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직장과 예쁜 아이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여름휴가의 첫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늦은 모닝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있던 참이었다. 휴대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직장후배였다. 후배라고는 해도 구내번호만으로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의 사이였기에 휴대폰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집앞이라고 했다. 시간이 괜찮으면 잠깐 볼 수 있냐고. 토요일 오전에 집 앞으로 찾아 온 직장후배, 참으로 생소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괜찮은지 어떤지를 따져보기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다급하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남편이 함께 있긴 한데..소연씨만 괜찮으면 들어올래요?」
「그러면...그보다...선배님 댁 앞에 'Merry-go-Round'라는 까페가 보이는데..잠깐 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요. 그럼..」
차분한 갈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얼음을 잔뜩 담은 아이스커피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카페엔 그녀 말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그녀의 모습은 통창으로 되어있는 카페 밖에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웬일일까?’ 그녀를 발견한 순간, 문득 내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창밖에 한참을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그녀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그녀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소연씨!」
「아~! 선배님. 오셨어요? 죄송해요. 토요일 오전부터 별안간」
「아니에요. 난 괜찮은데..무슨 일이예요?」
「선배님, 제가 어디 급히 가야할 데가 있어서...우선 이거부터 받으세요.」
그녀는 보라색 한지로 정성스레 포장된 라면박스 크기의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놀라실 거 알아요. 그런데 선배님밖엔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요.」
「소연씨, 우선 숨 좀 돌리고 찬찬히 얘기해요.」
「선배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지금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세한 건 이 상자를 열어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소연씨!」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녀는 허겁지겁 나가버렸다. 워낙 정신이 없어 뭐라 대꾸할 여유도 없었다. 커다란 보라색 상자와 함께 남겨진 나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다 좀 전에 찍힌 그녀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뿐이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나보다는 십년쯤 아래, 이웃부서의 여직원이라는 것. 업무적으로 몇 차례 통화한 적이 있고,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목인사를 주고받던 사이. 그게 다였다. 상자를 열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들이지도 않고 차에 넣어놓았다. 상자를 풀어볼지 말지는 회사에 돌아가 그녀를 다시 만난 후 최소한 자초지종이라도 제대로 듣고 난 다음에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문의 보라색 상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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