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나 하고 있을 땐가?'하는 생각이 올라올 때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소중한 그 것?

by 아난다
현실을 자세히 보라.
디테일이라고 하는 촘촘한 그물망 속에
내가 보인다.
내가 아닌 것들과 나인 것을 구별하라.
나인 것이면서 세상이 요구하고 있는 기대된 나를 연결하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재창조하라.

내가 만들어낸 최고의 나를 꿈꿔라.
지금의 나와
유토피아 속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를 만들어라.
시간을 내어 매일 이 다리를 건너라.
유토피아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이정표를 확인하라.

<구본형의 필살기> 중에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행은 무엇일까요?

여행시장 자체를 휘청이게 하는 코로나 19라는

재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더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여행은

아마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내 꿈의 첫페이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정체불명의 비싼 워크샵을 신청했지만

막상 참가비를 이체하려는 순간이 되자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 싶었습니다.

어둡고 쿰쿰한 지하세계의 입장권을

사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물론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젖먹이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가

크리스마스가 낀 2박3일간 통으로 집을 비울 명분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필수 직무역량개발 연수쯤으로 둘러댔던 기억이 나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눈만 뜨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더라구요.

심지어는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광고에까지도

'자기다움' '자아탐색'이라는 키워드가

심심치 않게 쓰이고 있으니까요.


나를 찾으려면 이 제품을 써봐.
이 제품으로 자기다움을 표현해 봐.


하는 메시지가 아무래도 어이없게 느껴지긴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니

'진짜 나를 알고 이를 표현하고 싶은 열망'이

그만큼 보편적 수요가 되었다는 반증인 듯해

반갑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깊은 나에 대한 그리움'이

식욕이나 수면욕만큼이나

보편적인 욕망임을 받아들여가고 있다는

이야기 일테니까요.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에게 깊어질 수 있는 이 아름다운 기회가

오히려 우리를 무겁게 하는 짐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것이

세계일주를 하고,

천 권의 책을 읽고,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등등

현실과 동떨어진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 일거라는 오해는 우리를 자꾸만 위축되게 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나를 사는 것에 지쳐

진짜 나를 찾아보고 싶었던 건데,

방향만 바뀌었을 뿐 어차피 넘사벽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나는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나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보잘 것 없게 느껴집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유행어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망한 것이 나만은 아닌 모양이라는 안심만이

이 팍팍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의지처가 됩니다.


어찌 그리 잘 아느냐구요?

바로 제 얘기니까요.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려고 바둥바둥거렸지만

결국 찾아 헤매는 '나'는 안보이고

자꾸만 후지고 찌질한 저만

지치지도 않고 나타나더라구요.


10년을 헤맸는데도

(이제는 무슨 관용구 같죠? ^^;;)

못 찾았으면 없다는 거잖아요.

포기할 때가 됐다는 얘기잖아요.

그렇게 현실이 아닌 그 어딘가에서

나를 찾아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나자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지난한 여행 중에도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었던 나의 '현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의 있는 그대로의 나.

그토록 애타게 찾던 나는

그 어디가 아닌 이곳에

늘 함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치 평생을 나무궤짝 위에 앉아

구걸로 근근히 연명하던 거지가

그 구걸조차 어려워지고 나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어나 처음 열어본 궤짝에서 금은보화를 발견한 것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제 궤짝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다 보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너무 오래 돌보지 않아 유통기한 지난 것도 많았고,

고장나고 시들어버린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모두 지나온 어느 시간 속에서

심사숙고한 끝에 선택한 최선들이었습니다.

그 최선들을 하나 하나 살펴가는 과정에서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알아차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선택들은 과거의 나를 말해주었고,

미래를 위한 보물들은

내가 이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이라는 '현재'의 보물은

과거와 미래 속에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을 정성스럽게 골라 내 주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내내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미래를 덜어내는 순간의 통증을 기쁨으로 느끼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수련의 근육이 쌓여가면서

그릇에 담기지 않는 물을 마시기 어렵듯이

몸에 담기지 않는 과거와 미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님을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딱 그 받아들임의 깊이만큼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맞은 기쁨과 평화는

제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 유토피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중입니다.


심사숙고해 선택한 살림명상이지만

'내가 지금 이런 거나 하고 있을 땐가?'하는 생각이

수시로 올라옵니다.

더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여기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버리고

꼭 해야하는 일이 뭐야?

꼭 하고 싶은 일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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