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아 엄마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다해야,
지난번 편지 보고 네가 두 가지 물어봤지. 하나는 한국과 독일의 아이 양육 방식이 다르게 된 근본적 이유고 두 번째는,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나이 들어서는 '근처에서 독립적’으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지.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가까이 살면서 자주 보는 게 서로에게 더 안정적일 수 있지 않느냐고 했지. 둘 다 좋은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지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어 좋고 두 번째 질문은 가치관에 기초한 논쟁적 주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네. 이제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우선 첫째 질문부터 이야기해 보자. 지난번 편지에서 독일과 한국을 언급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서유럽과 아시아를 비교하는 게 맞아. 시기적으로는 근대 이후 서유럽과 아시아야. 두 지역 모두 중세 때는 유사한 환경이었을 거야. 예를 들어 13세기 프랑스 왕조와 13세기 고려 왕조를 비교해 보자. 두 지역 모두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고 인구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했어. 농업은 기본적으로 땅에 구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 특정 지역을 떠나지 못했어.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오일에 한 번 오일장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였을 거야. 대부분 한 곳에서 나서 거기서 성장하고 그곳에서 늙어 가다가 근처에 묻히는 거지. 다른 선택이 거의 없어.
그리고 당시 농업의 생산력은 사람의 노동력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산이 미덕이었고 남아가 여아보다 더 필요했지. 또 당시 대부분의 농민은 문자 해독 능력이 거의 없어서 경험 있는 사람들의 조언이 사실상 절대적이었어. 농사에 대한 지식과 지혜는 나이 든 노인들에게서 나오니까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공경심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거야.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지. 이렇게 오래전에는 서유럽과 아시아가 같은 환경이었다가 산업 혁명 이후 근대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두 지역의 환경이 엄청나게 달라져. 서유럽의 농민들은 농촌에서 쫓겨나 공장이 있는 도시로 가게 돼요. 공장에서는 가족 단위로 근로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공장이 있는 지역에 가서 개별적으로 근로 계약을 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해야 해. 농촌에서 벗어나 공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가족보다는 개인이 더 중시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야.
물론 지금 한국도 마찬가지지. 차이점은 중세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근대 제조 중심의 산업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의 시간이야. 서유럽은 이 기간이 무척 길어. 2~3백 년 넘게 근대 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여러 역사적 경험들이 있어. 프랑스 대혁명 같은 투쟁을 통해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희생이 많았어요.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집단, 공동체, 국가 등 개인과 대립되는 개념, 가치 등이 중요시될 때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극우 환경으로 진입하게 되는지 철저한 경험을 한 거야. 내 나라 내 민족 내 피 내 땅 강조하면서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히틀러가 대표적이지. 공동체의 이름으로 다른 공동체를 박멸하려는 집단적 광기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거야. 이런 여러 끔찍한 경험을 하다 보니 프랑스 시민들은 어느 순간에도 개인의 독립적 사유와 행동을 통제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하는 거야. 개인이 먼저 독립적이지 않으면 항상 그 개인은 집단적 광기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거야.
한국은 서유럽과 달리 근대화 과정이 무척 짧아요. 그나마 대부분의 기간이 강압적 근대화 기간이었어.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면서 개인화가 되는 과정이 무척 짧았던 거야. 그래서 아직도 우리 의식에는 중세 봉건적 유습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사람의 습성은 생각보다 오래 가. 무척 오래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문을 중요시하고 자식에게 기업을 넘겨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법대에 들어가서 판. 검사해서 집안을 일으키라고 강요하는 거지. 막장 드라마의 기본 축은 가정이야. 유럽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들어.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부정해도 우리의 정신적 DNA는 아직 강하게 중세의 가족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남아 있어. 추석과 설에 온 가족이 다 모여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아직도 개인보다는 가족, 집단이 먼저인 거지. 이전보다 약해졌지만 아직도 피로 이어지는 혈연과 지연 관계가 많이 남아 있어.
가족이라는 단위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잘못하면 집단적 사고를 강요하는 장소로 고정될 수도 있어. 가문이 그런 거야.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가문의 맥락에서 자녀 교육의 기본 철학이 형성돼요. 개인보다 가문인 거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습성이 강하게 남아있어. 인간이 광기의 미친 시대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집단보다는 개인 위주로 사고하는 습성이 필요한 거지. 남들이다 '예'라고 해도 혼자서'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한 거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나왔지. 우리 모두 가족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아직도 크게 와 닿고 있어. 우리는 당연히 같이 있으면 좋지,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야 해. 좀 더 강고해질 필요가 있어. 너의 그런 마음이 슬아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해야 해. 성수동에 살던 일산에 살던 혹은 뉴욕, 피렌체, 남미 어느 나라에 살던 그건 슬아가 결정할 문제야. 오랫동안 형성된 기존 의식에서 벗어나야 해. 그런 의식은 집단적 사고의 유습이야. 집단적 사고는 결국 반민주주의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같은 작은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 하나하나가 주체가 되는 세계시민 공동체야. 결국 네 생각이 세련되게 정리되어야 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되고.
아이 키우기 어렵지? 키운다는 생각을 버려. 20살까지 허락된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너와 슬아 둘 다 행복해지도록 계속 이별을 생각하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늘 인간은 혼자임을 잊지 말고. 일주일 잘 보내고 내주에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