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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Apr 01. 2017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

그는 간절했다.

바에서 잠깐 일했을 때의 이야기다.


변호사 사무실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 있는 바인 'Against The Wind'의 일과는 저녁 6시 반에 시작한다. 구성원은 단출하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정통 칵테일을 맛 보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엘리트 코스를 때려치운 두 바텐더. 그리고 서빙과 손님들과의 말동무를 책임지는 나. 입소문을 타면 맛이 변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단골 위주로 영업하는 우리 바의 특성상 여럿이 무리 지어 오는 것보다는 혼자 혹은 두 명이서 오는 분들이 제일 많았다. 덕분에 몇몇 단골들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안면을 텄다.


그중에는 박 변호사가 있었다.


카더라 소문으로는 이쪽 근방에서 성공한 변호사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그의 첫인상은 수수함 그 자체였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벌이와는 맞지 않게 그리 비싸 보이지 않은 양복을 입고 가게에 처음 등장했다. 첫 칵테일로 진 토닉을 받고 나서 그는 내가 군대 간 아들과 닮았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매번 혼자 왔다. 칵테일 혹은 위스키를 주문하고는 책을 꺼냈다. 가끔 사건 기록이 가득한 파일을 훑어보는 때가 있었지만 그때뿐이었고 그 후에는 어김없이 문학 책을 꺼냈다. 피츠제럴드부터 쿤데라까지. 박 변호사는 문학에 조예가 꽤 있어 보였고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자주 대화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난 박 변호사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갔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가족 이야기를 간혹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곧 하던 음악, 문학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는 주량에도 정도를 지켰다. 매번 올 때마다 그는 오래 있었지만 많이는 마시지 않았다. 대개 김렛 한 잔, 많이 마실 때는 거기다 진 토닉 한 잔을 더 마셨다. 한데 그날의 박 변호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위스키를 세 잔째 마신 후 김렛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취기가 완연해 보였다. 내가 알고 자주 보았던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걱정이 됐는지 바텐더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계신 박 변호사님 너무 과음하시는데 좀 걱정되네요. 한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변호사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해보셨잖아요." 


"아, 네. 그러면 조심스럽게 가서 한번 이유라도 여쭤볼게요." 


작은 바에서 박 변호사가 있는 테이블까지는 대여섯 걸음 정도면 충분했다. 난 조용히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칵테일은 입에 맞으신가요?"


"아, 네.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런데 뭐 물어보실 거라도..?"


"앗, 오늘따라 과음하시는 것 같아 무슨 이유라도 있나 여쭤보려 했어요."


"그럴 만한 날이에요. 오늘은 이러는 편이 마음이 편하네요. 허허.."


"괜찮으시다면 무슨 일이신지 들을 수 있을까요?"


"바쁘신데...."


"어유, 제가 이러려고 일당 받습니다. 말씀해 주시면 저야 기쁜 일이죠."


이런 이야기 잘 하지 않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던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 이야기라고 미리 경고 삼아 말했지만 워낙 인상적이었던지라 더없이 짧아 보였다.


20여 년 전 그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고시생이었다. 같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과 동기 중 가장 친했던 친구는 영수라고 하는 친구였다. 영수는 사업하는 아버지 덕에 집이 여유가 있었고 박 변호사는 집에서 부치는 돈으로는 충분치 않아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서로의 형편을 알고 있던 영수는 박 변호사가 기분 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씩 밥이나 술을 사주곤 했다. 둘은 사는 이야기를 했고 서로의 슬픔을 나눴다. 수많은 희망과 절망이 반짝거리던 그때의 신림동 고시촌은 조금이나마 그 둘에겐 조금이나마 더 따뜻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기대감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박 변호사의 표정은 점점 초췌해졌다. 어찌어찌해서 방세와 식비는 낼 수 있었지만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책을 살 돈이 없었다. 고민하던 그에게 어느 날 영수가 찾아왔다. 책 한 꾸러미를 들고서.


"괜찮겠어? 다 좋은 책들인데..."


"응, 난 이미 다 본 책이라 필요 없어. 너 가지고 싶으면 가져."


5년을 고시에 목 맨 고시 장수생이었던 그땐 책 한 권이 간절했고,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맙다는 말 몇 마디와 함께 영수의 책을 받아 챙겼다. 집도 잘 사는 편이고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진 녀석이니 보다 이미 필요 없어서 책을 준 거겠지. 하고 말이다. 


영수의 책 나눔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분명 어렵게 모으고 고이 간직했음이 분명한 법 판례집부터 족보까지. 그러한 책들을 영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박 변호사를 만나 직접 선물했다. 처음과 같이 난 다 봐서 필요 없다는 말과 같이. 박 변호사는 그 책들을 야금야금 먹어치웠고 다음 해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법고시 합격 이후 박 변호사는 친구 건너 영수가 한참 전에 사법고시를 포기했고 이미 일반 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업을 하던 영수의 아버지의 사업이 IMF 위기 후 휘청거렸고 영수에게 지원하던 돈도 줄어들었다. 영수는 끝내 고시촌을 떠났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시간을 세 보았다. 영수는 그에게 책을 처음 줬던 그때 이미 사법고시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에겐 자신이 취직했다는 소식을 박 변호사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박 변호사는 그제야 영수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더 뛰어났다고 생각했던 영수가 사법고시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박 변호사까지 무너질까 봐, 그리고 책 살 돈 한 푼이 아쉬웠던 그의 형편을 영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양복 대신 고시 공부할 때 입던 내복을 입고 박 변호사를 찾아가 책 한 권, 한 권씩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 날 박 변호사는 눈물을 흘리며 성공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성공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영수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지금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너무나 낮고 초라해 보였다. 더욱 나은 모습으로 영수를 만나고 싶었다. 떳떳하게 그를 훗날을 위해 그는 영수에게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연수원 수료 이후 변호사로 일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근래 영수 생각이 자주 났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는 은혜를 갚을 만큼의 능력과 돈이 있다고. 연락처는 알고 있으니 주말쯤 연락을 해보기로 하고 서류를 검토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영수가 췌장암 말기라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늦게 들은 것도 영수의 부탁 때문이었다. 박 변호사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영수는 괜히 나 때문에 박 변호사가 마음고생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사정을 아는 친구들에게 박 변호사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극구 부탁을 했던 것이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영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냥, 그 녀석에게만큼은 내가 초라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


박 변호사는 소식을 듣자마자 영수가 있다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들은 삼성서울병원의 암 병동에서 10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병동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난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군대 입대하는 것처럼 머리를 다 깎은 영수를 마지막으로 본 그때로 다시 돌아가기라도 한 듯 그는 말없이 허공만 바라봤다. 무슨 일이 난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영수가 떠난 지 6년이 지났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이 떠나 생계가 어려워진 영수의 미망인은 다달이 박 변호사의 로펌에서 나오는 돈을 받는다. 영수의 자녀들은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영수에게 받은 도움의 아주 일부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매년 그의 기일날 그는 일을 잠시 쉬고 그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올해는 이곳에서 보낼 것 같다고 그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변호사님은 지금 뭐를 가장 바라고 계신가요?"


"허허... 바랄 것이 더 있나요. 그 녀석이 그곳에서도 웃고 있어 주길. 아프지 말아주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난 날 용서해주길.. 끊임없이 빌고 또 비는 것이 제가 바라는 전부지요.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지만..."


무슨 생각이었을까. 난 박 변호사 옆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뭐 하시는 건가요?"


"그냥요, 오늘만큼은 변호사님 옆에서 그 친구분이 잘 지내시길 함께 빌고 싶네요."


박 변호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실눈을 뜨고 힐끗 옆을 보니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중얼거림은 간절해 보였다.

 

나갈 때 박 변호사는 나를 포함한 바텐더 모두에게 악수를 청했다. 내 차례가 되자 박 변호사는 투박한 손으로 내 손을 덮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그의 손은 따스했다. 그리고 약간의 취기가 섞인,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우리 바의 특징 중 하나는 손님 한 명이 가실 때마다 모든 직원들이 문 밖까지 배웅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밖에 나와 박 변호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았다.


때마침 빌딩 사이를 타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취기를 가누지 못했는지 박 변호사는 얼마 가지 못하고 지그재그로 걸으며 비틀거렸다. 옆에 있던 바텐더 형이 가서 역 앞에까지라도 잡아드려야 하나.. 하고 혼잣말을 하는 사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걷던 그가 딱 멈추더니 잠시 후 완벽한 일자형으로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옆에서 그를 잡아주듯 그는 매서운 바람을 뚫고 쭉쭉 나아갔다.


그때 난 그의 옆에서 영수 씨를 본 것 같다. 그가 쓰러지지 않게, 그가 넘어지지 않게 꽉 잡고 있는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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