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시야비(視野費)

경험에 돈을 아끼지 않기로 한 이유

by 빙하밑
해외여행이 시야를 넓혀준다고?
말도 안 돼


대학 시절,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미국을 다녀온 친구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야, 진짜 해외여행은 시야를 확실히 넓혀주더라. 너도 꼭 가봐."

친구의 눈은 진심으로 반짝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저 첫 해외여행이 너무 즐거워 한껏 고조된 기분 탓이라 여겼다.


당시의 나는 당장 떠날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에 그 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의 '신포도'처럼 느껴졌던 탓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근본적인 회의감이 있었다.

고작 며칠 낯선 땅을 밟고 온다고 사람이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나?


그때 내가 간과했던 건, 여행이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결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낯선 곳을 향해 준비하고 설레는 과정,

그리고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맨몸으로 부딪히며 해결해 나가는 그 모든 순간들.

그 총체적인 경험이 데이터처럼 축적된다는 것을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내게 여행이란 '남들 다 하니까 하는 숙제' 같았고,

반복되는 구경과 먹거리에 금세 흥미를 잃곤 했다.



경험이라는 자본: '써본 사람'이 유리한 이유

그런데 연차를 먹은 서비스 기획자가 된 지금, 문득 조금은 위험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결국 부자가 일을 더 잘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부(富)는 단순히 통장 잔고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바로 확보해 둔 경험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유저의 사용 맥락을 상상해야 하는 기획자에게, 내가 직접 겪어본 세상의 넓이는 곧 기획의 디테일이 된다.


하이엔드 서비스를 온몸으로 겪어 본 기획자가 더 높은 수준의 UX를 제안할 수 있고,

다양한 환경에서 돈을 써보며 불편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유저의 니즈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 해본 걸 상상하는 것'과 '해본 걸 응용하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경험의 양보다 중요한 '인사이트의 의지'

물론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타고난 부자만 일을 잘한다거나 무조건 비싼 경험을 하고 돈을 펑펑 써야만 실력이 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경험의 부자'가 되는 방법은 분명 있다.


그것은 바로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관찰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비싼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출근길 지하철의 혼잡한 동선,

동네 편의점의 진열 방식, 무심코 쓰는 배달 앱의 버튼 위치까지.

의지만 있다면 세상 모든 곳이 무료 배움터다.


똑같이 스포츠 경기를 봐도 누군가는 전광판의 승패만 보지만,

기획자는 팬들이 열광하는 지점, 경기장의 입장 프로세스, 굿즈 샵의 동선 같은 '맥락'을 읽어내려 애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험의 가격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의지다.

왜,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느냐 ㅎㅎ


해석하려는 눈을 뜨고 하는 경험은 단순한 소비나 탕진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R&D 투자가 된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라이브러리에 접속하다

일상에서 관찰의 근육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비에 대한 기준도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낯선 경험에 지불하는 비용에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했다.


예전에는 '굳이?'라며 지나쳤던 스포츠 직관이나 낯선 커뮤니티 모임에 발을 들이는 이유도 같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그곳의 서비스는 유저를 어떻게 대접하는지 직접 ‘데이터’로 수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의 관찰이 '기본기 훈련'이라면, 비용을 지불하고 떠나는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실전 응용'인 셈이다.


이제 나에게 새로운 경험은 소모적인 행위가 아니다.

익숙한 환경에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세상이라는 거대한 라이브러리에 접속해 기획의 재료를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경험의 가치는 '어디에 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려 했느냐'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비단 기획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빈 캔버스를 채우는 예술가, 코드로 문제를 해결하는 개발자,

타인의 삶을 낫게 만들려는 모든 창작자에게 이 마인드셋은 유효하다.


창작자의 시야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의 크기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내 안의 데이터가 한정적일 때, 우리의 결과물은 익숙한 것들의 복제품에 머물고 만다.


지금 당장 내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낱개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내가 만들 결과물의 결정적인 '디테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대학 시절 친구가 말했던 '넓어진 시야'의 진짜 의미를,

비스를 만드는 기획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해석하려는 의지를 품고 세상에 접속하는 한, 우리가 지불하는 모든 ‘시야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거창한 결론을 내리려는 건 아니다.

그저 연차가 쌓이며 '경험'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고민하던 어느 기획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일 뿐이다.

다만 오늘 스쳐 지나가듯 든 이 생각이 맞다면,

앞으로 내가 마주할 낯선 세상들이 조금은 더 설레게 다가오지 않을까.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하면, 낯선 곳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