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지난 6일 영국 대중지 The Sun은 프리미어리그 경기장 주변에서 경찰이 실시간 안면인식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경찰 차량에 탑재된 이동형 장비가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배치되고,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동으로 스캔한다는 내용이다. 스캔 된 얼굴은 범죄자나 체포영장이 발부된 인물, 경기장 출입 금지 대상자 등이 포함된 ‘감시 목록’과 즉시 대조된다. 경찰은 이미 여러 대형 스포츠 행사에서 이 기술을 활용해 실제 체포 사례도 있었다며, 이러한 장비를 전국적으로 확대 배치할 계획도 밝혔다. 축구 경기장뿐 아니라 콘서트나 대형 행사 등 군중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대중지 The Sun 관련 기사 갈무리
이 보도가 나오자, 영국에서는 곧바로 논쟁이 촉발됐다. 경찰과 정부는 범죄 예방과 공공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행사에서 위험 인물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치안 수단이라는 것이다. 반면 인권단체와 시민단체 및 영국축구서포터협회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권단체 리버티(Liberty)는 이 기술이 “대규모 사생활 침해”라고 비판했다. 축구 팬 단체들도 경기장 출입 과정에서 얼굴이 자동으로 스캔되는 상황에 불편함을 표시했다. 이들은 최소한 기술의 법적 근거와 운영 방식이 충분히 공개될 때까지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시 카메라 자체는 이미 현대 도시에서 낯선 기술이 아니다. 런던은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술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단순히 ‘촬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카메라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영상을 확인하는 사후적 장치였다. 그러나 안면인식 카메라는 사람의 신원을 실시간으로 판별한다. 카메라가 단순한 기록 장치에서 신원 확인 장치로 변한 것이다. 즉 기술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영상 데이터가 개인의 정체성과 직접 연결되면서 감시의 강도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촬영되는 것이 아니라 ‘식별’되고 ‘분류’되는 대상이 된다.
특히 시민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는 이번 기술이 ‘이동형 감시 장비’라는 점에 있다. 기존 CCTV는 일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민들은 그 위치를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감시였다. 그러나 차량에 탑재된 이동형 카메라는 상황이 다르다.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고 어디에서든 사람을 스캔할 수 있다. 감시의 공간적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시민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 얼굴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될지 알 수 없다. 고정된 감시는 제한된 공간의 문제였지만 이동형 감시는 도시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기술적으로 보면 감시 인프라가 유동화되는 과정이다.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바로 이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안면인식 AI 감시기술 논란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동형 안면인식 기술이 확산되면 도시의 감시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경찰 차량, 드론, 심지어 휴대 장비까지 다양한 형태로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감시는 특정 시설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분산된 네트워크가 된다. 기술적으로는 매우 효율적인 치안 체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의 익명성이 빠르게 사라질 위험도 있다. 공공 공간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자동으로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시가 범죄 예방을 넘어서 행동 관리의 수단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술이 존재하는 한 그 활용 범위는 점점 넓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감시 기술과 무관한 사회는 아니다. 지하철역과 도심 곳곳에 수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일부 공항과 시설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경찰이 사용하는 이동형 장비나 휴대용 신원 확인 기술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아직 영국처럼 대규모 군중을 대상으로 실시간 안면인식을 사용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기술적 기반은 이미 상당히 갖추어진 상태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CCTV 밀도를 가진 국가 중 하나다. 이런 환경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확산 속도도 빠를 수 있다. 치안 효율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역시 강한 편이다. 따라서 이동형 감시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감시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이다. 기술이 민주적 통제 없이 확장된다면 도시는 거대한 감시 네트워크로 변할 수 있다. 반대로 시민 사회와 제도가 충분한 규제를 마련한다면 기술은 공공 안전을 위한 제한된 도구로 남을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기술은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사회가 어떤 규칙을 만들고 어떤 기준을 세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시민 사회가 침묵한다면 감시는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감시의 한계를 묻고 제도를 요구한다면 다른 길도 가능하다. 경기장의 카메라가 감시의 눈이 될지, 아니면 민주적 통제 아래 머물지 고민할 시간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