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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Sep 14. 2018

아줌마력

나는 예전에도 같이 다니는 단짝이나 무리를 두지 못하고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고집스럽게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수업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얼굴만 아는 사람에게 눈인사를 하거나 생판 모르는 옆 사람에게 말을 곧잘 붙이곤 했다. 또 귀가 얇아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편이라 친구와 쇼핑을 하면 친구가 강추하는 물건을 사고 와서 집에 와서 후회하는 일이 몇 번 있었기에 언제부턴가 쇼핑은 꼭 혼자 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이미 20대 초반부터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옆에 계신 아주머니 같은 분에게 불쑥 물었다. "어때요? 이 색깔이 저한테 어울려요? 저게 나아요?" 그러고 나서는 그 아주머니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오면 세심히 평가해 주기도 했다.  

어쩌면 자발적으로 고독을 택했지만 혼자 오래 도시를 떠돌다 보니 입이 심심했을 수도 있고, 순간만이라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년이 되어서도 혼자 지내는 습관은 여전해 카페에서 만날 동네 친구 하나 없으나 엉뚱한 순간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이는 능력은 점점 늘어만 갔다.

과일 사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옆 손님에게 "이거 제가 먹어 봤는데 맛있어요." 하기.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으러 갔다가 자전거 포 주인아저씨와 자전거 코스에 대한 대화 나누기.  

사우나에서 몇 번 본 어머니를 약국에서 만나자 반가워서 무릎까지 꿇고 그 아주머니의 다리에 난 상처를 한참 바라보면서 "그렇게 심하진 않네요." 말하고 그분이 "누구더라?"라는 표정을 지으면 "사우나의 삐쩍 마른 애 엄마요." 하면서 하하하 웃어버리기. 달리기 하다가 마라톤 클럽 모임이 보이자  물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으로 얼쩡거리면서 "이거 무슨 클럽이에요?" 물어보기. 시장 할머니들과 요즘 날씨가 어떻고 호박이니 파값이 어떻고 하며 이야기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나는 아줌마의 힘, '아줌마력'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럴 때마다 오늘도 아줌마력 발휘했군, 이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아줌마력은 꼭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이고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일 가게에서 귤이나 자두를 하나 얻어서 집으로 오면서 먹기, 고속터미널에서 산 옷도 얼굴에 철판 깔고 교환하기, 작업실 옆 부동산 할아버지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당당히 말하기 등도 포함되기에 나에게 매우 유익하며, 세상을 덜 두렵게 만드는 생활 방식이기도 했다.  


거침없어지고, 목소리 커지고, 오지랖이 느는 것이 나이 듦의 특징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은 나의 어렸을 때부터 존재했던 엉뚱하고 재미있는 성격의 한 단면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나잇살도 찌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싱글 친구들과 홍대를 누비고, 아이돌 신곡을 찾아 듣고 나의 정신과 나의 언어도 아직은 아줌마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어쩌면 일부러 '아줌마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나는 세상이 말하는 통상적인 아줌마스러움과는 다르고 그 특징 하나만 발달한 것일 뿐이라며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했을 수도 있다.


어제는 하나 사면 13000원이지만 두 봉지를 사면 20000원이라는 어묵 세트를 들고 계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 앞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등이 굽고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진한 파운데이션과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내 생각에) '반포 시할머니' 스타일의 할머니가 서 계셨다. 이 할머니는 약간은 수다스럽고 친절한 할머니인 것 같았는데 계산 중에도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들고 있는 봉지를 보더니 "이 어묵이 진짜 맛있어."라고 말을 거신다. 나는 이럴 때 잉? 나에게 말을 시킴? 하면서 멀뚱한 표정으로 가만있지 않는다. "네. 중학생 딸아이 간식 주려고요."라고 바로 대답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최고지" 하고 양 손 엄지 손가락까지 들어 보였다.

그 화답에 괜히 즐거워져서 속으로 "오늘도 아줌마력 1 적립"이라고 중얼거렸다.  


집에 와서 잡곡을 섞은 쌀을 씻어서 불리려고 일단 밥통에 넣어두고, 멸치 육수를 올려놓고선 이 시간쯤이면 아파트 현관 입구로 찾아오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나갔다. 대충 잡히는 대로 입은 옷은 발목까지 오는 롱스커트에 굴러다니는 티 쪼가리였다. 고양이가 나를 반긴 듯이 꼬리도 흔들고 야옹야옹 하자  바로 롱치마의 앞부분을 움켜 잡고 쪼그려 앉아서 고양이에게 밥을 부어주고 쩝쩝거리며 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에구 이쁘다. 배고팠니? 남은 것 잘 먹어. 그럼 아줌마는 밥 하러 갈게."

그리고 끙하고 일어나면서 방금 내 입에서 나온 '아줌마'라는 단어가 이제까지 내가 나를 향해 사용하던 아줌마와는 다름을 느꼈다.  

이것은 내가 거리를 두려고 만든 단어인 아줌마력과, 아줌마라는 존재의 모든 속살과 실체로서의 아줌마가 정확히 일치한 순간이었다.

밥하다 나와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동이 그렇게까지 아줌마스러울 것도 없건만, 이때 내가 고양이 앞에서 아줌마로 나를 지칭하면서 나는 드디어 제대로 완성된 진짜배기 아줌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내심 순순히 인정하고 있던 사실을 나도 모르게 고양이에게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늙음이, 세월이 야속하다거나 자기 비하적인 생각이 한 조각도 끼어들지 않았다는 점, 오히려 집까지 깡충깡충 뛰어가고 싶을 정도로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는 점에서 나도 조금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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