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제국과 국민국가의 현실적 타협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정부가 지난달 27일 고정밀지도의 해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정부 8개 부처가 참여한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에서 최종 결정됐다. 2007년 구글의 첫 요청 이후 19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그동안 구글은 세 차례 요청했고, 정부는 처음 두 번은 불허했다가 세 번째 요청에 조건부로 승인했다.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져 온 사안이 마침내 타협을 본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군사시설 노출과 안보 위험, 데이터 통제 문제를 이유로 반출을 제한해 왔다. 반면 구글은 글로벌 지도 서비스와 자율주행·AI 기술 고도화를 위해 고정밀 데이터 접근이 필요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동안 고정밀지도의 해외 반출 여부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기도 했다. 필자는 지난 칼럼 “고정밀 지도를 둘러싼 디지털 영토 전쟁”에서 고정밀지도를 단순한 지도 데이터가 아니라 ‘전략 자산’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지도는 길 안내를 넘어 자율주행, 드론, 물류, 스마트시티, 군사 전략, 재난 대응의 기반이 되는 핵심 인프라다. 이런 데이터가 해외 기업의 서버로 이전될 경우, 통제권과 활용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기술 이슈가 아니다. 당시 칼럼의 핵심은 분명했다. 데이터는 상품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는 최소한 그 권력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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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러 논란 끝에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은 플랫폼 제국 구글과 국민국가의 협상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글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검색, 광고, 모바일 운영체제, 지도, 클라우드를 결합한 거대한 디지털 인프라 제공자다. 검색 엔진 점유율은 전 세계 90%가 넘고 국내 시장 점유율도 30%가 넘는다. 국민의 일상적 활동과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여행객 대부분이 이 플랫폼에서 필요한 것을 얻는다. 구글은 플랫폼에서 플랫폼 제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문을 닫기는 어렵다. 데이터 주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데이터 주권을 단순히 막느냐, 푸느냐의 이분법으로 볼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의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이 WTO 협정 및 한미 FTA 상의 불공정 무역 행위라는 구글의 주장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주권은 완전한 봉쇄 능력이 아니라 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조건의 이행을 검증하고 감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터가 국경을 넘더라도 법과 규제가 작동한다면, 주권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후 통제 장치와 투명성이다. 조건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는가, 위반 시 제재가 가능한가가 핵심이다.


이번 조건부 허가는 한국 정부가 플랫폼 제국 구글의 계속되는 요청을 적절한 선에서 수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도 데이터 이용을 위해서 국내에 서버가 있어야 한다는 정부 주장에 구글은 국내 제휴 기업을 통해 가공된 형태로 받기로 했다. 최소한의 완충 장치를 확보한 것이다. 데이터는 국가 보안 및 관련 법령 등을 고려, 비식별화 혹은 제한적 처리 등을 전제로 반출을 허용했다. 예를 들어, 등고선이나 3차원 지도 등 보안과 관련된 정보는 제외되었다. 정부는 지리 정보 데이터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법적 감독 권한을 통해 문제 시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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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SBS 8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은 국내 기업에 기회이면서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이 장악했던 지도 및 위치기반 서비스 시장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여 선진적인 자율주행 기술을 강화할 경우, 국내외 기업 간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구글 지도에서 도보 내비게이션, 대중교통 등 상세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어, 관광업계와 위치 기반 애플리케이션 산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하나씩 개방을 할 때마다 발생하는 기회와 위기가 여기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도 디지털 주권은 여전히 필요하다. 데이터는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시민의 권리와 직결된다. 폐쇄적 태도만으로는 기술 발전을 따라갈 수 없지만, 무방비 개방은 또 다른 종속을 낳을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설계된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문제 발생 시에는 단호한 조처가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 플랫폼 제국과의 현실적 타협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타협은 국민의 이익과 안전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한번 유출된 데이터는 다시 회수할 수 없고 그 피해는 회복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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