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처음처럼'
길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이 황홀한 여행
'항상 초보'라는 정신적 각성이 되어있는 사람들은
어제의 자신과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좋은 학생이다.
불가에서는 초심을 강조하고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세를 높이 산다.
'처음처럼'
이것을 발심(發心)이라 한다.
늘어지고 관성화한 자신을 채찍질하고
처음 출가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본형의 < 사람에게서 구하라 > 중에서
마치 읽어나간 책장을 세듯이 지나온 시간을 세고 있을 때,
흡사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하듯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있을 때
우리는 평화에서 멀어집니다.
책을 펼쳐들었을 때, 여행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과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나를 기다릴 혜택들만이 중요해집니다.
'이 정도 했는데 좀 대충 한다고 별일 있겠어?' 하는
오만과 나태,
'이 고생을 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초조로
지금 여기는 순식간에 꽉 차버리고 맙니다.
살림명상은 바로 이런 상태에 빠진 자신을 구해내
'지금 여기'에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오는 수련입니다.
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발심'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합니다.
다 알겠지만,
세속인인 우리가 꼭 스님들처럼 살 필요는 없는 거 아니냐구요?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면 됩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겠죠?
생활인의 자기혁명을 평생의 화두로 삼으셨던 구본형선생님께서
마침내 구도자의 삶을 사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소재로 글을 써서 무지무지 유명해지고 말겠다는,
그러니까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의 성공을 둘 다 완벽하게 이뤄내겠다는
대놓고 세속적인 욕망에서 이 모든 여정을 시작했던
제가 결국은 '명상'에 이르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일테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수련'이 아니라 '성공'이라고!!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오로지 '성공'하고 마는 것이라고!!"
하는 당신이 계신다면
부디 꼭 그리 되시라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을 보냅니다.
그렇게 '지금 여기'에 충실한 수련을 통하지 않고도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보여 주신다면
저도 미련없이 보따리를 싸서 그 길에 합류할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당신의 성공이 완전히 검증될 때까지는
(좀 더 솔직하자면, 설사 그리 된다고 해도)
'지금 여기'에 '처음처럼' 머무는 수련을
게을리 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여기에 발 딛고 있는 길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이 황홀한 여행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