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해야할 폼나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고 시시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살림을 모른 척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답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핵심은 하나.
'좀 더 나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일거예요.
그런 열망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들을 우리는 흔히 '자기계발'이라고 하죠.
아니 무슨 물건을 비우고 소소한 활동이 '자기계발'이 되느냐구요?
경력개발이나 교양함양
뭐 이런 쪼금은 더 폼나는 활동 정도는 되어야
'자기계발'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구요?
그래서 오늘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기계발 작가로 알려진 구본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기계발의 일곱가지 강령이라는 글꼭지를 뽑아왔습니다.
자기계발 강령 일곱 가지
1. 자신의 기질과 재능을 찾아내라.
자신이라는 수수께끼와 퍼즐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내면적 자산을 활용하지 않고는 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노력의 팔 할을 자신의 특성에 집중하라.
자신의 특성 중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특성을 활용하라.
특성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것은 없다.
타고난 기질과 재능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 즐기고 활용하라.
신의 선물이다.
그러나 노력의 이 할은 치명적 약점을 보완하는데 써라.
적어도 그 치명적 약점이 강점을 상쇄하는 일이 없도록 다듬어라.
3. 하루 한 두시간의 해방구를 만들어라.
바쁜 사람은 노예다.
자랑할 일이 아니다.
오늘 가진 내 시간의 일부를 미래를 위해 투자할 때 그것은 나의 '연구 개발(R&D)비'가 된다.
그러나 오늘 나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의 R&D는 0퍼센트다.
미래가 오더라도 나아지는 것 없이 그저 흘러간 시간만큼 늙어 있게 될 것이다.
4. 매일 해야 이룰 수 있다.
시간을 낼 때는 매일 정해진 곳에서 가장 순도 높은 시간을 자신에게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에 가장 잘 맞는 시간대에서 매일 시간을 꺼내 자신을 위해 훈련하라.
5. 독학 없는 배움은 없다.
혼자 공부하는 법을 즐겨야 한다.
[논어]의 첫 줄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인 이유를 잊지 말자.
6. 스승을 구하고 파트너를 찾아라.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는 [논어]의 두 번째 구절이다.
벗은 수평사회의 상징적 의미다.
서로가 서로의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동지가 되고 건강한 경쟁자가 되는 새로운 관계를 체득하라.
같은 길을 걷는 다섯 명의 스승과 동지를 얻어라.
7.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라진다.
하루는 음식과 같다.
먹으면 사라지는 것이 음식이듯이 하루는 한끼의 식사와 같다.
먹는순간 음미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하루를 얻으면 현재를 얻는 것이다.
기록된 하루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록되지 않는 하루는 모두 같아 구별되지 않는다.
기록하라 날마다 그 독특한 맛을 찾아 적어두어라.
그것이 개인의 역사다.
구본형의 <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 중에서
매일, 홀로 한 간단한 비움활동(공간/돈/몸/일)을 기록해
도반들과 함께 나누도록 설계된 '살림명상 프랙티스'는
적어도 4~7까지는 완벽하게 자기계발의 강령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 자신의 기질과 재능을 찾아내라.
2. 자신의 노력을 강점과 약점에 8대2의 비율로 투자하라.
3. 하루 두시간은 확보하라.
이 세가지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구요?
첫째 기질과 재능, 그러니까 본연의 자기 모습을 찾아낸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것들을 덜어낸다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야기입니다.
군더더기를 비워내는 수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둘째 강점 8 약점 2의 비율로 노력을 투자하라.
살림은 우리의 약점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기질과 재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살림'의 가치가 폄훼되온 문화적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뭐가 되었던 우리는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비롯한 방치된 살림살이들이
나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알아차렸습니다.
그렇다면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돌보고 살피는 수 밖에요.
셋째 하루 한 두시간의 해방구를 만들어라.
이 강령은 다른 강령보다 약간의 부연설명이 더 필요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제가 바로 요 문턱에 유난히 자주 걸려넘어졌다는 의미이겠지요? ^^;;)
오늘 가진 내 시간의 일부를 미래를 위해 투자할 때
그것은 나의 '연구 개발(R&D)비'가 된다.
'미래'는 우리가 흔히 오해하기 쉬운 단어입니다.
여기서의 '미래'는 발견되지 않은 현재를 의미합니다.
너무 바빠 미처 알아차리지 못 했던 '지금 여기의 나'를 말합니다.
아무리 엄청난 것들을 이루고 가져도 지금의 나를 누리는 여유를 누릴 수 없다면
그 모든 것은 그저 쓰지도 않으면서 방치하는 잡동사니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는 것은
지금 여기의 있는 그대로의 나와 충분히 만나라는 의미였던 겁니다.
지금 여기 나를 품어주고 있는 이 공간에 내가 선택해 머물고 있는 물건들을 만나는 것은
평범한 우리가 '지금 여기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죠?
그것이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위해 '한 두 시간'을 쓴다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물론 하다보면 기꺼이 시간을 쓰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통제의 영역이 아닙니다.
시작단계에서 우리가 낼 수 있는 힘은 아주 작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루에 딱 3개의 물건을 비워내는 실천 정도면 충분하고 충분합니다.
'해야 할 일'을 충분히 마치고 났으니 '하고 싶은 그 일'에 마음 편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애개, 눈에 보이는 일거리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겨우 3개씩 비워내서 무슨 변화가 가능하겠냐구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보면 아실 거예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실천'이 마법의 키라는 것을요.
속는 셈치고 한달만 해보면
'맘잡고 확', '하는 것처럼' 해내고 싶은 바로 그 욕심이야말로
이제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건드리기 어려울 만큼 일거리를 쌓이게 만들었던 원인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길이 없어지실테니까요.
이제 살림이 완벽한 자기계발이라는 제 주장이 납득이 되시나요?
아직은 아니셔도 좋습니다.
이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체험의 영역이니까요.
하루하루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고 맛보는 시간이 쌓여가다보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 활동들을 사랑하게 되실테니까요.
우리가 흔히 쓰는 '자기계발'의 진짜 의미가
스스로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자기돌봄'과 다르지 않으며,
이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게 된
'자기돌봄'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나 아닌' 군더더기를 덜어낸 '진짜 나'를 살리는 과정, 그러니까 '살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실테니까요.
https://youtu.be/Il80l-m_gbs?si=RedDIhAAPU1H2DK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