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 출간 후의 무리한 스케줄(이라기보다는 인터넷 판매 지수 확인과 후기 확인과 트위터에서의 호들갑으로 바쁜 나날) 속에서 급하게 3박 4일 홍콩 마카오 여행을 다녀오고 동영상 인터뷰를 하고 작업실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편도선이 부으면서 몸살이 나의 몸을 전격 방문했다. 신음이 나올 정도로 근육통이 오고 이불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지만 나는 되도록 남편과 아이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병원에 다녀와 약을 꼬박꼬박 먹었다. 나는 이런 나의 행동이 내 어린 시절, 지금의 내 나이 즈음에 항상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엄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안다. 아빠가 벌려놓은 식당과 가게를 실제로 책임지며 세 딸을 키우던 엄마는 어딘가가 항상 아팠다. 오늘은 다리가 아프고 그다음 날은 머리가 어지럽고 그다음 날은 속이 쓰렸다. 엄마가 100포기의 김장을 하거나 대청소를 하고 나면 우리는 예의 그 아프다는 하소연을 들으며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다리를 발로 밟아주고 진통제를 사다 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어디가 구체적으로 아픈지 묻던 우리도 가끔은 제발 엄마가 병원에 가던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으면 싶었다.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준다고 낫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솔직히 아프다는 말을 듣기 지겹다고. 나는 타고난 건강체이기도 하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 중년이 되어도 몸이 아플 일이 없었지만 어쩌면 어린 시절 다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중에 아프다는 말로 식구들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아내와 엄마가 되겠다고.
아픈데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이불속에서 끙끙 앓으며 나는 알콩이를, 철창 안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알콩이를 떠올렸다.
어느 날부터 밥을 안 먹던 흰색 햄스터 알콩이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살펴보니 다리에 큰 상처가 나 있었다. 그전에 키우던 햄스터의 낡은 햄스터 집의 튀어나온 철사 부분에 다리가 걸리며 다리가 찢어졌고 털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햄스터는 찍찍거리지 않았고 전보다 오히려 더 조용했기에 몰랐다. 그저 점점 작아지는 몸을 더 작게 웅크리고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햄스터 같은 약한 동물은 아프면 표시를 내지 않는다고, 스스로 물과 먹이를 거부하면서 죽을 날을 기다린다고 한다. 나는 바로 소동물 병원을 찾았다. 인근에는 없었고 강남 신사동에 괜찮은 소동물 병원이 있다고 해서 상자에 손수건과 톱밥과 해바라기씨 몇 개를 깔아 두고 알콩이를 넣은 후 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로 향했다. 고급 가구점과 외제차 대리점이 늘어선 골목을 한참 걸으니 펫 병원이 있었다. 친절한 여의사는 알콩이가 많이 아프군요, 알콩이가 다리에 상처가 났네요. 알콩이가 아팠겠어요, 하면서 햄스터라고 절대 안 하고 이름을 부르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사실 완전한 회복은 약속할 수 없다고 했고 그래도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넥 카라를 씌워주었다. 세상에 그렇게 작은 넥 카라가 있었다니.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싶을 정도로 신기하고 귀여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알콩이가 죽을까 봐 너무 걱정되어 그럴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회복하는 듯하던 알콩이는 또다시 밥과 물을 거부했고, 나는 또다시 병원에 달려갔다. 가는 길 알콩이가 혹시라도 죽었을까 봐 버스에서 몇 번이나 손을 넣어서 체온을 확인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남편은 알콩이 이야기를 듣더니 그냥 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지 않았냐고. 마트에서 5천 원 주고 산 햄스터 아니냐고. 억 단위로 떨어진 아파트의 대출금을 갚고 있던 그가 병원비를 들었다면 기절초풍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번 갈 때마다 7만 원, 5만 원씩 하는 병원비를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콩이가 밥을 먹는지만 집중했다. 알콩이의 얼굴은 점점 세모가 되어갔고 뼈가 만져졌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거의 포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유동식을 주사기에 넣어 먹여보라고 했다. 그 유동식을 조금씩 받아먹는 게 신기해 먹이고 또 먹이고 틈만 나면 먹었다. 어느 날은 잘 먹고 어느 날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알콩이를 체크하고 체온을 확인하며 병원을 오가던 2주일 정도가 흐르고, 알콩이의 붕대를 풀었을 때 의사와 나는 알콩이의 한쪽 발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말끔하게 발이 떨어지고 보드라운 핑크색 발목만 남았다. 그리고 집에 온 알콩이는 다시 살이 올랐다.
다리가 세 개인 햄스터 알콩이는 얼굴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얼마나 순했는지 모른다. 털은 얼마나 새하얗고 보드라웠는지, 침대 위를 뽈뽈뽈 뽈 기어가는 모습을 딸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장애를 전혀 의식 못하며,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던 발 빠른 알콩이는 우리와 1년을 더 살다 갔다.
아, 우리가 여행 갔을 때 시댁에 맡겼는데 시어머니가 햄스터를 하나 더 마련해 달콩이라 이름 붙여주고 같이 키우기도 했다. 알콩이와 달콩이는 알콩달콩 지냈다.(그러나 달콩이는 우리가 알콩을 데리고 오자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후 죽었다고 한다.)
그 뒤로 우리는 햄스터를 키우지 않았다.
래브라도 레트리버 말리와 사랑스러운 부부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그린 <말리와 나>라는 책을 다 읽고 나는 말리라는 개의 영혼이 그로건 가족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되었주었다고 혼자 믿었다. 책을 읽어보면 말리는 정말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개다. 폭풍이 칠 때마다 집을 초토화시키고 목걸이를 삼켜 버리고, 식당 테이블을 엎고 난장판을 치는 것이 일상이다. 어느 날 임신으로 몸이 힘들었던 아내는 도저히 말리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리를 버리겠다고 말했다가 다시 울면서 말리를 받아들인다.
나는 말리 가족의 끝없는 인내심과 사랑에 놀랐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하늘나라에서 이 가족을 내려다보던 말리가 책을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주고 그로건 가족을 부자로 만들어줬다고, 이 가족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사운드 오브 뮤직 OST의 <Something Good>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Perhaps I had a wicked childhood
나는 말썽 부리던 어린 시절을 보냈고
Perhaps I had a miseable youth
불행한 청년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Somewhere in my youth and child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그 시절에 나도 착한 일을 하긴 했었나 봐요.
Nothing comes from nothing,
Nothing ever could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나오진 않으니까요.
...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당신을 사랑하게 되다니) 나도 착한 일을 하긴 했었나 봐요.
나도 나름대로 아프고 가난하던 시절이었던 건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사기에 유동식을 넣어 한 입씩 먹여 살려낸 알콩이.
나도 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나쁜 짓도 했고 이기적이고 못돼먹게 군 적도 수없이 많았지만 살면서 적어도 한 가지 착한 일을 했다.
요즘에 솔직히 많이 기쁘다. 어쩔 때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볼을 꼬집고 싶을 정도로. 내가 이렇게 넘치는 복을 받아도 되나 할 정도로. 독자들이 책을 사랑해줘서. 나는 작가의 꿈을 드디어 이루어서.
(그러나 애써 담담한 척하고 있다.)
그리고 아픈 척하지 않으며 아팠던 그 날, 생각했다. 혹시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긴 건 알콩이 때문인가. 알콩이도 나를 사랑했었나?
왜냐하면 알콩이는 우리 집에서 짧지만 행복하게 잘 살다 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