정보는 더 이상 데이터나 지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정보가 가짜뉴스일 수도 있고, 혐오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다.


많은 플랫폼은 자신들의 역할을 ‘정보의 중개자’로 한정 지으며, 유해 콘텐츠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나 오늘날 플랫폼은 단순한 게시판이 아니다. 정보의 도달 방식과 속도, 방향까지 결정하는 ‘설계자’이자 ‘배포자’다. 예컨대 자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자살예방 기관이 아니라, 자살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이 먼저 노출되는 구조는 분명히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즘 공개를 거부하며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정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기술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클릭과 체류 시간을 유도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소비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사회는 거대한 위험에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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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CG) [연합뉴스TV 제공]


표현의 자유는 분명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며,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권리다. 그러나 이 권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 모두 ‘공공의 안전’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시 말해, 폭탄 제조 방법, 마약 제조 정보를 퍼뜨리는 것도, 자살을 유도하는 것도 결코 표현의 자유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의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책임 없는 방종’에 가깝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사회 안전보다 앞세울 것인가, 아니면 그 자유가 지속 가능하도록 책임과 제어의 원리를 함께 설계할 것인가. 이 선택은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지향하는 윤리적 방향의 문제다.


우선, 개개인 사용자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허위 정보를 무심코 공유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 하나하나가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 시대다. 특히 1인 미디어와 커뮤니티 중심의 정보 생태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누구나 정보 생산자이자 증폭자다. 따라서 정보윤리에 대한 사회적 교육,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가 필수적이다. 정보에 대한 판단 능력과 책임의식을 갖춘 시민만이 건강한 온라인 생태계를 지킬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인터넷을 방관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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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대형 온라인 플랫폼 (PG) (연합뉴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다. 더 이상 기업의 자율에만 맡겨둘 수 없다. 최소한의 공공 규범과 투명한 알고리즘 운영 기준이 필요하다. 유해 콘텐츠 차단을 위한 사전적 모니터링 시스템, 위험 키워드에 대한 자동 대응 시스템 등 기술적 조처는 물론, 법적 규제 역시 강화돼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 보호와 관련해서는 연령별 접근 제한, 보호자 승인 시스템 등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무책임한 자유’가 아닌, 책임지는 개방성과 공존의 철학 위에 인터넷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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