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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ri Jun 24. 2016

덕후 경영학

DBR April 2016 Issue 2, No. 199

 4월의 두 번째로 발행된 DBR(Dong-A Business Review)을 읽고 정말 흥미로운 주제가 있어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덕후와 서브컬처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 얻어갈 만한 insight가 많아요.



 한국의 오타쿠와 '덕후' 그리고 '덕질


  최근 '나 어디에 아주 푹 빠져있어. 뭔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그걸 자꾸 찾아보고 있어.'라는 말을 할 때 '덕질'이라고 표현한다. 덕질이라는 단어는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에 '덕'이라는 신조어가 붙은 것인데, '덕'은 '오덕후'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SNS나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이 신조어는, '영화덕'이라든지 '덕밍 아웃' 등 다양하게 의미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덕후는 오덕후에서 유래한 말인데, 오덕후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하다 굳혀진 단어다. 그러나 일본어 오타쿠와 우리의 덕후는 성격이 다르다. 일본의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오타쿠란 만화, 피규어,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오타쿠라는 문화 현상에 대해 근 30년간 부정적 측면, 긍정적 측면, 사회문화적 파급효과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오타쿠 문화가 음지에 있다가 갑자기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오타쿠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높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오타쿠들은 '키덜트'로 불리기도 한다. '마니아'로 대체되어 쓰일 때도 있다. 이러한 한국형 키덜트, 한국형 마니아, 한국형 오타쿠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 '덕후'다.



소통과 공감, 정체성 형성을 위한 덕질


 '덕후'는 오타쿠보다는 '마니아'에 가까운 단어이다. 이들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에 몰두하지 않는다. "오타쿠 같다."와 "덕후 같다."는 다르다. 전자는 오타쿠의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으나 덕후는 오타쿠의 일부 특성을 포함한 새로운 종류의 집단이다. 보통 '덕질'이라고 부르는 행동의 대상이 무엇인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오타쿠 콘텐츠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만화, 아이돌, AV, 게임 등의 소프트웨어와 IT 기기 등 하드웨어가 있다. 일본의 만화 전문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상 아이돌(보컬로이드)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라든지 가슴이 수박만 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만화가 오타쿠의 콘텐츠이다.


 그러나 덕후의 덕질 중에 이런 콘텐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덕후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중적이고, 누구나 다 아는 것들에 가깝다. 연예인, 드라마, 여행, 영화 등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다. 스스로 '스벅 덕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시즌마다 출시되는 굿즈(goods)를 모은다. 스타벅스 굿즈는 덕후의 주요 덕질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시티 머그'라고 불리는 굿즈는 세계 곳곳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파는 도시와 국가의 이미지가 새겨진 머그컵이다.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는 이것들을 팔고 산다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왜 시티 머그를 사서 모으는 것일까? 언론에 보도된 한 시티 머그(텀블러) 덕후는 '수집이 결국 소통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자기만족을 위해 모으기 시작한 텀블러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덕질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덕후의 덕질은 오타쿠의 그것과 달리 혼자서 간직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공유함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스타벅스의 시티 머그를 모은다는 것은 스타벅스 브랜드가 가진 세련됨, 도시적인 이미지, 여행을 즐기는 젊음과 여유로움, 진취적임까지도 상징한다. 그래서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SNS를 통해 덕질의 결과를 공개한다.



한국형 오타쿠, '덕후'와 비즈니스 전략


 기업들이 한국형 오타쿠, 이른바 '덕후'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덕후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덕후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덕질의 대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덕질을 하는 이유는 일관적이다. 최근 쇼미 더 머니 5의 인기가 핫한데, 그와 함께 '힙덕'도 늘고 있다. 한국의 힙덕들은 힙합 음악을 구매하고 소장하기보다는 자신이 '힙합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공연을 구매한다. 힙덕들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SNS를 통해 '아이템을 질렀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물품을 제공하는 것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진다.


 '여행'도 덕후를 자극한다. 여행은 본래 그 자체로 '경험'이기 때문에 한국형 오타쿠, 즉 덕후와 딱 맞는 산업이기도 하다. 여행 덕후는 '남들과 다른 여행을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녀온 여행지를 수도 없이 반복해 다녀올 수도 있고, 남들이 안 가는 곳만 골라서 여행하기도 한다. 여행 덕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행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미 위시빈(www.wishbeen.co.kr) 같은 앱이 여행 덕후들을 위한 여행 일정 공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덕후의 '덕력'을 비즈니스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유하고, 공감하고, 즐기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맥도널드에서는 어린이용 세트 메뉴 해피밀을 사면 장난감을 준다. 몇몇 해피밀 세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에게서 인기를 얻은 것인데, 지난 2014년 출시됐던 마리오 해피밀 세트는 3일 만에 주문이 동날 정도였다. NHN의 메신저 라인(LINE)은 전국과 해외 곳곳에 이모티콘 캐릭터 숍을 열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누적 방문객이 2000만 명에 달한다고 하고, 주요 캐릭터 상품 인형 하나가 20만 개가 팔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덧붙이는 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덕질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좋아하는 도시, 좋아하는 브랜드를 소유하기 위해서 굿즈를 사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좋아한다는 사실, 그것을 소유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나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손에 넣기 어려운 굿즈를 긴 줄을 서서 얻은 기쁨을 나 혼자만 간직할 수는 없다. 내가 이 대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SNS에 공유하며 자신을 증명하고,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소통한다.


 덕후를 주제로 한 글을 읽으면서 '크라우드'가 떠올랐다. 크라우드 소싱, 크라우드 펀딩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배경에도 덕후 기질이 작용한다. 사람들은 킥스타터(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아직 세상에 출시되지도 않은 물건, 즉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물건에 기꺼이 많은 돈을 투자한다. 단지 그것을 가장 먼저 갖기 위해서. 덕후들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제품을 돈 주고 살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크라우드 소싱과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야겠다. 아주 중요하고 넓은 주제이므로!


Reference

DBR no. 199 (special report _ '오타쿠'와 달리 '덕후'는 공감중시, 스타벅스 다이어리처럼, 장을 펼쳐줘라,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meinen.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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